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재단 출연금, 불법 비자금과 달리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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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우 고려대 교수 경영학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한 공익재단 출연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승마선수 지원의 대가성을 이유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7일 구속됐다.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을 대가성으로 지목했던 특검은 합병 결의가 자금 지원 요구보다 빨랐다는 선후관계 모순이 지적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정리와 관련한 지분 매각 규모를 줄여줬다는 새로운 혐의를 들고 나왔다.

과거 정부에서 기업 비자금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의 먹잇감이었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은 제공한 기업과 수령자 모두 형사처벌과 함께 추징금이 부과됐다.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는 아들이 활약했고,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는 형님이 나섰다. 박 대통령은 동생에겐 의절 수준의 단호함을 보였으나 최순실 국정농단을 막지 못해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인수위원회 구성과 국무총리 임명 단계부터 인사는 이상했고, 장관과 비서진이 대통령 발언을 일일이 수첩에 받아 적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받아 적어야 산다는 조롱이 담긴 ‘적자생존’이라는 말도 돌았다. 깨알 메모와 휴대전화 녹음은 정확한 업무 수행보다는 훗날 법적 책임에 대비하는 보험용 성격이 다분했다.

한 놈만 패는 ‘주유소 습격사건’처럼 삼성만 두들기던 특검이 수사기한 연장을 신청했다. 기한이 연장되면 현대자동차와 SK 및 롯데와 CJ도 발가벗겨질 상황이다. 뇌물은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숨기는 것이 보통이다. 기업은 수입 누락이나 경비 가공 계상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해 현금이나 추적이 불가능한 헌 수표로 바꿔 비밀리에 넘긴다. 받은 쪽에서도 기록을 남기지 않고 흔적을 감춘다.

이번 공익재단 출연금은 지출한 기업이 공식적으로 처리했고, 은행의 자금 이체 기록도 명확하다. 결산서에도 표시됐고, 법인세 계산에 있어 기부금으로 손금(損金) 인정을 받았다. 법원이 뇌물죄로 확정하면 세무 처리는 혼동에 빠지게 된다. 공익재단은 입금된 출연금에 대한 결산을 주무 관청에 보고했고, 이는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기도 하다.

‘순환출자 정리 부담의 축소’가 뇌물 대가인 점도 어색하다. 순환출자를 형벌로 금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박 정부 초기에 야권이 순환출자 금지를 들고나오자 여당이 기존 부분은 인정하고 신규분만 금지하는 중재안을 내놔 통과시켰다. 기존 순환출자라도 합병 등으로 지분 구조가 바뀌면 정리할 부분이 생기는데 계산 방식이 난해해 전문가도 골머리를 앓는데 특검이 이를 걸고 나왔다.

출자 규제가 촘촘한 상황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商法) 개정안까지 그대로 통과되면 기업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기업 규모를 줄이는 축소 경영이 유행처럼 번질 것이다. 적극적인 투자를 펼친 삼성과 현대자동차 및 SK의 총수가 모두 교도소를 체험하는 불행한 기록이 수립됐다. 휴대전화와 반도체로 세계를 누비며 국가신용도보다 높은 기업 신용을 유지하는 삼성의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 글로벌 자동차 생산 기업으로 도약한 현대자동차는 물론 폐업 위기에 빠진 하이닉스를 인수해 국가의 보배로 바꿔 놓은 SK의 공로도 인정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 주자마다 대기업 규제 방안은 구체적이고 촘촘한데 비해 일자리 대책은 허술하고 주먹구구식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에 앞장서는 기업가에 대한 격려가 일자리 창출을 이끄는 가장 확실한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