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극빈가정 ‘촌놈’을 반장에…그때 얻은 자신감이 인생의 거름 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차흥봉 전 장관이 지갑 속에 보관하고 있는 김계숙 교사 사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3일 서울 마포구의 커피숍에서 경북 의성군 의성남부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었던 김계숙 교사와의 추억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차흥봉 前복지부장관의 나를 만든 스승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사진을 항상 지갑 속에 간직하고 다닙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보잘것없는 ‘촌놈’이 대학에도 가고 장관도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의 커피숍에서 만난 차흥봉(75)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경북 의성군 의성남부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었던 김계숙 교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으로 꼽았다. 차 전 장관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보건복지부 공무원을 거쳐 한림대 교수와 부총장을 지냈다. 1990년대 말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는 세계노년학회장을 맡고 있다. 장관 시절 그는 의약 분업과 건강보험 재정통합을 주도했고, 노무현정부에서는 건강보험통합추진기획단 공동단장과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등 요직도 거쳤다.

화려한 이력만 보면 차 전 장관은 탄탄대로의 인생을 달려온 듯 보이지만, 가난한 집안 환경 탓에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부모님 슬하 형제 8명 중 3명이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먼저 뜰 정도로 집안이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고한 차 전 장관은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낡은 한복에 양말도 없이 고무신을 신고 갔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이처럼 어려운 환경의 차 장관에게 선뜻 학급 반장을 맡겼다.

차 전 장관은 “나보다 좋은 옷을 입고 집이 부유한 친구들을 제치고 반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을 믿을 수 없었다”며 “당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신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한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선생님의 배려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반장이라는 직책에 걸맞은 학생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공부에도 재미를 붙여 우수한 성적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김 선생님의 믿음으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내가 우등생이 됐다”며 “힘든 환경에서도 노력만 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라고 회고했다. 초등학교 때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꾸준히 노력해 명문고에 입학했다. 그러나,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집안 형편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며 “먹을 것이 없어 매일 흐느껴 우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공부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차 전 장관은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결국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일본식 주택의 방바닥을 만드는 재료인 다다미 만드는 공장에 입사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여름방학에 내려오면 부러운 마음에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고백했다.

공장을 다니면서도 대학의 꿈을 저버리지 않았던 차 전 장관은 그해 여름, 입시에 도전해 기어이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돈이 없어도 과외를 하고 장학금을 타면 서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입시에 도전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며 “과거 김 선생님이 나를 믿어줬던 것처럼 내가 나를 믿고 도전한 결과”라고 말했다.

어렵사리 입학한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1999년 장관까지 오르게 된 그는 부임 첫해에 수소문 끝에 김 교사를 찾아냈다. 김 교사는 정년 퇴임을 해 경북 영덕에 살고 있었다. 차 전 장관은 “평생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었던 선생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늦게나마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1950년 6·25전쟁이 터지고 교사생활을 그만둔 후 결혼해 주부로 생활하고 있었다. 우연이었는지, 김 교사는 복지부 장관과 밀접한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김찬우(2006년 별세) 의원의 안사돈이었다.

차 전 장관은 “1999년 추석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선물로 준 수삼 한 상자를 들고 영덕으로 내려갔다”며 “50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첫눈에 선생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차 전 장관은 1999년 만남 이후, 김 교사가 별세하기 전까지 10여 년간 명절이면 꼬박꼬박 안부를 묻고 선물도 보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 교사가 별세한 이후에는 김 교사 자녀들에게 부탁해 증명사진 한 장을 선물로 받아 가족사진과 함께 지금도 지갑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그는 “힘든 일이 생길 때 삶의 지혜가 필요할 때마다 선생님의 사진을 꺼내본다”며 “선생님은 나의 인생길을 인도해주신 나침반 같은 존재였다”고 고백했다. 이어 “나의 경험을 비추어보면 어떤 환경에 누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라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며 믿어주는 스승이 한 명만 있다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교권 회복과 아동이 행복한 환경 조성을 위해 문화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연중캠페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