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北, CCTV 등 불리한 부분은 언급안해

당일 4명 출국이유도 안밝혀
2등서기관 등 수사요청 거부

북한이 23일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 형식의 담화문을 통해 김정남 암살 사건이 남한의 음모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적반하장식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전일 칼릿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이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은신하는 북한 외교관과 고려항공 직원까지 동원된 김정은 정권의 기획 암살극임을 폭로하자 이번 독살극이 북한의 책임으로 규정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날 담화문을 보면 북한은 말레이시아 경찰당국의 2차례에 걸친 중간 수사결과 발표와 언론을 통해 공개된 CCTV 영상의 범행 연루 장면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수사 관계자들은 “북한 외교관이 포함된 북한 국적자가 9명이나 떼거리로 연루됐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한 줄도 언급하지 않은 채 미얀마 아웅산테러와 천안함 폭침 사건 때 보여준 오리발 작전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우선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2(KLIA2) CCTV에 드러난 북한 여권 소지 용의자들의 미심쩍은 행적과 도피행각 등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북한 대사관과 당국자들이 왜 하필 지난 13일 범행 현장에 같은 시간에 나타나 현장을 지켜봤는지에 대해 언급조차 없다. 북한이 무관함을 입증하려면 이미 CCTV에 공개된 가장 기본적인 수사 팩트에 대해 설명해야 하지만 북한은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다.

사건 현장을 지켜본 오종길(55), 리재남(57), 홍송학(34), 리지현(33) 등 북한 국적 행동대원 4명이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7일 사이에 김정남을 추적하며 거의 동시에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뒤 예정된 출국 일정을 앞당겨 김정남 사망이 확인된 직후 동시에 출국해 인도네시아-두바이-블라디보스토크 등 1만7000km를 돌아 평양으로 갔는지 언급조차 없다.

북한은 이들 용의자 4명의 말레이시아 소환과 북한대사관에 도피해 있는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 현광성(44)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7)에 대한 면담 등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협조에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 국적자들이 김정남 피살 사건과 무관하다고 자신한다면 북한 정부가 먼저 나서 이들을 말레이시아 경찰에 출두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켕기는 게 많아 신병 인도조차 거부하며 공동조사로 물타기를 하고 수사를 방해하며,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책임회피와 보호에 급급하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북한 대사관 직원들은 서기관 현광성을 모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사람 모릅니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2차 수사결과와 부검 결과를 무시하는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와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의 “수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발표는 근거가 없다”는 주장의 공통점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수사내용은 무조건 인정하지 않겠다는 억지, 생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