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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사회]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7년 02월 10일(金)
“탄핵소추 이후엔 憲裁 맡겨야… ‘찬반시위’ 할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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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곤 한국법학원장이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한국법학원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고 전범 재판 경험, 한국 사법체계의 장단점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유고 戰犯 재판소’ 15년 활동권오곤 한국법학원장

구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ICTY·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 상임재판관·부소장으로 유명한 권오곤(64·사법연수원 9기) 한국법학원장은 무척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세르비아 대통령과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지도자였던 라도반 카라지치 등 유고 전범들에 대한 재판관을 2001년에 맡아 15년간 복무하고 지난해 귀국한 권 원장은 ‘TV나 신문에서 보던 얼굴과 똑같다’고 했더니 “실물이 더 낫지 않으냐”고 농담으로 받는다. 올해 1월 20일 제15대 한국법학원장에 취임한 권 원장을 지난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의 한국법학원에서 만났다. 한국법학원은 판사, 검사, 변호사뿐 아니라 군법무관, 법학 교수까지 포함돼 모두 2만3597명이 가입된 국내 최대 법조 단체로 1956년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요직을 거쳐, 2001년 ICTY 재판관으로 지원해 인생의 절정기인 48세부터 63세까지 전 인류가 공분한 유고 전범 재판에 전념했다. 그는 ICTY 재판관으로서의 경험, 한국 사법체계의 장단점, 법조비리 대책 등에 대해 상당히 성실하고 진지하게 답변했다. 그러나 최대 정국현안인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권 원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유고 전범 재판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ICTY는 어떻게 시작됐나.

“원래는 유고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실제로 피고인들을 잡아오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세르비아나 유고에서 대통령을 하고, 장군으로 있으면서 영웅처럼 살고 있는데… 실제로는 처벌을 한다기보다 국제사회가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게 현실적으로 활성화되리라 생각을 못 하고 처음에 조금 하다가 흐지부지될 줄 알고 시작을 한 거지. 그런데 최초의 ICTY 재판소장이었던 안토니오 카세스가 국제인도법에 관해 사명감이 많아 무척 열심히 해서 여러 가지 규칙도 만들고 준비하고 있던 와중에 유고에서 민주화가 이뤄져 거물들, 빅피시들을 잡아 보내면서 활성화됐다. 그 바람에 오래 걸렸다. 1993년에 만들어졌지만 밀로셰비치가 잡혀 온 건 2001년이다. 밀로셰비치가 왜 중요하냐면, 국가 원수를 지금까지 국제법정이 강제로 잡아다가 형사재판을 한 게 처음이었다.”

―원장님은 원래부터 전범 재판관으로 15년간 복무하기로 한 건가, 아니면 하다 보니 늘어난 건가.

“내가 2001년 밀로셰비치 재판부터 시작했는데, 그 재판이 한 5년 걸렸다. 그게 잘 끝났으면 아마 난 그걸 끝내고 왔을 텐데, 밀로셰비치가 재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2006년에 돌연사했다. 판결을 한 번도 못하고 돌아올 순 없었다. 그때 포포비치 등 7명이 피고인인 스레브레니차 무슬림 학살 사건을 담당하게 됐다. 그것도 5년이 걸려서 총 10년이 됐는데, 그거 끝나고 귀국하려 했더니 카라지치가 잡혀 왔고 나보고 그 재판의 재판장을 하라고 해서 그냥 판사로 참가하는 것보단 재판장으로 진행하고 나중에 판결선고를 한국인 재판장이 하는 게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한 번 더 있다 보니 15년이 됐다. 왜 한 사건이 이렇게 5년씩 걸리느냐면, 사건 하나하나가 워낙 방대하고 증인을 많이 불러서 조사해야 하다 보니 그렇게 된다. 어떤 사건은 증인이 500∼600명에 달할 때도 있었다.”

―유고 전범 재판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우선 밀로셰비치는 세기의 재판이었다. 전 세계에서 기자들이 수백 명 몰려왔다. BBC 한 곳에서만 30명이 나왔다던가 그랬다. 기자단을 위해 인근 호텔을 통째로 빌렸다. 첫 재판 때 재판 과정을 방송해서 취재하게 해줄 정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역사적인 재판에 참여했다는 데 아주 보람을 느꼈다. 한번은 ‘한국을 대표해서 좋은 판사가 되겠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넌 한국을 대표하는 판사가 아니라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판사다’라고 하더라. 그 말이 확 와 닿았다. 국제사회를 대신해 인류에 대한 범죄자를 처벌하는 재판에 참여한다는 데 보람을 느꼈다. 또 유고 전범 재판은 어느 한 나라 법을 따르는 게 아니라 영미법과 대륙법을 절충해서 만들었다. 선례가 없는 일이었는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에서 온 판사들끼리 논쟁해서 결론을 내는데, 그 과정에서 각 제도의 장단점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실무나 법 제도에 관해서도 비교법적인 시각에서 되돌아볼 수 있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밀로셰비치나 카라지치가 볼 때 권오곤 재판관은 동양인이고 이방인인데, 법정 태도는 어땠나.

