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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골프와 나 게재 일자 : 2017년 02월 17일(金)
“1년만에 78타 치자 부친 ‘금지령’… 5년간 골프채 못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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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형 ㈜제농 대표가 지난 9일 제주 오라 골프장 내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웨지 샷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태형 ㈜제농 대표

종자 육성 전문가 김태형(50) ㈜제농 대표는 ‘씨앗 대박’을 꿈꾸는 촉망받는 농업기업인이다. 김 대표는 열악한 국내 농업 현실을 대변하듯, 농업 관련 회사로는 보기 드문 2세 경영인이다. 김 대표는 ‘종자 식민국’ 한국을 언젠가는 반드시 ‘종자 독립국’으로 발돋움시키는 꿈을 좇고 있다.

지난 9일 제주 오라 골프장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 회사와 골프장은 차로 불과 10분 거리다. 전날 밤부터 내린 눈으로 코스가 눈밭으로 변해 하는 수 없이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사진을 촬영한 후 클럽하우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대표의 원래 꿈은 건축학도였다. 하지만 부친(김귀언·2016년 작고)의 뜻에 따라 농대(고려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했다. 전공을 살려 농약, 종자, 비료 사업을 하는 한농(현 LG화학계열 팜한농)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부친이 경영하던 회사로 옮겼다. ㈜제농은 제주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이 농사를 그만두고 “장사나 하겠다”며 1968년 설립한 회사다. 부친이 지난해 3월 작고하면서 김 대표가 경영을 맡았다. 다른 형제가 있었지만 부친은 김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게 했다. 김 대표가 경영을 시작한 뒤 내수는 물론 일본과 중국 수출길도 열렸다.

김 대표와 골프의 인연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의 권유로 골프에 입문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다니다가 부친의 회사에 입사한 뒤 1년쯤 지났을 무렵이다. ‘보기 플레이어’ 수준이던 부친은 제주 오라 골프장 회원이었다. 제주도 내 골프장이 4개뿐이던 시절. 부친은 “장래를 위해 골프를 배우라”면서 아들을 골프 연습장으로 이끌었다. 연습장에서 석 달 동안 ‘똑딱이 볼’만 쳤는데, 어느 날 부친이 연습장으로 찾아와 아들을 지켜봤다. 그러곤 “그 정도면 됐다”며 “내일 라운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김 대표는 부친과 함께 매일 새벽 오라 골프장에서 라운드했다. 당시엔 전동카트가 없었기에 매일 9홀씩 돌았다. 한여름에는 부자가 첫 팀으로 나가 두 시간도 못 돼 9홀을 마치고 오전 7시 30분 집으로 돌아가 아침을 먹고 회사로 출근했다. 이런 일과를 70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국내 종자 시장은 2000억 원 규모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제농은 50억 원 전후 매출로 국내 매출 순위로는 10위 정도다. 제주에 본사를 두고 전국 지사를 통해 개발한 채소 종자와 농약을 판매하고 있다. 김 대표는 양파 종자의 국산화 덕분에 개량 종자를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양파 시장의 90%를 일본 수입 종자가 점유하고 있다.

김 대표가 최고의 골프 기량을 뽐낸 날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다. 김 대표의 베스트 스코어는 78타. 골프 입문 1년도 안 돼 작성했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장타를 날렸다. 드라이버로 270m를 펑펑 날리는 재미로 골프에 쉽게 빠져들었고, 지금도 230m를 보낸다. 프로와 엇비슷한 장타를 날리는 덕분에 제주 지역 내 프로들과 자주 어울려 다녔고, 자연스레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어느 날 부친과 동반하기로 했던 A가 빠지면서 김 대표가 대타로 출전했다. 김 대표는 어르신들과의 라운드여서 긴장했고,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했다. 치는 족족 핀에 붙고, 홀로 쏙쏙 빨려들어 갔다. 78타. 김 대표는 부친의 칭찬을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배운 지 1년도 안 돼 70대 스코어가 나오자 부친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고, 집으로 돌아가 아들에게 “앞으로 골프를 치지 말라”고 지시했다. 부친은 아들이 남들처럼 골프에만 빠질까 봐 금지령을 내렸던 것. 김 대표는 회사 업무에 전념하라는 의미를 알았기에 대꾸 한 번 못하고 이후 5년 동안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 김 대표는 “아마 5년 동안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올랐겠지만, 지금의 회사를 맡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골프를 그만두고 소일거리를 찾다 스쿠버 다이빙을 익혔고, 등산을 자주 다녔다. 마흔 전후로 2년마다 네팔로 에베레스트 원정길에 나섰는데 지금까지 4차례 다녀왔다. 4번 모두 9박 10일 일정이었으며 5600m 고지까지 올랐다. 김 대표는 “힘들어도 계속 산을 오르는 건 조만간 다가올 내리막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며 “골프 역시 좋은 일 뒤에는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길 수 있기에 흥분 대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말했다.

종자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온 김 대표이지만 흥부처럼 단순한 ‘씨앗 대박’만을 좇는 것은 아니다. 김 대표는 “종자산업은 100년, 200년을 내다보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화훼산업 선진국이자 ‘종자 대국’ 네덜란드에서 개발한 파프리카 종자 1㎏은 금값보다 비쌀 정도다. 종자산업은 ‘밭에서 나는 반도체’에 비유될 만큼 고부가가치산업이다. 김 대표는 “처음엔 물려받은 회사를 말아먹으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컸다”며 “이제는 새로운 종자가 탄생하는 순간 자식을 새로 보는 것과 같은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삶, 골프 철학이다. 김 대표는 “인생, 사업과 마찬가지로 골프에서도 요행이란 있을 수 없다”며 “골프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는 스포츠”라고 정의했다.

제주=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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