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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2월 15일(水)
소통 요체는 大鵬처럼 크게 보는 것… 너무 세세한 설명은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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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안은진 기자 eun0322@

김정탁의 장자 이야기 - (22) 표현과 커뮤니케이션

지금 여기에 어떤 언설이 있는데 이 언설이 옳은 건지, 옳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옳은 거든 옳지 않은 거든, 또 그 중간에 속하는 거든 시비를 일삼는 세상의 언설들과 다르지 않다. 그렇더라도 이 언설에 대해 얘기해 보자. 처음(始)이 있으면 그 전의 처음(未始有始)이 있다. 그러면 그 처음의 처음(未始有未始有始)도 있다. 또 있음(有)이 있으면 없음(無)이 있다. 그러면 있음/없음이 구분되기 전 처음(未始有有無)이 있고, 있음/없음이 구분되기 전 처음의 처음(未始有未始有有無)도 있다. 그럼에도 느닷없이 있음/없음의 구분이 생겨나니 있음/없음의 구분이 정말로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다. 지금 내가 말했지만 말한 게 정말로 말한 건지, 아니면 말하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장자’ 제물론(齊物論) 중반 이후쯤에 나오는 글이다. 몇 번을 읽어봐도 장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제물론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이 부분에선 더욱 헷갈린다. 시중에 나온 장자서도 여기선 해석이 제각각이다. 물론 납득할 수 없는 해석도 적지 않다. 문맥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해서이다. 그렇지만 해석의 어려움을 뚫고 글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면 장자의 논리적 완벽성 및 풍부한 상상력에 또 한 번 놀란다. 짧은 글이지만 오늘날 서양철학이 주목하는 언어의 핵심 사안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어서다. 그러면서 철학자의 어려운 학술어가 아니라 가벼운 일상어로 서술함으로써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언어철학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이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소통방식을 제시하려는 장자의 섬세한 배려가 아닐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올라선 건 무엇보다 언어를 사용해온 탓이다. 언어를 사용하기 전에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감각기관, 즉 눈·코·귀·입·몸의 오관으로만 커뮤니케이션했다. 그런데 인간이 언어를 만들면서 대상에 대해 정확하고 구체적인 표현이 가능해졌다. 즉 언어를 통해 존재의 객관적이며 명료한 재현(再現)이 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보다 객관적이고 명료한 재현을 위해서 인간은 대상의 의미를 나누는 방식을 취해 왔다. 그런데 의미를 나누면 나눌수록 표현을 위해 더 많은 언어가 동원돼야 한다. 장자는 이런 언어의 증가를 재미나게 보여주기 위해 “처음(始)이 있으면 그 전의 처음이 있는데 그러면 그 처음이 있기 전의 처음도 있다”는 다소 생뚱맞은 예를 제시한다.

일상의 대화에서 처음을 말할 때 우리는 그냥 처음이라고 말한다. ‘시자(始者)’이다. 그런데 분석적이거나 과학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은 ‘처음의 처음’이 있지 않으냐고 묻는다. 장자는 처음의 처음을 ‘미시유시자(未始有始者)’라고 표현한다. 미시유시자는 시자에 미시유를 보탠 말이다. 물론 더 분석적이거나 과학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은 ‘처음의 처음의 처음’이 있지 않으냐고 따진다. 장자는 이를 ‘미시유미시유시자(未始有未始有始者)’로 표현한다. 미시유미시유시자는 미시유시자에서 미시유가 보태진 말인데 처음 시자에서 무려 6자나 늘어났다.

이제 장자는 처음(始)에서 유(有)/무(無), 즉 ‘있음/없음 구분의 처음’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논의를 관념적 차원에서 실질적 차원으로 바꾸려는 의도다. 있음이 있으면 없음이 있는데 이것이 있음/없음 구분의 처음이다. 그런데 분석적이거나 과학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은 ‘있음/없음 구분의 처음의 처음’이 있지 않으냐고 묻는다. 장자는 이를 ‘미시유유무자(未始有有無者)’로 표현한다. 더 분석적이거나 과학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은 ‘있음/없음 구분의 처음의 처음의 처음’이 있지 않으냐고 따진다. 장자는 이를 ‘미시유미시유유무자(未始有未始有有無者)’로 표현한다.

만약 장자가 지금 시대의 사람이라면 ‘처음’ 및 ‘유/무 처음’의 예를 0/1의 조합으로 이뤄진 디지털 언어의 예로 바꾸지 않을까? 디지털 언어에선 첫 번째 단계의 없음과 있음은 ‘0’과 ‘1’로 표시된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의 없음과 있음은 0/1을 제곱한 것, 즉 2(0/1)²=4가 되면서 ‘0001’ ‘0010’ ‘0100’ ‘1000’으로 구분된다. 로그함수로 표시하면 ‘log₂4=2’이다. 세 번째 단계의 있음과 없음은 0/1을 세제곱한 것, 즉 2(0/1)³=8이 되면서 ‘00000001’ 식 조합이 8개가 생겨난다. 로그함수로 표시하면 ‘log₂8=3’이다. 0/1의 제곱이 계속적으로 이뤄지면 구분할 수 있는 대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를 응용한 게 상품의 바코드다.

