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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2월 15일(水)
다시 심판대에 선 50대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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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고 몇 달이 지난 시점에 이 난을 통해 ‘386, 빛과 그늘’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치열한 20대를 보냈던 386세대들이 중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겪는 애환과 함께 ‘정치인 386’의 독선적, 혹은 기회주의적 처신을 경계한 내용이었다. 며칠 후 뜻밖의 이메일을 받았다. 대략 “부끄럽다. 비난과 지적은 달게 받겠지만, 결과로써 평가받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의 메일은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이 보낸 것이다. 당시 청와대 386의 정점에 있던 그는 선입견과 달리 겸손한 듯했으나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386이 세대로 지칭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그때 기준으로 30대면서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다. 386은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유일한 세대였고, 세대 단위로 정권을 획득한 최초의 집단이다. 그들은 시대적 가치를 공유한 ‘노무현’을 상징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러고는 민주화 시절의 ‘386정신’을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주입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투쟁에는 능했으되 일상사엔 서툴렀다. 순수했으나 전문성이 떨어졌다. 기존 시스템은 철거 대상이었지만, 새로운 것을 건설할 역량은 부족했다. 도덕성이 무기였던 집단이 부패 사건에까지 잇달아 연루되면서 스스로 무너졌다. 집단으로서의 386은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386세대까지 386 정치를 외면한 것은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훗날 이광재는 “기대했던 386 정치인들이 보육·교육·집값 등 민생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386세대가 등을 돌렸다”고 했다.

‘386 정치’가 다시 조명을 받은 것은 지방선거를 통해서다. 2010년 송영길 인천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강원지사가 당선되면서 부활을 알렸다. 2014년에는 안희정 외에 남경필·원희룡·권영진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복잡한 행정업무와 부닥치면서 관념적인 운동논리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정치 감각을 키워왔다. 세상을 바꾸려는 386세대 특유의 잠재 에너지는 여전하다. 관록과 열정을 결합한 50대 386이 2017 대선 레이스에 합류한 것은 예고된 일이다.

대선 흐름에서 운동권 386들은 야권의 두 그룹으로 나뉘어 전선을 형성한 형국이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캠프에는 송영길·임종석 등 지명도 높은 386들이 참모로 포진한 반면, 안희정은 “정권·세대·시대 교체는 386세대의 책임”이라며 직접 출사표를 던졌다. 한때 가치관과 노선을 공유했던 386들이 지금 와서 하는 얘기들은 서로 판이하다. 문재인팀 386은 목소리 높여 ‘대청소’를 외친다. 친일·군사독재 잔재 청산과 재벌 개혁을 벼른다. 북한 미사일 도발에도 사드 배치 보류, 개성공단 재개를 요구한다. 과거 노 정부 시절의 386들이 했던 주장들과 차이가 없다. 촛불 함성에 기대 30년 전의 운동권 논리를 반복하는 모습이다.

안희정은 보수세력과의 대연정 카드를 꺼내며 정반대로 갔다. 그는 이광재와 함께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던 노 정부 386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충남지사가 된 후 “누군가를 무찌르고 소멸시켜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을 버렸다”고 했다. 21세기는 타협과 조화가 시대적 요구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때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며 광장 정서와 과감히 거리를 뒀다. ‘안희정의 함께, 혁명’ 책에서는 “나는 고용과 해고, 투자가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진보 진영의 오랜 노동 관련 금기도 깼다.

원칙과 상식을 중시하는 안희정식 접근은 중도·보수 쪽으로 외연을 확장하며 지지율 급상승을 이끌었다. 아직 한편에선 골수 운동권 출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변신을 의구심을 갖고 바라본다. 또 산토끼 마음을 사려다 집토끼의 미움을 살 수도 있어 향후 지지율 변화를 예측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번 대선에서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생긴 것은 의미 있다. 바로 야권 내의 ‘구(舊) 386’ 대 ‘신(新) 386’의 대결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념과 실용, 국가와 시장, 청산과 공존 사이의 선택이기도 하다. 최대 변수가 이제 대다수 50대가 된 386 유권자의 표심(票心)이다. 지지 성향이 뚜렷한 젊은층이나 노년층과 달리, 50대는 변화 열망과 안정 욕구가 팽팽한 균형을 이룬다. 한편에선 국가 지도자를 꿈꾸고, 다른 한편에선 캐스팅 보트를 쥔 ‘50대 386’ 모두 지금 심판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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