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김정은, ‘金 리스크’ 제거했지만… 對北제재 심화 ‘부메랑’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후폭풍 직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초점이 없는 시선에 무표정한 얼굴로 주석단에 앉아 있다. 김정남 암살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15일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2월 16일) 75돌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北국적 용의자 포착된데 이어
말레이 北대사 ‘음모론’ 제기
국제사회 이목 되레 北에 집중

北반인도적 범죄·테러 공론화
외화벌이도 타격받을 가능성
中의 석탄수입 중단 ‘채찍’에
北, 연간 1조원 이상 손해볼듯

美·中이 北核제재 손잡을 경우
김정은엔 ‘레짐체인지’ 위기도

집권과 동시에 이복형에 대한 암살작전을 지시했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5년 만에 ‘김정남 리스크 제거’에 성공했지만 거센 후폭풍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국적 대리인을 앞세워 ‘완전 범죄’를 노렸으나 결국 북한 국적의 용의자들이 포착된 데 이어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의 섣부른 음모론 제기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압박을 본격화하고 북한 인권문제를 재조명하면서 김정은 정권에 부메랑이 될 ‘악수’를 뒀다는 평가다.

김정은은 일단 백두혈통의 장자인 김정남을 제거해 잠재적인 권력 위협 요인의 싹을 잘랐다. 하지만 김정남 암살 사건에 연루된 동남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와 테러 등이 공론화되고 반북 정서가 확산되면서 북한의 외교 고립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주요국이 북한과 외교적 대립 수준에 그치지 않고 북한의 파견 기관과 무역상에 대해 감시를 대폭 강화하는 등 대북 제재에 나설 경우 이들의 송금활동도 차질을 빚을 개연성이 크다. 또 이번 사건으로 북한의 인권 문제가 재조명되면서 해외 노동자 송출 등 합법을 가장해 이뤄졌던 북한의 외화벌이에 각국이 더욱 감시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최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2321호로 외교공관을 이용한 불법 임대수익이나 밀무역이 상당 부분 막힌 데 이어 자금 확보에 한층 어려움을 겪게 되는 셈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김정남 부검’ 병원 1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병원의 부검실 밖으로 시신 운반용 이동식 침대가 옮겨지고 있다. 지난 13일 피살된 김정남의 1차 부검이 이 병원에서 실시됐지만, 암살에 쓰인 독극물의 정체가 규명되지 않아 현지 독극물 전문가들도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P연합뉴스

북한의 잇따른 돌발행동에 중국도 일단 석탄 수입 금지란 강도 높은 제재에 나섰다. 중국이 19일부터 올해 연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로 한 것은 유엔 안보리 제재 2321호에서 규정한 석탄 거래 상한선을 웃도는 제재로, 북한이 연간 최소 1조 원 이상을 손해 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출범 1개월을 맞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대북 군사대응 필요성을 주문하는 의회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검토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기 싸움을 벌이던 미·중이 북핵 문제에 손을 잡을 경우 김정은 정권에는 ‘레짐 체인지’를 불러올 엄청난 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기류 변화는 지난해 11월 말 안보리 제재 발표 후 독자 제재를 공개하지 않고 상황을 관망하던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이 추가 제재에 나서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EU는 지난해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독자 대북 제재 조치의 초안을 만들어 놨으며 한국 및 미국과 구체적인 내용을 조율 중인데, 북한의 신형 미사일 발사에 이은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제재 수위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또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김정은 정권의 잔학성이 전 세계에 드러난 만큼 북한 인권 문제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논의에 전환점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이미 유엔은 총회 결의를 통해 안보리가 북한 인권 상황을 ICC에 회부하도록 독려하고 있지만, 중국 등 일부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진전이 가로막힌 상황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9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내달 초 유엔인권이사회 등을 계기로 “북한 인권 침해와 관련한 북한 정권의 책임성 문제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새로운 조명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 달 하순 채택될 것으로 보이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김정남 사건의 북한 책임을 묻는 내용이 포함될지 관심사다. 이뿐만 아니라 김정은이 백두혈통 김정남까지 무자비하게 암살했다는 소식이 암암리에 북한 내부에 퍼지면서 북한 권력층의 동요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공포통치가 집권 6년 차를 맞아 한층 광기로 치닫고, 숙청의 칼날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 정권 공고화를 위한 조치가 역으로 측근들의 동요에 따른 정권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