“밀로셰비치는 재판소를 인정 안 했다. 카라지치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앞잡이인 일리걸(illegal) 재판소라고 했다. 이들의 자기 변론이 ‘이 재판소는 재판권이 없다’ ‘너희는 소급입법에 의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서 처벌하는 일리걸한 재판소다’, 이런 식이었다. 특히 밀로셰비치는 ‘나토의 앞잡이다. 나토를 비롯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처벌하는 편파적인 재판소다’라고 했다. 카라지치는 그렇게 말만 할 뿐이지, 법정에서는 우리를 ‘your excellency’(각하)라고 부르고 법원이 내리는 명령은 다 따랐다. 근데 밀로셰비치는 나를 절대 ‘판사’라고 안 부르고 ‘미스터 권’이라고 불렀다.”

현재 탈북자 단체나 한국 내 북한 인권 관련 단체들이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권탄압 혐의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제소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ICC의 전신인 ICTY에서 20세기 최악의 반인도적 범죄의 상임재판관·부소장을 역임하고 온 권 원장의 생각은 어떨까.

―북한 지도자들에 대한 ICC 제소 등 처벌 목소리가 있다. 국제법 전문가로 볼 때 가능한 이야긴가.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 상황이 굉장히 심각해서 국제법 위반이 될 정도에 이르렀다는 건 거의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국제사회가 그것에 계속 관심을 갖고 조사하고 압력을 넣는 건 찬성인데, 지금 당장 제소할 만큼의 증거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러니까 인권침해가 있다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김정은이 그런 사실을 알고 지휘 혹은 묵인했다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사실이 최고책임자한테까지 이어질 책임에 관한 상황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증거가 아직 많이 확보된 상태가 아니다. 또 김정은이 책임이 있다고 했을 때 어떻게 처벌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냐 하는 것도 우리로서는 두고두고 생각해야 할 문제다. ICC라는 건 보충성의 원칙이라 해서 각 해당 국가가 자국법에 의해 처벌을 못 하거나 안 하려고 할 때 국제재판소가 개입하는 거다. 지금 ICC에 제소해 놓으면 처벌할 방법도 없으면서 통일된 후에 실제로 처벌할 수 있을 때 처벌할 수 없게 된다.”

―한 사건을 놓고 두 번 재판 못 한다는 일사부재리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ICC에 걸어 놓고 나서 다음에 우리가 다시 가져올 방법이 없다. 그리고 김정은을 우리가 제소하면,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 제소하면 우리 정부는 ICC 회원국으로 김정은을 구속해서 신병을 인도해줘야 할 의무가 발생하는데, 그런 사람하고 어떻게 정상회담을 하느냐. 그래서 저는 꾸준하게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압력을 넣고 그 이익이 북한 주민에게 돌아가게 하면서 상황을 좀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장 기소를 요청할 증거도 없겠지만, 당장 기소하는 것이 우리한테도 꼭 100% 이익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증거가 있다고 해도 기소가 안 되지 않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합의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ICC가 관여하려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승인을 해줘야 하는데 한 국가라도 비토하면 안 된다.”

유고 전범 재판 경험은 이 정도로 하고, 현재 한국의 문제로 대화 주제를 옮겼다.

―국제사법기구가 모여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5년을 보내셨다. 국제기준과 비교해 한국 법조 관행 중 반드시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한국의 형사재판절차를 국제절차와 비교할 때 한 단면에서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불가능하다. 거기서는 아주 역사적인,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 하나를 갖고 5년을 한다. 거기에 들이는 인원이나 비용, 노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그대로 해야 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거기서 배울 교훈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제대로 다퉈야 하는 사건이 있을 때 피고인의 권리와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개선할 점이 좀 있다고 본다. 피고인이 제대로 다퉈봐야 할 사건인데도 한번 구속되면 급류에 휩쓸려가듯이 방어도 못 하고,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걸 거론도 한 번 못 해보고 그냥 휩쓸려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피고인이 제대로 다퉈볼 만한 사건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방어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

―방어권 보장을 위해 제도적으로 더 구체화할 만한 조치는 없을까.

