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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7년 02월 03일(金)
“北核 대화해법 지극히 비관적… 지금은 압박으로 고통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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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사무실에 걸린 한반도 지도 앞에서 지난 1월 31일 정부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통일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

겉으로 미소를 지었지만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의 얼굴에는 두터운 그늘이 배어 있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사실 마음이 무겁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북한의 지난해 4차와 5차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통일을 위한 진로가 가로막힌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졌다. 정 부위원장은 “이대로 가면 북한은 몇 년 내로 상당한 핵 강국이 될 것”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통준위 위원장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발의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도 있었다. 그는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완성하면 국내적으로 고민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지금은 한·미 동맹을 통해 안보를 제공받고 있지만 스스로 핵무장을 포함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 올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 부위원장은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되뇌었다. 그는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통일로 가는 전략적 로드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31일 서울 종로구 효자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의 통준위 5층 사무실에서 정 부위원장을 만났다.

―경색된 남북관계의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 안타까운 마음이다.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좌절감이 많이 들었다. 사실 1993년 김영삼정부 출범 시 남북관계는 좋았는데 북한이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1994년 4월 12일 ‘서울은 전쟁이 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 것’이라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됐다. 그때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고,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있으면서 바쁘게 정상회담 준비를 했다. 그런데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됐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통준위 부위원장을 맡아 내심 기대가 컸다. 상당히 의욕적으로 일을 했는데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모든 것이 꼬였다. 굉장히 실망이 크다.”

―북한 핵 문제가 대화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대단히 비관적이다. 미국과 중국을 통해 대화로 해결을 한다는 것인데 상당히 회의적이다. 지난해 5월 7차 노동당 대회가 36년 만에 열렸다. 북한은 당대회에서 핵을 항구적인 전략 자산으로 삼겠다고 천명했다.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제스처, 전략적 모호성을 포장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북한이 핵을 내려놓으면 어떤 옵션을 갖고 있겠는가. 체제가 유지되기 어렵다. 북핵 포기, 지금 보면 굉장히 어렵다. 사실 국내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북한이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는 상황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국내 일각에서는 대화를 통한 해결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 있는데.

“1993년 1차 북한핵 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북한은 핵개발 프로그램만 있었다. 그때 김영삼정부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했다. 남북비핵화공동선언에 따라 남북 간에 다룰 수 있는 충분한 근거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 먼저 협상을 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한국 정부는 3자 위치로 물러서기로 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단독 대화를 강력하게 원해서 그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협상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 정부도 북·미 대화를 용인했다. 물론 미국과 철저하게 협력한다는 합의가 있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199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당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부장과 로버트 갈루치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회담을 했고, 우리 외교부 북미국장도 파견을 나가 매번 협의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북·미 간에 제네바 합의가 이뤄지고 우리는 빠지게 됐다. 미국과 중국에 북핵 문제를 위탁하는 대리 협상은 현실적으로 상당히 힘들다. 그렇다고 현재 남북 직접 대화도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는 일단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대북 압박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재의 효과가 금방 드러나지 않고 중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효과가 둔화되지만 북한 정권에 고통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제재가 어느 정도 효과를 낼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대화를 꺼내면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한다. 물론 대북제재의 목적은 대화다. 제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북한은 대화를 하더라도 순수하게 핵포기를 들고 나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사만 표시한다면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북한은 대화 시작을 경제 지원으로 요구할 것으로 보이는데, 햇볕정책이 반복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대화를 대가로 제재를 푸는 것은 맞지 않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은 신중해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미 북한에 여러 번의 제재를 가했다. 다자차원에서 또 양자차원에서 대북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만 제재에서 빠진다는 것은 흐름에 맞지 않다. 우리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북한이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과 9·19공동선언에 비춰보면 대화의 시작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응하지 않을 것이다.”

―잠깐 통준위로 화제를 돌려보면, 탄핵정국 상황에서 통준위의 앞날은 어떻게 될는지요.

“통준위는 첫째 통일 관련 정책을 준비하고, 둘째 통일 문제를 다루는 조직들 간의 유기적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가 남남갈등 해결에 나서는 것이다. 전문위원과 위원들을 합쳐 65명인데 진보인사도 있고 보수인사도 있다. 여야 정책위원회 의장도 위원으로 들어와 있다. 내부에서도 이념적으로 성향이 달라 정책수립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자주 만나면서 어느 정도 극복했다. 공통점을 많이 만들고 이해의 공간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통일 문제에 대해 각자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통준위는 초당적인 성격으로 출범해 남북관계 부침과 거리를 두고, 원래 계획대로 통일준비 활동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주변 환경이 쉽지 않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도 통준위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전문가들이 같은 위원회에 모여서,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경험이 과거에는 없었다. 지금 국내 정치적 상황과 상관없이 통일준비백서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후반부터 백서 편찬 작업을 시작했고, 태스크포스(TF)에서 작성한 내용을 갖고 전체토의를 했다. 현재 1차 집필 작업을 끝내고 보완작업 중이다. 올해 여름쯤 발간할 계획이다. 대통령 직속기구이기 때문에 위원회 임기가 끝나면 모든 자료가 대통령 기록관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일정 기간 대외에 공개되지 않으므로 백서를 통해 국민에게 활동을 알릴 생각이다. 다음 정부에서 누가 오든 참고가 되도록 하고 싶다. 시민단체, 학계, 전문가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통일 방안들 중에서 정 부위원장이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통일 모델은 무엇입니까.

