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徐遊記>(1059) 51장 대통령 - 14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진핑이 눈만 크게 떴을 때 서동수 측의 하선옥이 일어나 포장지에 싼 상자를 주석실 비서 왕춘 앞에 놓았다. 그때 서동수가 말했다.

“난징(南京) 대학살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입니다. 대한민국 영화사에서 제작한 것인데 꽤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습니다.”

숨을 들이마신 시진핑이 지그시 앞에 놓인 상자를 보았다. 물론 선물을 가져온다는 보고는 받았다. 국가 간 정상회담 자리에서 뜬금없이 뭘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난징 대학살 다큐멘터리 제작 필름이라니, 시진핑 주위의 저커창, 리정산 등도 숨을 죽이고 있다. 난징 대학살,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에 걸쳐 발생했던 학살이다. 당시 중·일 전쟁에서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주민 30만 명을 학살했다. 1939년 4월부터는 일본군 1644부대가 주둔해 중국인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했다. 일본은 지금도 그 학살이 터무니없다고 부정하고 있다. 이윽고 시진핑이 서동수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잘 보겠습니다.”

시진핑이 굳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갑자기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난징 대학살이 일어나기 14년 전에도 대학살이 일어났지요.”

불쑥 서동수가 말했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서동수가 유창한 중국어로 말을 이었다.

“1923년 9월 1일에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간토(關東) 대지진이라고, 들어 보셨지요?”

“아, 압니다.”

시진핑이 머리를 끄덕였다.

“도쿄에서 일어난 대지진이었지요.”

“그 지진에서 10만여 명이 사망했고 3만7000여 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이제 시진핑은 머리만 끄덕였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그 당시 간토지역에는 조선인 거주자가 많았습니다. 그곳이 인구 밀집지역이어서 가난한 조선인 노동자들이 몰려 있었거든요.”

“…….”

“지진이 일어나자 도쿄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렇다. 도쿄 아래쪽 사가미만(相模灣)을 진원지로 한 규모 7.9에서 8.4까지의 강진이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부터 5분 간격으로 세 차례나 계속되었다. 그래서 도쿄는 도시의 75% 이상이 파괴, 소실되었다. 도시는 화염에 휩싸였고 간토지역 전체가 아비규환 상태가 되었다. 지옥이다. 더구나 식량난이 가중되던 시기였고 정권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던 상황에서 총리도 아직 취임을 못하고 내각도 구성하지 못했다. 머리를 든 서동수가 시진핑을 보았다. “그때 현장 책임자인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는 전(前) 조선 총독부 정무총감 출신이었고 경시총감 아카이케 마쓰시게(赤池松茂)는 전(前)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출신입니다.”

서동수의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

“그들은 각 경찰서, 언론사에 긴급 공문을 발동합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부녀자를 상간하고 우물에 독을 뿌리고 있으니 적극 대처하라.’”

시진핑이 숨을 들이켰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성난 민심을 조선인 탓으로 돌려 그때부터 일본 관헌, 일본 자경단의 조선인 대학살이 일어납니다. 그때 간토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인 3만여 명 중 생존 확인자는 7000여 명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