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재성 ㈜예당철강 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인근 한 스크린골프장에서 몸을 풀면서 활짝 웃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김재성 ㈜예당철강 대표
김재성(56) ㈜예당철강 대표에게 골프는 인생의 나락에서 자신을 건져낸 구원자다. 잇따른 사업 실패로 실의에 빠졌을 때 골프채는 재기를 위한 든든한 ‘지팡이’가 됐기 때문이다.
설 연휴 직전이던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인근 스크린골프장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겨울이라 라운드는 힘들지만, 스크린 골프로 언더파를 곧잘 남긴다”며 말문을 열었다. 직장생활 3년 만에 박차고 나왔지만, 벤처기업을 시작으로 무역회사까지 5년 동안 서너 차례나 망했다.
1997년 외환위기까지 불어닥쳐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자 김 대표는 삶을 포기하려 한강 다리를 수차례 오갔다. 하지만 죽을 용기조차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기업 임원이던 외삼촌이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는 핀잔과 함께,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운동이나 해라”며 쓰던 골프채와 장갑을 건넸다. 골프채를 잡고 공을 때리는 데 집중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덕분에 사람을 다시 만나 기분을 전환할 수 있었다. 안정을 되찾으니 다시 힘을 쏟아 2000년 철강 사업을 시작했다. H빔과 철근 등을 수입해 대형 토목, 건설사 등에 납품하며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원자재 파동이 일었던 2003∼2004년엔 골프로 인연을 맺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다. 수요는 있는데 물건이 없어서 못 팔 때였지만 골프 인맥이 큰 도움이 됐다.
김 대표는 레슨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독학’ 골퍼다. 김 대표는 “사업이 망해 돈이 없었던 때 1만 원으로 연습장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집 근처 경기 고양시 일산 외곽의 연습장은 1만 원만 내면 온종일 머물 수 있었다. 교사 아내의 눈치도 보여 일찍 집을 나섰고, 아예 점심도 싸 갖고 다녔다. 매일 7∼8시간 연습에 몰두하며 많게는 3000개의 공을 쳤다. 손바닥에 물집이 사라지지 않았고, 손바닥이 펴지지도 않을 때도 있었다. 몸에 이상이 왔다. 바닥만 보고 공을 쳤더니 목 디스크가 찾아왔고 갈비뼈에 금이 가 스윙할 때마다 통증에 시달렸다. 이렇게 4개월을 보냈다. 김 대표는 “TV에서 방영되는 프로들의 스윙이 유일한 교과서였다”며 “아마추어와 전혀 다른 스윙 메커니즘을 혼자 고민하고 터득한 덕분에 남들보다 일찌감치 싱글 패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외삼촌은 ‘조카가 혹시나 딴 마음을 먹지 않을까’ 걱정했고, 그래서 골프채를 건넨 지 1주일 만에 조카를 경기 여주의 클럽700(현 블루헤런)으로 데려갔다. 김 대표는 당시 스코어를 잊었지만, 첫 라운드에서 파를 4개나 잡았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김 대표가 연습장에서 늘 빨랫줄 같은 타구를 구사하자 몇몇이 한 수 배우겠다며 그를 초청했다. 하지만 비기너 수준이던 김 대표는 80∼90대인 그들과의 내기에서 돈을 잃었고, 라운드 비용을 부담했다. 당시의 패배는 약이 됐고 김 대표는 7∼8시간을 연습에 투자했다. 운동에 몰두한 탓에 자고 나면 온몸이 쑤셨지만, 참았다. 물론 결실을 얻었다. 3년 정도 지나 그날의 동반자들과 리턴매치를 벌였고 73타를 남겨 빚을 갚았다.
김 대표의 베스트는 2언더파 70타. 2014년 경기 파주의 서원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기아자동차가 협찬한 아마추어대회 예선 ‘블루 티’에서 버디 3개, 보기 1개를 남겼다.
아마추어 강자들만 나선다는 전국대회에 처음 출전해 상위권에 오른 김 대표는 11월 본선 때에는 챔피언 조에서 플레이했다. 예선 성적으로 조를 편성했기 때문. 장흥수, 전향철 등 아마추어 최강자들과 함께 라운드했지만 200명이 출전한 본선에서 77타로 44위에 그쳤다. 우승 스코어는 이븐파였다. 김 대표는 “날씨가 안 좋았던 탓도 있었지만, 본선이 주는 중압감이 더 컸다”면서 “OB도 2방이나 났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전국대회를 기웃거린 건 아마 고수들과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는 승부욕이 발동했기 때문. 김 대표는 2014년 평균 79타, 2015년 평균 77타를 유지했다. 기량이 늘자 자만했다.
지난해 미드 아마추어대회에 나갔지만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김 대표는 “전반에 3언더파로 선두를 달려 후반에 1∼2타 더 줄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막판에 2∼3오버파로 무너지기 일쑤였다”고 설명했다.
부산의 한 아마추어대회에서는 동반자가 어프로치 샷으로 서너 차례나 깃대에 맞히는 프로 뺨치는 기량 때문에 풀이 죽었다.
그 동반자가 파 4홀에서 ‘더블 파’를 하고도 18홀을 이븐파로 마치는 것을 보곤 ‘아무나 고수가 되는 게 아니다’라고 감탄하고 돌아왔다.
요즘도 드라이버 샷 220∼230m를 보낸다는 김 대표는 퍼팅 실력이 뛰어나다. 서너 라운드 동안 스리 퍼팅을 하지 않을 정도. 그동안 기록한 25차례 이글 중 23번을 파 5홀에서 퍼팅으로 뽑아냈다고. 김 대표는 감을 살리기 위해 매일 집에서 매트를 깔고 퍼팅 연습을 한다. 김 대표는 “큰 근육, 즉 팔보다는 몸통이나 어깨를 움직여 퍼팅해야만 실수를 줄일 수 있고, 확실한 감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올해 목표를 ‘핸디캡 3’로 정했다. 그동안 사업 운이 따르지 않았던 김 대표는 최근 건설경기 침체로 철강업이 어려워져 사업을 더 이어갈지 고민 중이며 한편으로는 이참에 고향(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주택사업으로 새 출발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아마 골프를 안 했으면 지금보다 덜 행복했을 것 같다”면서 “골프에 몰입하니 불행했던 일도 빨리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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