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독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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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말레이시아 경찰이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김철(김정남) 살해 관련 남성 용의자 5명 모두 국적이 북한으로 드러나면서 북한 소행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통일부도 이날 김정남 피살 사건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다고 본다고 논평했다. 이는 북한 김정은이 배다른 형 김정남 살해 사건과 관련 있음을 의심케 하는 것이다. 김정남의 사인과 관련한 말레이시아 당국의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독살(毒殺)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독살은 사랑과 재산 다툼 외에도 권력자가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흔히 사용돼 왔다. 1978년 불가리아 반체제 인사 게오르기 이바노프 마르코프의 ‘독 우산대’ 피살 사건, 2004년 자카르타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여객기에 탔다가 숨진 인도네시아 인권 운동가 무니르 사이드 탈리브의 독극물 중독사 등은 독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영어의 포이즌(poison)에 해당하는 ‘독(毒)’이라는 한자는 뜻만 봐도 섬？해진다. 해악, 비참하고 참혹한 방법, 해치다·죽이다 외에도 근심하다, 괴롭히다, 미워하다, 원망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밖에 한탄하다, 난폭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 한자는 애초에 사람을 해치는 풀(艸)을 만지지 말라(毋)는 뜻의 상형문자였다. 나중에 약초를 산모에게 너무 많이 먹이면 몸에 나쁘다는 뜻을 담은 회의문자로까지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독’자가 든 한자어 가운데 독시(毒弑)라는 말이 있다. 왕이나 부모, 형 등 윗사람을 독약으로 죽인 경우이다. 만약 김정남이 김정은의 지령에 의해 독살됐다면 ‘독시 사건’이 될 것이다. 한편, 독살이 암살(暗殺)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게 죽였는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진다. 사전상의 의미로만 본다면, ‘오전 9시쯤 국제공항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이번 김정남 피살 사건을 ‘암살’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2011년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된 북한의 고위 간부만도 장성택을 포함, 270명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 김정남 독살까지 덧보태지는 상황이다. 지금, 패악 무도한 살인 통치자를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비등하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북한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려면 ‘북한인권재단’ 출범을 더 방치해선 안 된다. 일이 있을 때마다 인권을 앞세우는 이른바 ‘진보’ 정치권의 각성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