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공간>삶과 죽음 만났던 옛 묘지 터… 모든 것 감싸주는 ‘흙의 생명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에 있는 연희초등학교. ‘장한몽’의 주요 배경인 ‘서대문구 신천동 산 5번지’는 연희초교 뒤편으로 짐작된다. 이문구는 이 소설에서 1960년대 마포와 신촌 일대의 풍경을 정밀하게 묘사했다. 곽성호 기자 tray92@

67 이문구 소설 ‘장한몽’ 배경… 서울 신촌·마포 일대

이문구의 작품은 한국 현대소설사의 진경이라고 평가받는다. 우리말 고유의 가락을 살려낸 예스러우면서도 해학적인 문장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지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장한몽’은 잡지 ‘창작과비평’에 1970년 겨울부터 1971년 가을까지 연재된 약 2700장 분량의 장편이다. 1960년대 서대문구 신천동 산 5번지에 있는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해 닷새간에 걸쳐 2000여 기의 무덤을 광주군 명주리로 옮기는 이장공사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다.

땅주인인 브라운이 공동묘지 자리에 학교를 조성하기 위해 이장공사를 시작하고 현장감독으로 김상배가 부임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이 작품은 이문구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그 어떤 작품보다도 작가의 실제 삶이 진하게 배어 있다. 6·25전쟁으로 인해 졸지에 가족을 잃고 상경한 이문구는 마포와 신촌 일대에서 행상과 잡역부 생활을 오랫동안 해야 했으며, 1965년 가을에는 동네 사람의 권고로 공동묘지를 파 옮기는 일을 두어 달 동안 경험했던 것이다.

‘장한몽에 대한 짧은 꿈’이라는 산문에는 이때의 기억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돼 있으며, 그 기록은 소설 속의 기본적인 내용과도 거의 일치한다. ‘장한몽’은 위의 산문에서 말한 것처럼 “사실(事實)을 사실(査實)한 대로 사실(寫實)하기로 작정”하고 쓰인 소설인 것이다.

공동묘지 외에도 이 소설에는 주인공 김상배와 10여 명의 인부를 따라 그 어떤 소설보다도 세밀하게 1960년대 마포와 신촌 일대의 풍경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작가의 직접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한 실감에 바탕을 둬 와우산, 마포강(마포 앞의 한강), 신촌시장, 아현시장, 모래내, 염리동, 신촌로터리, 노고산 일대, 동교동 골목, 이대 앞 대흥극장, 대한일보사 뒷골목, 신영극장, 신촌역전이 정밀하게 묘사돼 있다. 서울의 변두리였던 이들 공간은 산업화가 진행되던 당시 서민들의 소박한 삶과 많이 닮았다.

공동묘지 현장은 작품 속에서 ‘신천동 산 5번지’로 설정돼 있는데, 이곳은 연희초등학교 뒤편의 외국인학교 터 근처로 짐작된다. 실제로 이문구는 이곳에서 수천여 기에 이르는 묘를 이장한 경험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은 공동묘지와는 거리가 먼 번화하고 세련된 곳이지만, 작품 속의 신천동 공동묘지는 불법적으로 조성된 2000여 기의 무덤과 무허가 판잣집들이 널려 있는 황량한 공간이다. 밤이 되면 공동묘지에서는 연희동 기독교방송국 송신탑과 당인리발전소 송전탑 적신호등만이 보일 뿐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신촌로터리 전경.

세계문학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공동묘지 배경의 소설이 탄생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작품 속 공동묘지의 성격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본래 100기 정도였던 조그만 공동묘지는 6·25가 낳은 수많은 죽음으로 인해 2000기가 넘는 공동묘지가 된 것이다. 공동묘지에 암매장된 시체들을 파내서 새로운 곳으로 옮겨 단장하는 일은 전쟁의 상처에 대한 애도 작업을 나타내는 비유로 적당해 보인다. 전쟁으로 죽은 시체들을 이장하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과거와의 대면과 그 극복이라는 문제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부 구본칠은 공동묘지에서 구두 한 짝을 신은 채 거꾸로 파묻힌 시체를 보고서는, 6·25 당시 부모를 죽게 한 앙갚음으로 자신이 살해해서 암매장한 황승로를 떠올린다.

누구보다 전쟁과 관련해 가장 큰 상처를 지닌 인물은 현장감독인 김상배다. 김상배는 장한몽(長恨夢·오래도록 사무쳐 잊을 수 없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서, “언제나 상대방에게 패배해야만 정상”이라 여기는 열패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있다. 그렇기에 아내와 처가 식구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에서도 자기 자리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상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25가 그의 가족에게 가져온 엄청난 비극을 먼저 들여다봐야만 한다. 평범한 농민이었던 상배의 부친은 6·25 당시 만세를 잘못 불렀다가 경찰관들에게 총살당한다. 이후 상배의 형 상부는 아버지를 죽인 자에 대한 복수심과 약혼녀의 영향으로 좌익 활동을 하다가 끔찍한 고문 끝에 살해당해 수장(水葬)된다. 이 일로 상배는 사회의 온갖 차별과 억압에 고스란히 노출돼 성장한 것이다. 상배가 무력감과 결핍감, 불안과 음울함으로 가득한 사람이 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문구가 자신의 첫 번째 장편소설을 공동묘지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전쟁이 만들어낸 무수한 죽음에 대한 애도를 어떤 식으로든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됐던 실존적인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전쟁으로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배야말로 다름 아닌 이문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남로당에 연루돼 있던 이문구의 아버지는 전쟁 당시 예비검속돼 죽었고, 곧이어 두 명의 형도 좌익으로 몰려 생을 마감한다. 이 일로 할아버지와 어머니도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난다. 시인 고은이 바다에 수장된 이문구의 가족을 염두에 두고 “대천 앞바다에 가면 생선이나 조개를 먹지 않을 일이다”라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문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어디를 가나 있어도 없는 듯하게 표가 안 나고 티가 안 나도록 아무 짓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됐다”고 기술한 바 있는데, 이것은 상배의 무력한 모습에 그대로 연결된다.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는 문제야말로 한국 사회는 물론이고 작가 개인에게도 가장 절실한 문제였던 것이고, 이를 문학적으로 감각화하기에 “전쟁이 버린 숱한 목숨들을 함부로 내다버려” 만들어진 신천동 공동묘지는 그 어떤 공간보다도 적합했을 것이다.