“위원회에서 공감대를 이루었던 부분 중 하나가 통일에 대한 청사진 작성이다. 국민을 상대로 통일을 알려 나가기 위해서도 통일 청사진 마련이 필요했다. 통일헌장이 있고, 통일방안이 있다. 통일이 되면 우리 국가의 모습이 어떨지 통일국가의 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차원에서 통일의 원칙과 방법 등을 만들어 보았다. 현재 초안 단계인 시안 상태로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정부 방안도 조율하려고 했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통일방안과 관련해서는 1989년에 만들어진 한민족공동체 방안을 수정 보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냉전이 끝나는 시기에 만들어진 만큼 변화된 상황을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위원들 사이에서 통일한국의 개념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남북분단 전 통일한국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미래지향적인 통일한국인지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민족주의 차원에서 민족공동체가 통일방안의 핵심이었는데, 지금 4차 산업혁명이 얘기되는 시대에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통일방안이 맞는가라는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됐었다. 닫힌 민족주의가 아닌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닫힌 민족주의와 열린 민족주의의 개념을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쉽게 말해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비무장지대(DMZ)가 없어지고, 교류를 하면서 정치 공동체를 만들면 통일한국의 완성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과연 지금 현실에 맞는가? 현재 남북 이질화가 상당히 진행됐다.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새로운 공동체를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DMZ가 없어지고,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어진다고 하나의 공동체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다문화 사회도 고려해야 하고, 300만∼400만 명의 해외교포도 공동체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열린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통일방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진행된 연구작업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과거에 비해 통일 여건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까.

“과거에도 통일은 어려웠다. 지금은 뭐라고 설명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통일이 되면 여러 문제가 생길 것이다. 언어, 교육, 법제도, 경제 발전계획 수립 등 굉장히 많은 과제가 생긴다. 그런데 주변 정세가 녹록지 않다. 통일 한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변국가들이 공감해 주고 축복해 주는 경우가 이상적이다. 통일한국이 이뤄지면 엄청난 투자 소요가 생긴다. 우리의 재정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주변 국가들의 경제적 지원 및 국제기구의 도움도 필요하다. 지금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큰 독일도 30년 동안 엄청난 투자를 동독 지역에 했다. 통일은 원하든 원치 않든 불현듯 찾아올 수 있다. 현재 미·중 관계는 전략적 협조가 아닌 전략적 갈등 관계라고 생각한다. 주변 국가들이 반대하면 통일의 과정에서 고통이 크다.”

―통일을 위한 외재적 요인과 내재적 요인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외재적 요인이다. 주변국들이 통일을 방해할 수도 있다. 남북한의 분단은 주변국의 전략적 이해가 합치돼 이뤄졌다고 본다면 통일에 대한 방해 작업도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잘 아는 중국 사람을 사적으로 만났는데, 나중에 중국 정부에서 고위직도 맡았었다. 그에게 통일한국의 중국에 대한 의미를 물었다. 그랬더니 3가지 조건이 있다고 답변했다. 첫째가 평화통일, 둘째가 통일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적대적이어서는 안 될 것, 셋째가 통일한국이 중국 정부와 적대관계인 국가와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마지막 조건은 한·미 동맹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관계인 국가와 국경을 접하기를 원치 않는다. 한·미 동맹에 대한 중국의 생각은 굉장히 심각한 측면이 있다. 우리는 한·미 동맹이 변수가 아닌 상수여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없는데 중국은 다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만 해도 중국 본토 탐지용이 아니라는 얘기를 수차례 하고, 북핵 문제가 풀리면 필요없다고 설명해도 중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미·중 관계가 좋아지면 통일환경은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미·중 관계가 가까운 시일 내에 미·일 관계처럼 가까워질 수도 없고, 일·중 관계도 있는 만큼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통일로 가려면 현실적으로 중국의 설득과 용인이 필요하다는 의미인가요.

“글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데 대신 다음과 같이 답하겠다. 중국사람들은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다. 중국은 수직계열적인 국가다. 최고지도자가 결정하면 밑에 있는 사람이 반발하는 일이 거의 없다. 사드 문제 역시 위에서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래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정책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만큼 어려운 측면이 있다.”

