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제주에 골프장 유치 앞장섰지만 공직자라 골프채 못잡았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한욱 전 JDC 이사장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인근 정동스크린연습장에서 스윙을 하기 위해 몸을 풀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김한욱 前 JDC 이사장

김한욱(69) 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은 지금의 관광 제주, 골프 천국 제주의 밑그림을 그린 주인공이다.

제주 출신인 김 전 이사장은 제주도 기획관리실장, 국가기록원 원장(1급)과 제주 행정 부지사, JDC 이사장을 역임한 뒤 현재 제주대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지난 13일 김 전 이사장을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김 전 이사장은 “제주는 그 특성상 관광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며 “일자리 창출, 도민 수입 증대 역시 관광산업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이사장이 제주도 관광국장 시절이던 1990년대 초, 그는 TV 토론회에 출연해 제주 관광발전을 위해 현재 4곳에 불과한 골프장을 20곳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엔 골프 관광객이 오더라도 골프장이 모자라 도민들에게 되도록 평일에 골프장을 이용할 것을 권고했을 정도였기 때문. 그의 노력으로 인해 1993년 핀크스를 시작으로 나인브릿지 등 골프장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그가 행정부지사로 재직할 때 허가가 난 골프장 수는 29개로 늘었다.

그런데 김 전 이사장이 골프를 접한 건 ‘국장급’이 된 뒤였다. 공보관으로 재직하면서 출입기자들과 자주 어울리는 ‘면책’을 받았던 것. 하지만 실력은 제자리였다. 골프를 적극 권장하던 제주에서 근무했지만 공직 신분 탓에 눈치가 보여 제대로 골프채를 잡지 못했기 때문. 기량이 부쩍 늘었던 것은 대전에서 국가기록원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김 전 이사장은 “‘기러기 아빠’였기에 퇴근 후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었고, 부하 직원을 불러 회식을 하는 것도 직원들 눈치가 보였다”며 “‘민폐’를 끼치기 싫어 퇴근 후 연습장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운영하던 천안 상록골프장에 주말마다 다녔다. 타고난 장타력을 갖춘 그는 80대 초반 스코어까지 끌어 올렸다. 한 번은 직속상관이던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과의 라운드에서 이글을 작성했다. 파5홀에서 2온을 했다. 그는 이 홀에서 드라이버 샷으로 240m를 보낸 뒤 220m를 남기고 5번 우드로 핀에 1m 붙였다. 허 장관이 부러웠던지 일행들에게 “김 원장이 일 좀 하게 당장 서울로 불러들여야겠다”고 농담 삼아 ‘엄포’를 놨다. 하지만 그는 이후 얼마 안 돼 제주 부지사로 ‘영전’했다.

김 전 이사장의 베스트 스코어는 1오버파 73타. 경기 용인의 레이크사이드골프장 남 코스에서 작성했다. 그날따라 거짓말처럼 모든 샷이 의도한 대로 날아갔다. 장타를 날리는 김 전 이사장은 주로 코스가 긴 곳을 좋아하는 편이다.

김 전 이사장은 JDC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제주도 기획관리실장 시절에 만든 아이디어였다. 외환위기가 불어닥치자 제주 관광산업은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홍콩과 마카오의 중국 귀속이 예정됐기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싶었다. 제주에 동북아 경제자유도시가 필요하다고 보고하자,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은 곧바로 지자체가 아닌 정부 주도로 전담기관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정확하게 10년 후 그는 차관급인 JDC 수장이 됐다. JDC는 3400호 규모의 행복주택을 비롯해 제주공항 면세점, 신화역사공원 등 제주 관광 인프라를 도맡았다. JDC 이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골프를 중단했다. JDC의 산적했던 현안을 해결하는 임무에 전념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지인이나 손님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자, 그는 제주 공직자 출신답게 부킹 창구 역할을 담당했다.

국가기록원장 시절의 에피소드. 당시 김 원장은 김영삼(YS) 전 대통령 사저에서 사흘 동안 재임 기간의 국가기록을 남기기 위해 비디오 촬영을 진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질문서를 들고 취재기자 역할을 하던 그에게 “쉬었다 하지”라고 말하면서 차를 마셨다. 그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우리 공무원 사회는 지금도 대통령님이 계실 때 공무원 골프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김 전 대통령은 미소를 머금으며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 제대로 일하려면 ‘(골프) 할 시간이 있겠나’라는 취지로 말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공직자 골프금지령의 지시는 문서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YS의 뜻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국무총리나, 관련 장관 등이 골프를 하지 말라고 전달했던 것.

김 전 이사장은 “YS와는 반대로 DJ가 대통령이었을 땐 공직자 골프에 관대했다”고 기억했다. DJ가 청와대에서 체육인초청 오찬 행사를 마련했다. 당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우승했던 김미현이 헤드 테이블에 앉아 대통령에게 “외국에서는 한국이 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건넸다. DJ가 이유를 물었다. 김미현은 “공직자들이 공휴일에 골프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DJ는 곧바로 “난 그런 지시를 한 적 없다”며 비서진까지 불러 자신의 말이 맞다는 걸 확인시켰다. 김 전 이사장은 이 대화가 이후 ‘공직자 골프 해금령’으로 인식됐다고 설명했다.

한 번은 주말에 후배 등쌀에 오라 골프장에서 라운드했는데 그 후배가 덜컥 홀인원을 했다. 당시 홀인원 부상으로 동남아 비즈니스 항공권 2장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동반자의 홀인원 사실 확인이 필수였다.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등을 적어야 했고, 김 전 이사장은 한참을 망설이다 마지못해 볼펜을 들었다. 당시 공직자 신분이었기에 행여 골프 친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

김 전 이사장은 “제주의 골프 산업은 지금 위기”라며 “세제 문제보다 과잉공급 탓에 출혈경쟁이 이어지고 있어 골프장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골프장 등 인프라는 충분히 갖추고도 비용적인 메리트가 부족하고 항공편마저 부족해 제주를 외면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