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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오승훈 경제산업부장 게재 일자 : 2017년 02월 22일(水)
‘한국서 기업 하지 말라’는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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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경제산업부장

얼마 전 국내 대표적 석유화학 기업 임원이 전화를 걸어와 “상가에서 우연히 만난 국회의원에게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면서 한참 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의원은 국내 기업들을 비판하다 “정유·화학사들은 더 이상 우리나라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란다. “투자도 안 하고, 낙수효과도 없고, 장치산업 특성상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임원은 “정유·화학산업의 국가 경제 기여에 대한 이해를 떠나 기업의 존재 가치에 대해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하니 순간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사회책에서 배웠던 경제활동의 순환, 기업의 역할에 대한 기본 상식도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의원에게 기업이란 “소비자에게서 이윤을 착취해 자기 주머니에 넣는 도둑” 정도였단다.

사연을 전해 듣는 동안 최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기업 입법 바람이 오버랩됐다. 기업의 입장을 설명할라치면 “기업들이 잘했으면 그러겠느냐”는 불만도 들려오는데, 의원의 인식은 일부 기업·기업인의 비윤리적 경영을 질타하는 입장에서 비롯된 것 같지 않았다. 시장경제 흐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다른 경제이념을 추구하는 까닭일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비상식’이 그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경제 교과서’를 읊는 게 고루하게 보여도, 지금은 오히려 절실한 시점이란 얘기다.

경제 주체 중 하나인 기업은 소비자(가계)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근로자에게 경제활동의 재원인 급여를 지급하고, 세금도 낸다. 국세청의 연간 총 징수액은 2015년 기준 204조2912억 원이다. 이 가운데 기업이 납부한 법인세액이 20.9%인 42조6503억 원이다. 세금을 내고도 남는 이윤 중에 적정액은 재투자를 한다. 국내 기업의 연간 총 투자액이 1455조2487억 원에 달한다. 정부의 연간 세수 300조 원과 비교해도 약 5배에 달하는 재원이 국가 경제에 투입되고 있다. 이를 근간으로 산업계 여러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고, 일자리가 생겨나며, 국가 경제 규모가 커진다. 이른바 ‘낙수 효과’다. 그래서 경제 불황을 논할 때마다 가장 먼저 “기업 투자 규모가 줄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기업이 사업에서 이윤을 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수익을 내지 못해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거나,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소득·법인 세수에도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원활한 살림살이가 불가능해진다. 어떤 기업이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배가 아프다’고 시기하거나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성공하는 기업이 많아야 기업 지출이 늘어나고, 그게 전해져서 근로자이자 소비자인 나에게도 이득이 돌아온다. 기업들이 적자에 허덕이면 경제가 쪼그라들고, 내 주머니로 들어왔을 ‘기회의 부’ 도 사라지고 만다.

그 의원이 거론한 정유·화학산업의 경우, 국가 기간산업 중에서도 타 산업에 미치는 공급 지장 효과(생산 차질 효과)와 전방 연쇄효과가 철강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산업 생산 피라미드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정유·화학산업이 없다면, 하위의 제조업 생산 활동이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이렇듯 국가 경제 파급력이 큰 정유·화학 기업들은 지난해 사상 유례없는 실적을 기록하면서, 국내 기업 영업이익 상위 20위 중에 7곳을 차지했다. 이들 7개 기업의 법인세 추정치만 3조 원이 훌쩍 넘는다.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기여도는 1위다. 그 요인을 정유·화학산업의 경쟁력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석유산업은 세계 6위, 석유화학사업은 세계 4위 수준이다. 이들은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석유 비축 의무도 지고 있다. 그게 ‘에너지 안보’다.

사정이 이런데도 기업이, 정유·화학 기업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는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이 땅을 떠나야 하는가. 투명경영부터 산업체질 개선까지 기업을 탓할 일이 적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놓고 토론해야 하는 게 선량(選良)의 책무 아닌가. 무소불위의 입법권을 일도양단, 이분법의 잣대로 행사한다면 국민을 대의(代議)하는 국회의원의 존재 이유는 정녕 없다. 진정 그럴 양이면 당신이 먼저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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