―북한에서 체제붕괴의 급변 사태 발생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까.

“원하지 않는 시간에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통일이 올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권력 승계가 이뤄진 2011년만 해도 정권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나이도 어리고 후계 구축 준비 시간도 많지 않았고, 정치 경륜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문제는 있지만 상당히 안정됐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나온 브레진스키 국가 취약도 인덱스 보고서만 2011년에 비해 북한 정권의 취약도가 많이 낮아졌다. 북한 정권 자체가 갑자기 무너진다든가 하는 상황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엘리트 그룹의 탈북은 김정은의 고민거리일 것이다. 특히 시장의 확산과 정보의 유입 속도는 핵무기 개발의 속도보다 빠르다. 북한주민의 80%는 시장을 통해 삶을 영위한다. 국가의 배급경제 시스템이 상당 부분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돈주들과 정부가 결합해 평양의 건설 붐을 만들고 있다. 이른바 붉은 자본가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김정은 신년사를 보면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일 정도인데, 그나마 특징을 찾아보면 핵강국의 완성과 부정부패 및 관료주의 척결이라 할 수 있다. 경제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붉은 자본가와 관료들 사이에 정경유착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당의 유일적 통제에 엄청난 걸림돌이라고 해석하는 것 같다. 현재 북한 내부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이 같은 변화를 김정은이 어떻게 수용하는지가 문제가 될 것이다. 공포통치로는 차단되지 않는다. 변화에 올라타야지 막으려고 한다면 역작용이 생긴다. 결국 북한에 모든 문제가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북한사회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당의 통제를 벗어나는 영역이 많아질수록 정부에 위협이 될 것이다. 일정 수준을 넘었다고 생각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엄청난 혼란만 초래할 것이다. 한국정착 탈북민이 3만 명이 넘었는데 70%가 여성이다.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북한 내에서 우리가 모르는 많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식량이 부족해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사람들이 잘 넘어진다고 한다. 극단적인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가임기 여성이 아이를 출산할 때 제왕절개를 많이 한다고 한다. 골반 성숙이 되지 않아 자연분만이 힘든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도 상당히 확산되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강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북한 핵 문제로 돌아가겠습니다. 핵동결 협상이 현실적이란 지적도 제기됩니다.

“북핵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북한핵 해법에는 지름길도 없고 매직 솔루션도 없다. 단계적으로 상당히 시간을 갖고 진행해 나가야 한다. 여러 복합요인들이 있는데 핵시설의 해체가 마지막 단계다. 일단 핵실험을 그만두게 만들어야 한다. 북한은 한두 차례만 핵실험을 더 하면 핵실험할 필요가 없는 단계가 된다. 핵능력 완성에 도달했다는 의미일 수 있으며, 다른 것에 비해 목표 달성이 쉬울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핵물질 생산 시설 가동 중지다.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영변 핵시설의 위치는 알지만 고농축우라늄(HEU)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신고와 검증을 통해 불가역적인 해체에도 나서야 한다. 단계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거기에 맞춰서 우리도 경제지원, 평화체제 전환, 한·미군사훈련 중지 등의 협상에 응해야 한다. 물론 패키지로 일괄 합의하고 단계별로 풀어나가야 한다.”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통일전략도 바뀌는 문제점이 심각합니다.

“통일 정책의 단절이랄까, 지속성이 없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변증법적인 측면이 작용한다. 이쪽으로 가기도 하고, 저쪽으로 가기도 하는데 극단적인 비관은 필요 없다. 다만 정치적으로 봤을 때 이전 정부와 반대로 통일정책을 수립하는, 극에서 극으로 가는 역주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통일 한국을 위한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북한 김정은 체제가 더욱 완강해지고 미·중 관계가 대결과 갈등 위주로 흐르면 북한핵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진다. 미·중 관계가 협력적으로 가고 신형대국 관계가 형성돼야 우리에게 유리하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 헬무트 콜 총리의 외교담당특보였던 홀스트 텔시크와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데, 그에게 배울 점이 많다. 홀스트는 독일 통일을 위해 소련에 가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나고, 통일에 반대하는 프랑스를 설득하러 다녔다. 미국 인사들과 만나서는 통일이 되어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남겠다고 안심시켰다. 당시 소련의 반대가 심했는데 협상으로 풀어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통일한국의 한·미 동맹에 대해서 엄청난 신경을 쓸 것이다. 한·미 동맹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한반도 통일은 중국 입장에서는 전략적 위기다. 미국과 중국이 협력관계를 유지할 때 한반도 통일의 지점이 생긴다. 한·미 동맹은 중국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고 안심시켜야 한다.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통일로 가는 전략적 로드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한국의 홀스트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인터뷰 = 이제교 부장 (정치부) jklee@munhwa.com
정리 =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
e-mail 이제교 기자 / 국제부 / 부장 이제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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