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徐遊記>(1064) 51장 대통령 - 19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중국 대륙의 절반을 점령혔어.”

어깨를 편 이응호가 소리치듯 말했다. 전주 덕진동의 사무실 안이다. 사무실에는 동창회 총무 변기성과 지나다가 들른 동창 세 명까지 다섯 명이 둘러앉아 있다. 이응호가 말을 이었다.

“근디 광개토대왕이 여론조사를 허고 나서 군사들을 이끌고 점령허러 댕겼냐?”

“그기 무슨 새똥 빠진 소리여?”

지나다가 들른 동창 이규정이 물었다.

“그때 무신 여론조사를 혔다고?”

“이 자식은 꽉 막혀서.”

눈을 흘긴 이응호가 동창들을 둘러보았다. 오후 3시 반,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다가 동창들이 찾아오자 소주를 마시는 중이다. 내일 한시티에서 열리는 정상회담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광개토대왕으로 샌 것이다. 술잔을 든 이응호가 동창들을 보았다.

“광개토대왕이나 서동수 대통령이나 지도자, 통치자는 마찬가지 아니냐?”

“그렇지.”

자주 싸우지만 손발도 맞는 변기성이 대답했다.

“광개토대왕도 대통령이나 같지.”

“그러니까 말여.”

이응호가 붉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소신껏 국가를 제 의지로 이끌어 가야 헌단 말이다. 그런 지도자가 결국은 국가를 발전시켰고 나중에 역사에 남았단 말이여. 여론에 휘둘리면 안 돼.”

“맞다.”

변기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제 소신이 있어야지. 주관은 뚜렷해야 된단 말이여.”

“통일되기 전의 남한 대선은 가관이었지. 표만 된다면 별놈의 공약을 다 내놓았으니까.”

이응호가 거들었더니 이제 이규정이 나섰다.

“내가 보기에도 개판이었다. 선거 때 만들어진 법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 같더라니께.”

“다 지난 일이지.”

변기성이 정리했다.

“대통령도 국민이 맹그는 거다. 국민 수준이 바로, 대통령 수준이여.”

“그렇지.”

동창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서동수가 바로 우리들의 얼굴이지.”

“대한민국의 얼굴이여.”

이응호가 감동한 얼굴로 동창을 보았다.

“너 말 잘헌다.”

“내가 요즘 살맛이 난다. TV를 보면 벌떡벌떡 기운이 나.”

“뭐? 어디가 벌떡거려?”

이규정이 나섰다가 동창의 표정을 보고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수십 년 동창 사이에는 ‘임자’가 있는 법이다. 드세다고 소문이 난 놈도 웬일인지 꼼짝 못하는 상대가 있다.

강아지를 어릴 적에 길들이는 이치하고 똑같다. 그때 변기성이 나섰다.

“서동수가 오입질하는 버릇이 흠이 아녀 이제는.”

“뭐여 그럼? 그게 잘허는 짓이냐? 상을 줄 일이냐고?”

술기운에 달아오른 얼굴로 이규정이 묻자 대답을 동창이 했다. 회사 중역으로 명퇴한 박양수다.

“인간적인 매력이 되는 거지. 남자들의 로망, 돈 벌어서 놀고 싶다는 꿈, 그런 것들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 거다.”

“흥, 콩깍지들이 씌어서.”

“다 그렇게 사는 거여, 인마.”

그때 흥을 참지 못한 이응호가 말했다.

“야, 내가 한잔 살팅게 노래방 가자.”

요즘은 장사가 잘되어서 노래방 골목에 가면 도우미 여자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전쟁 직전인데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