“구금이라는 게 형이 확정돼서 교도소에 있는 거고 그 전에 미결구금이라는 건 피고인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잡아놓고 있는 거지 그 사람을 구속해서 처벌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일단 구치소에 들어가면 처우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나. 전화도 못 하게 하고. ICTY에서는 (구치소) 복도에다 공중전화를 놔둬서, 물론 감시도 받지만, 전화도 할 수 있게 한다. 또 변호사 없이 재판하는 피고인을 위해서는 교도관하고 피고인이 동시에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서 자기방어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도서관 같은 게 있다. 그런데 우린 일단 구속하면 그만이다. 그냥 막 휩쓸려간다.”

―불구속 재판이 원칙인데, 우리 현실은 불구속되면 반쯤은 무죄가 된 것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놓고 시끄러웠지 않나.

“구속 여부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또 구속영장을 발부하게 되더라도 보석을 좀 더 광범위하게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보석(保釋)이 많이 활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석은 보증금을 내고, 도망하거나 기타 일정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이것을 몰수하는 제재조건으로 법원이 구속된 피고인을 석방하는 제도다. 보석으로 석방돼도 구속영장의 효력은 그대로 존속하고, 다만 그 집행이 정지된다는 점에서 구속의 취소와는 구별된다. 또 일정한 보증금을 조건으로 하는 점에서 구속의 집행정지와 다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충격이 워낙 커서 그렇지 지난해 법조비리 사건도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 현직에 있던 김수천 부장판사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얽힌 전관예우 사건,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검사장 신분으로 구속된 진경준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사업가 친구를 브로커로 두고 룸살롱을 함께 드나들며 뒤를 봐줬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 등.

―대형 법조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근절할 방안이 있을까.

“법조윤리를 학교에서부터 철저히 교육하고, 구체적인 룰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가 강조하는데,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듣더라. ‘법조윤리라는 게 무슨 선언서 같은 윤리규범 하나 갖고 되느냐 ’, 그런 문제의식인데, 서구에선 법조인에 대해 엄격하게 적용되는 특별한 룰이 있다. 우리는 변호사, 판사, 검사가 윤리강령 같은 걸 따로 갖고 있는데 마침 제가 법학원장이 됐으니 법조계 모든 직역에 적용되는 (좀 강한) 윤리 규범을 만들려고 한다.”

―선진국에선 변호사 사회 내규가 일반보다 훨씬 강한 이유가 뭔가.

“전통이다. 거기서 법조윤리를 안 지키면 그 사회에서 제명되니까.”

―우리는 웬만한 죄를 지어도 계속 개업하는데.

“그런 면에서 법조윤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안 질문은 이쯤하고 오늘날의 권오곤을 있게 한 과거를 더듬어 봤다.

―1979년에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5공화국 초기인 1981년에 청와대로 파견 나갔던데.

“판사를 1년 4개월 하다 갑자기 가라고 해서 가게 됐는데, 참 모순된 생활을 했다. 속으로 ‘나는 판사가 아니다’라는 말을 스스로 자꾸 되뇌었다. 박철언 검사 밑에서 법제연구관이라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서 그때 막 올라오는 소위 말하는 개혁입법을 스크린하기 위해 판사 1명·검사 2명·법제처 법제관 2명이 각 부처에서 이상하게 올라오는 법을 체크하고, 코디네이션했다. 저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라든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같이 법원에서 만드는 법을 도왔다. 그런 과정을 하다 보니까 내가 판사 같지 않고 상명하복에 의해 일을 한다는 게 굉장히 모순돼서 ‘나는 판사가 아니다’는 주문을 외면서, 또한 나는 판사로서의 인테그리티(Integrity·진실성, 완전함)를 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어렵게 지냈다. 그래서 후배 판사들한테 ‘판사가 외부기관에 파견 나가는 건 절대로 옳은 일이 아니다. 판사는 재판할 때 판사다. 판사가 재판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건 옳지 않다’는 얘길 할 수 있는 건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어려운 시절에 청와대에 있으면서 광주사태 같은 것에도 끽소리 못하는 분위기도 봤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서 득이 된 건 그 당시 행정부에 일 열심히 하고 훌륭한, 참 우수한 공무원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법원에만 있었으면 몰랐을 경험이다.”

―경력만 놓고 보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자격도 충분할 것 같은데, 아쉽다는 생각은 없었나.

“없었다. 저는 국제재판관을 했다는 게 그 못지않은 보람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6년에 ICTY 재판관으로 나가 있을 때 대법관, 헌법재판관으로 추천받았는데, 왜 안됐었나.

