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정부조직은 ‘전리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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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종 경제산업부 부장

2008년 1월 초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 엄동(嚴冬)을 뚫고 모였지만 참석자들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누구 하나 선뜻 말문을 열지 못했다. 모인 이들은 당시 해양수산부의 고위직. 대선 직후 해수부가 이명박 당선자 측의 질타를 받고 해체 위기에 놓인 상태에서 열린 일종의 ‘비상대책회의’였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1996년 농림부로부터 독립했던 해수부는 해체됐다.

햇수로 10년 묵은 취재수첩이 떠오른 것은 조기 대선이 임박하자 어김없이 고개를 들고 있는 정부 부처 조직 개편론 때문이다. 5년, 이번에는 4년 만에 되풀이되는 ‘데자뷔’다. 야당의 ‘싱크탱크’, 대선 주자 사이에 제기되는 개편론을 보면 검·경, 국세청, 감사원 등 사정기관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도마 위에 오를 태세다.

경제부처만 해도 기획재정부를 재정부·금융부로 쪼개거나 예산처, 금융부로 분리하자는 안이 나왔다. 중소기업 분야는 벤처·스타트업 창업 우대 분위기와 맞물려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중소기업부’로의 승격이 오르내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된 통상 기능도 별도 분리해 다시 무게를 싣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자원 쪽을 떼어 ‘에너지부’를 만들자는 안도 빠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간판스타’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십자포화를 맞을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사회부처도 ‘고용복지부’ ‘복지노동부’ 등 낯선 작명에서 알 수 있듯 예외가 아니다. 교육부문은 ‘국가교육위원회’ ‘교육지원처’로 바꾸겠다고 공언된 상태다. 2013년 부활한 해수부조차 일각에서 재차 해체 대상으로 지목하는 형국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관련 부처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은 채 술렁이고 있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직무·직위 변동 가능성이 코앞에 왔는데 의욕이 생길 리 없다. 조직개편의 당위성, 효과는 둘째 치고 개편과 정부조직법 개정에만 2개월가량 소요된다. 해당 부처 장관 임명, 청문회 절차를 고려하면 조기 대선을 한다 해도 여름까지는 ‘행정 진공(眞空)’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해당 부처 소속 공공기관, 각종 협회, 이해관계를 지닌 민간 기업의 정책 향방에 대한 관심, 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 연구·개발(R&D) 등을 염두에 두면 조직 개편이 국민 생활 전반에 미칠 파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다.

거론되는 안 역시 뜯어 보면 발전 지향적인 면모를 찾기가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기재부 재편안은 과거 재무부, 경제기획원, 에너지부는 동력자원부로의 회귀나 다름없다. 개혁·쇄신을 앞세운 조직 개편의 취지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부 조직을 정권 장악 후 공공부문의 ‘순종(順從)’을 유도하거나, 차별성 부각만을 위해 전 정부의 모든 정책을 180도 뒤집는 비판적 사고에만 파묻혀 접근하면 주기적으로 부처를 조각내는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은 인수위원회도 어렵다는데 자칫 탁상(卓上)의 정부 조직개편안이 얼마나 실효를 낼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되 개편 범위는 될 수 있는 대로 최소화하고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행정의 능률을 제고할 보완책 마련에 더 신경 써야 할 때다. horiz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