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때던 그 시절 켜켜이 쌓였던 이웃간 情과 사랑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연탄집 / 임정진 글, 지경애 그림 / 키다리

연탄을 아는 어린이가 얼마나 될까. 아직 난방에 연탄을 쓰는 집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흔치는 않다. 겨울이 시작되면 몇 백 장의 연탄을 들여놓던 기억부터 연탄불을 꺼뜨리면 안 된다는 단호한 소명, 벌겋게 달아오른 집게로 달라붙은 연탄을 떼고 눈길에 연탄재를 부수어 깔던 모습까지 지금은 먼 일이 되었다. 그림책 ‘연탄집’은 아궁이의 연탄을 손수 갈아보았던 임정진 작가가 글을 쓰고 “차가운 솜이불 속으로 손을 밀어 넣으면 연탄불에 달궈진 아랫목이 뜨거웠던” 어린 시절의 느낌을 간직한 지경애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었던 연탄의 작은 생활사이기도 하고, 연탄처럼 착실하고 묵묵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바치는 다정한 헌사이기도 하다.

연탄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연밥처럼 보인다. 불에 달궈지면 붉은 꽃송이 같기도 하고 줄 맞춰 쌓아놓으면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성벽 같기도 하다. 주인공 영순이와 필순이는 탄광촌 사택에 사는 자매다. 땅속 700m 막장에서 올라와 퇴근하는 아빠는 늘 그 아래에서 도시락 밥을 먹는다. 동료들과 함께 얼마 전 늦은 합동결혼식을 치렀는데, 겨울비 오는 날 응급차에 실려 나오면서 겨우 목숨을 건지고 탄광을 떠나게 되었다. 다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이제 갱도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서울로 올라온 영순이네는 ‘순이네 연탄 가게’를 차리고 도시의 삶을 시작한다. 석탄을 캐던 아빠가 엄마와 함께 연탄을 팔면서 새살림을 꾸려가는 동안 영순이는 필순이와 함께 아궁이의 연탄을 돌봐야 했다. 영순이는 연탄 배달 일을 돕다가 온통 검댕을 뒤집어쓰면서 탄 구멍을 맞춰 불을 살릴 줄도 아는 멋진 사람으로 자라난다. 영순이네 가족의 기도는 늘 한결같다. 어디에서도 연탄가스 사고가 나지 않게 해달라는 것.

연탄집에서 살아본 부모나 조부모 세대에게는 어제처럼 자연스러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이런 때도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것이다. 연탄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은근히 불편한데, 임정진 작가의 글은 담담해서 좋다. 지경애 작가의 그림은 엷고 부연 무채색의 산자락 동네 풍경과 함께 연탄 때던 시절의 소중한 마음을 고스란히 재현해낸다. 그는 연탄집의 풍경을 가장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화풍을 가지고 있다. 볼로냐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했던 그림책 ‘담’의 연장선에서 이 작품의 그림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겨울이 가기 전에 어린이와 책을 보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는 그림책이다.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