이처럼 표현방식이 늘어나면 의미는 보다 객관화되고 명료화된다.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딜레마가 여기서 생겨난다. 표현방식이 길어지더라도 의미의 객관적이고 명료한 재현을 위해 애쓸 것인가, 아니면 의미의 객관적이고 명료한 재현을 다소 후퇴시키더라도 언어 사용의 편리함에 중점을 둘 것인가 사이의 딜레마다. 이를 커뮤니케이션학 전문 용어로 설명하면 전자가 정세도(精細度·definition)를 높여 ‘기의=기표’로 만드는 작업이고, 후자가 정세도를 낮춰 기의≒기표로 만드는 작업이다. 즉 눈이 나쁜 사람에게 높은 도수의 안경을 끼우면 정세도를 높이는 일이고, 낮은 도수의 안경을 끼우면 정세도를 낮추는 일이다. 물론 높은 도수의 안경을 쓰면 자세히 보이지만 눈은 어지럽고, 낮은 도수의 안경을 쓰면 다소 희미하게 보이지만 눈은 편안하다.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할 건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지금 우리는 너무 높은 도수의 안경을 쓰고 커뮤니케이션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처음’이라 말해도 좋을 걸 ‘처음의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세상을 총체적으로 보려 하지 않고 분석(分)하고 분별(辯)하려 든다. 그러고는 이를 객관적 사고 내지 과학적 사고라고 합리화한다. 이를 지지하는 학자군이 혜시(惠施)로 대표되는 명가(名家), 즉 중국판 소피스트들이다. 혜시는 장자와 절친이면서도 장자서 전반에 걸쳐 조롱거리 대상으로 등장한 건 서로의 커뮤니케이션관이 달라서이다. 혜시는 의미의 고정세도(high definition)를, 장자는 의미의 저정세도(low definition)를 각자의 커뮤니케이션 이상으로 삼았다. 문제는 고정세도로 커뮤니케이션할 때 궤변에 쉽게 빠진다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의 엘레아학파에 속했던 철학자 제논도 이와 비슷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나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는 말로 유명하다. 화살이 ‘ㄱ’ 지점에서 ‘ㅎ’ 지점으로 날아가면 화살은 ‘ㄱ’ 지점과 ‘ㅎ’ 지점 사이에 있는 모든 점을 통과하는데 제논은 각 점이 고정되므로 화살이 각 점에 위치하는 순간 움직이지 않는다는 궤변을 편 바 있다. 이런 궤변은 공간을 무한히 분할하는 걸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무한히 분할하면 제논식의 궤변이 성립한다. 이는 처음이라 말하지 않고, 처음의 처음, 또 처음의 처음의 처음으로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불가도 제논이 고민한 문제에 대해 똑같이 고민했지만 그 답은 다르게 나왔다. 대승불교 창시자인 나가르주나, 즉 용수(龍樹)는 ‘중론’의 본품 ‘관거래품’에서 일체 사물의 운동 작용을 과거·현재·미래라는 세 차원에서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미 지나간 것이 지금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이 지금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이미 지나간 것과 지나가지 않은 것을 떼어 놓고 지금 지나간다는 것이 간다는 건 생각할 수 없다.

용수에 따르면 사물의 운동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세 시간(三時)대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지만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전제하지 않고선 현재를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과거·현재·미래는 분리와 함께 연결된 시간 개념이다. 어쩌면 제논은 화살의 움직임을 과거·현재·미래에 동시에 놓고 판단한 결과 궤변에 빠졌다. 이에 비해 나가르주나는 과거·현재·미래를 동 시간으로 보지 않았기에 제논과 같은 모순에 빠지지 않았다. 이것은 분석적 논리와 반대되는 총체적 즉각성 때문이다. 총체적 즉각성에 따른 판단은 ‘그러니까 그런 것’이다. 우리가 늘 접하는 자연의 변화가 그런 것처럼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이것이 장자가 말하는 인시(因是)이자,(2016년 11월 9일자 24면 19회 참조) 밝음으로, 즉 이명(以明)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2017년 1월 11일자 24면 21회 참조)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둠으로, 즉 이암(以暗)을 향해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달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 미디어란 감각기관의 연장이기에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는 도구다. 예를 들어 라디오는 귀의 연장이고, 책은 눈의 연장이고, TV는 눈과 귀의 연장이고, 컴퓨터는 두뇌 연산기능의 연장이다. 이런 미디어를 새롭게 접할 때마다 감각기관의 성능은 크게 증강되고, 또 확대된다. 이처럼 미디어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에 도움을 주지만 소통에 있어선 오히려 방해기제로 작용한다. 시력이 1.0인 사람이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2.0이 돼 대상들 간의 불필요한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합의에 이르러야 소통이 가능한데 차이만 부각돼 서로의 공통분모를 발견하기 힘들어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소통이 가능한가? 의미를 가능한 대략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그러려면 표현방식을 줄여야 한다. ‘처음의 처음’이 아니라 ‘처음’이어야 한다. 동아시아 오행설(五行說),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 오장(五臟), 오향(五向)도 여기서 비롯된다. 다섯 정도로 구분해도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대상을 가까이서 보지 말고 되도록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장자가 일관되게 말하는 소통의 요체다. 그래서 장자서도 대붕의 비상으로 시작했다. 대붕처럼 높이 날아야 하늘이 푸른 것처럼 땅도 하나의 색으로 보일 수 있다. 이때 만물에 어떤 차이가 생겨날 수 있을까? 이런 차이가 시야에서 사라져야만 소통이 비로소 이뤄진다. (문화일보 1월 11일자 24면 21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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