이 공동묘지라는 무대에는 전쟁으로 죽은 시체들뿐만 아니라 무허가 판잣집에 살며 이장 작업을 하는 10여 명의 인부도 등장한다. 이들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억척스러움으로 똘똘 뭉쳐진 인간들, 아니 차라리 짐승들이다. 이들은 운반이 쉽도록 덜 부패된 시체들의 살과 뼈를 추려 내는 일, 쌀뜨물에 간장을 섞어 만든 물을 해골물로 속여 간질병자에게 파는 일,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선물할 돈을 마련하려고 시체의 머리카락을 남몰래 모으는 일 등을 예사로 벌인다. 이런 행위에 비한다면 무덤에서 나온 돼지저금통이나 사발 혹은 시체의 금니 등을 챙기는 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신천동의 공동묘지 이장 작업은 일종의 “황무지 개간 사업”에 해당하며, 우선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논리 앞에 망자에 대한 예의나 산자에 대한 체면 따위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장한몽’에서는 이상필이 인부들을 규합해 상배나 마길식에게 맞서 자신들의 주거와 일자리 등을 보장받으려는 시도가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이러한 시도조차도 노동자나 민중의 숭고한 대의보다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질긴 생존 의지의 차원에서 읽힐 정도다.

처음 보통 사람에 비해 뭔가 결핍돼 있다고 느끼며, 보통 사람이 되고자 했던 상배는 인부들의 억척스러움을 “실체와 실리에 주추를 댄 용기”나 “어느 누구의 논리보다도 고차적인 실천”처럼 높게 평가한다. 상배는 보통 사람의 모습을 인부에게서 발견하고, 그와 같이 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새겨볼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시체의 머리카락까지 잘라 파는 일이 사실은 “증산·수출·건설이 이 땅의 윤리”가 돼 있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전쟁의 상처로 모자란 자가 된 상배는 생존의 논리, 시대의 논리에 그대로 복종하는 ‘보통 사람’이 됨으로써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장한몽’에서 상배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길을 향해 성큼 나아간다. 그것은 이장이 모두 끝난 신천동 공동묘지에서 상배가 최미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미실은 이장 작업 내내 신천동 공동묘지를 헤매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제웅을 찾기 위해서다. 미실의 부모는 아들을 원하지만, 미실의 남동생들은 태어나자마자 죽는다. 이에 미실의 부모는 무당의 말에 따라 미실의 사망신고를 하고 미실의 제웅을 만들어 신천동 공동묘지에 묻었던 것이다. 이후 미실은 이미 죽은 남동생으로 행세하며 유령 아닌 유령으로 살아온 것이다. 상배와 미실은 이 사회로부터 배제된 유령이라는 점에서 서로의 거울이라고 볼 수 있다. 공동묘지가 사라져 절망하는 미실에게 상배는 나름의 충고를 해주는데, 그것은 ‘나’를 잃어버리고 방황해 온 상배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상배는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것’에서 나아가 ‘자기를 만들어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고는 보통 사람이 되고자 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자기를 유령으로 만든 것은 바로 그 보통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 보통 사람들이 하고 있는 짓이 얼마나 추악하고 악랄하며 비인간적인 행위인가도 발견하게 됐고, 이젠 당하기만 할 게 아니라 꺾어 이겨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장한몽’에서 상배가 전쟁의 상처와 시대의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깨달은 최종적인 진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상처로 인해 언제까지 무력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존의 논리에 함몰돼서도 안 된다는 것. 생존의 논리로 전쟁의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으며, 어쩌면 전쟁은 바로 그 생존의 논리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는 것. 이러한 상배의 깨달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작품에는 장마철에 잠시 스쳐 가는 푸른 하늘처럼 상배가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드는 장면이 나온다. 상배는 명주리 공동묘지에 처음 갔을 때, 가을이 한창인 농촌의 풍경에서 풍성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자기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고향은 농촌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배에게 농촌은 낙후된 곳이 아니라 오히려 상배가 서울에서 그토록 뼈저리게 익히고 있는 생존의 논리보다 더욱 중요한 삶의 가치를 담고 있는 성소(聖所)다. 이문구의 농촌에 대한 그 형언할 수 없는 경의와 애정은 도시 변두리의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한 ‘장한몽’에도 강력하게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이문구에게 농촌은 본능적인 아름다움과 행복의 근원으로서, 그의 문학과 삶의 기원인 동시에 도달해야 할 지향점이기도 하다. 하늘과 이 대지가 무상으로 준 것을 이용해서 먹고사는 농촌의 시각에서 보자면, 도시에서의 삶이란 “사람과 사람끼리 사람을 이용해 먹고자 하는 생리”에 바탕을 둔 한스럽고 안타까운 것에 불과하다. ‘장한몽’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품으로 감싸 안는 ‘흙의 생명’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농촌이야말로 흙의 너그러움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흙의 생명’이야말로 공동묘지라는 죽음의 공간을 생명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근원적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경재 문학평론가·

숭실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