“그건 뭐 임명하시는 분 마음인데, 아마 제가 사법연수원 시절에 야간 방위를 했던 것이 그랬다는(문제가 됐다는) 얘기도 있고… 잘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시종 경쾌하던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그늘이 살짝 드리워지는 것 같았다. 좀 미안했지만 좀 더 묻기로 했다.

―야간 방위가 뭔가.

“야간(오후 6시∼오전 9시)에 예비군무기고를 지키는 방위가 있다. 대학 동기들이 사법시험을 한두 번 보고 붙었는데, 저는 세 번 만에 됐다. 그래서 군법무관을 3년 하는 것보다 사법연수원 있을 때 야간 방위로 1년 2개월 근무해서 빨리 판사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사법연수원장의 허락을 받고 복무를 해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제19회 사법시험 수석 합격, 사법연수원까지 수석 수료한 수석 3관왕이다. 소위 공부의 신인데, 사시는 두 번 떨어지셨다는 게 잘 매치가 안된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등 한 적이 별로 없다. 고등학교 때까지 반에서 잘하는 편엔 속했지만, 1등까진 아니었다. 대학교 졸업 때 1등을 해본 게 처음이다.”

인터뷰 막바지에, 처음 약속을 잡을 때 묻지 않기로 했던 진짜 민감한 질문들을 꺼내봤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놓고 찬반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선 대통령 측과 헌재 측 감정싸움도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싸운다는 건 어폐가 있다. 어떻게 대리인이 재판부하고 싸울 수 있나. 자기주장을 얘기하는 거겠지. 헌재에서 아주 잘하고 있는데, 물론 신속하게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며칠 전에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절차적 공정성이 결론의 정당성도 보장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물론 질질 끌어 마땅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정한 재판의 이념을 해치면서까지 신속히 해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로버트 잭슨이라고,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를 지냈던 분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전범을 다룬 뉘른베르크 재판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보내서 수석검사를 했는데, 그분이 모두진술에서 ‘뉘른베르크 재판소가 사건을 심판하지만 결국에는 그 판결에 의해 재판소가 심판을 받는다. 우리가 피고인들을 재판하는 기록이 나중에 역사가 우리를 평가하는 기록이 된다’, 그런 얘기를 했다. 우리도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이 후세에 모범이 되는 역사적인 판결이 되도록 하는 게 참으로 중요할 거다.”

―헌재 밖에서도 탄핵 찬반 시위가 경쟁하듯이 벌어지고 있다. 헌재가 법에 따라 판단하도록 맡겨놔야 하는 것 아닌가.

“우선 촛불시위에 의해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이루어진 것까진 좋지만, 일단 소추가 돼서 헌재에서 재판하는 이상 탄핵을 하라, 말라 이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개헌이 정치권 안팎에서 화두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도 고별사에서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나.

“내각제가 좋으냐 대통령 4년 중임 혹은 5년 단임제가 좋으냐, 그런 건 제 전문분야가 아니고, 제가 얘기할 입장도 아니다. 다만 대통령 권한이 너무 막강하게 돼 있다며 개헌 필요성이 얘기되는 것 같은데, 우리 현행법에서도 총리가 대통령한테 내각을 추천하게 돼 있고 내각 해임 제청을 할 수도 있다. 소위 책임총리제도라는 게 멀리 있는 제도가 아니고 현행법에 이미 있다. 그것을 행사 못 한, 운영을 못 한 우리가 잘못이다. 그럼 어떤 헌법을 갖고 오면 완전히 제도의 폐단을 없앨 수 있을까. 지금도 총리가 제대로 하면 되는 거다.”

2시간이 지나 인터뷰를 마칠 때가 돼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쉽지 않은 경험을 하셨다. 우리나라로서도 큰 자산인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사실 인터뷰를 안 하려고 했다. 인터뷰를 하면 들어 있는 것을 내놓게 돼 안에 있는 게 점점 다 나가서 사람이, 심하게 말하면 빈 깡통이 되는 기분을 느낀다고나 할까. 내실을 보전하고 있는 게 좋은데… 그래서 이제 인터뷰를 그만하고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내용을 생산하도록 나 자신을 좀 채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제가 게으르기도 하고, 또 비밀스러운 얘기도 있고, ICTY 재판이 아직 항소심 진행 중이고 해서 그렇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제재판소에서 생활했던 얘기를 책으로 쓸까 하고 있다.”

인터뷰 = 김세동 부장 (사회부) sdgim@munhwa.com
e-mail 김세동 기자 / 사회부 / 부장 김세동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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