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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er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2월 28일(火)
“누군가에게 밥 차려주는 게 나한테도 위안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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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천운영은 돈키호테다. 그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빠져 스페인을 누볐고, 어느 날 갑자기 스페인 레스토랑의 셰프가 되어 나타났다. 소설가의 변신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그는 “일단 시작한 일이니 적어도 2년은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냐”며 웃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스페인 레스토랑 연 소설가 천운영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의 ‘돈키호테’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햄릿’이야말로 16∼17세기 유럽 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돈키호테는 정말 훌륭한 소설이다. 현대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원형이 그 안에 이미 다 포함돼 있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건 뭔지 아나? 돈키호테가 실은 음식 소설이라는 점이다. 글을 쓰는 제가 식당을 차린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난 14일 낮 12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240-29번지 2층 주택건물의 스페인 레스토랑 ‘라 메사 델 돈키호테’(돈키호테의 식탁). 만나기로 한 천운영(46) 작가가 차를 몰고 나타나더니 반가운 듯 수줍은 듯 미소 지었다. 지난해 12월 15일 ‘돈키호테의 식탁’을 개업한 지 꼭 두 달째. 아직 레스토랑 일이 손에 익지 않아 마음만 급한 표정이 역력했다. 게다가 소설가로서의 인터뷰가 아니라 레스토랑을 연 오너 셰프로서의 인터뷰에 살짝 긴장한 듯. 그러나 돈키호테, 음식, 소설 이야기를 차례로 꺼내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인터뷰 중간중간에 걸려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는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활짝 웃었다. 어머니가 지금 시장에서 장 보는 중이라면서…….

천 작가는 국내 대표적 중견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레스토랑을 열게 된 배경엔 뜻밖의 사연이 있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다시 읽다가 숨어 있는 음식 이야기에 꽂히게 됐고, 음식기행과 음식점 개업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동안 일부 알려진 내용. 하지만 더욱 결정적인 이유는 반려견 때문이었다.

음식기행은 ‘본업’인 글을 쓰기 위한 방편이었다.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버무리는 게 장기인 천 작가는 여행에서 받은 느낌을 글로 옮길 작정이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돌아온 어느 날, 15년간 동고동락해온 미니어처 핀셔종의 반려견 ‘민’이 죽었다. 여전히 ‘싱글’로서, 가족이나 다름없던 반려견을 잃고 천 작가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러다가 문득 레스토랑을 열기로 결심했다.

“시간상으로는 2013년 스페인에서 한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먼저다. 그때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푹 빠졌다. 음식 이야기가 제법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후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이후 2년간 스페인을 오가며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했다. 그러다가 2014년 말쯤 집에 돌아왔을 때 민이 몇 번인가 발작하는 걸 봤다. 측은한 마음에 밥을 만들어주고 잠시 밖에 나갔다 왔는데 민이 그걸 다 먹고 배변까지 한 후에 죽었다. 부모님이 다 계시기에 주변의 아주 가까운 존재가 사라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너무 충격이 컸다. 내가 어떤 죽음에 대해 뭔가 크게 잘못한 것 같았다. 불현듯 민이 마지막으로 밥 먹은 모습이 떠올랐고 그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내가 뭐라도 해준 느낌이랄까. 누군가에게 밥을 차려주는 게 나한테도 위안이 되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나 막상 레스토랑 일은 만만치 않았다. 지난 두 달간 허둥지둥했다. 처음엔 오전 10시에 레스토랑에 출근해서 점심 손님을 받고, 다시 오후 3시부터 저녁 준비를 했으나 병원에 두 번 다녀온 후로는 점심 영업은 포기했다.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내가 주방에서 직접 다 한다. 점심은 도저히 못 하겠더라. 실력에 맞게 저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오후 2시쯤 출근해 재료를 손질하고 테이블을 세팅한다. 영업 시간은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다. 그러나 아직도 영업시간을 모르고 점심에 방문하는 손님들이 계시는데 죄송할 따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손익계산서는 형편없다. 밥 해주는 것만 생각했지 비즈니스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계산도 서툴다. 적자 행진이다.

“매출액? 글쎄 아직은 어림없다. 예를 들어 ‘갑오징어 철판구이’라는 메뉴가 있는데 이 요리의 가격이 1만7000원이다. 그런데 이 가격에 맞게 하려면 시장에서 갑오징어 원재료를 5000원 이하에 구매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안 된다. 어머니가 장을 봐 주시는데 엊그제도 갑오징어 가격이 8000원인데 어쩌냐고 전화가 왔다. ‘엄마, 그냥 사’라고 했다. 이러니 늘 적자다. 양심상 싼 재료를 쓸 수는 없다. 아무래도 메뉴판 가격을 좀 올려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테니. 시작했으니까 적어도 2년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나마 등단하기 전부터 친분이 있던 박찬일 셰프의 도움으로 레스토랑을 오픈할 수 있었다. 개업식 때는 직접 찾아와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도와줬다. “소설가가 식당 하는데 ‘짜치면’ 안 된다”며 도와줘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처음엔 “얌전히 글이나 계속 쓰라”며 반대했던 어머니도 팔을 걷어붙였다. 시장 보기와 재료 손질은 어머니 담당이다. 인천에서 거주하면서 매일 신선한 재료를 공수해온다.

“어릴 적 아버지가 공장을 하실 때 어머니는 평생 공장 직원들의 밥을 해주셨다. 전남 순천 분이라 음식에 관한 한 저보다 훨씬 낫다. 오빠 결혼식 때는 집에서 홍어 20∼30마리를 삭혀서 피로연 음식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지금도 어머니가 하는 게 60%, 내가 하는 게 40% 정도 되는 것 같다. 괜히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 그러나 때론 웃음도 난다. 어머니가 장 보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일을 핑계로 모녀가 자주 만나 대화하니 ‘이게 효도구나’ 하는 느낌도 있다. 아버지는 암 수술 후 고향인 전북 고창에 계신다. 레스토랑엔 못 오시고 내가 만든 스페인식 쇠꼬리찜과 해물죽을 보내드렸더니 맛있다고는 하시더라.”

스페인 요리를 배우기 위해 천 작가는 2013년 6개월간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 후 지난해 여름까지 수시로 2∼3개월씩 스페인을 드나들며 돈키호테의 루트를 좇고, 요리법을 배웠다.

“스페인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지역 문화 교류 이벤트에 참여하며 할머니들에게 한국 음식을 알려주고 나는 그들에게서 스페인 음식을 배웠다. 지난해에는 마드리드에서 3개월 동안 요리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스페인의 대표적 요리는 파에야(Paella·끓인 밥)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건 관광객용 음식이다. 정작 스페인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레스토랑에서도 파에야는 안 한다. 그 대신 아로스 칼도소(Arroz Caldoso·쌀을 넣은 해물죽)를 한다. 쇠꼬리찜도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얼마 전 메뉴에서 뺐다. 그밖에 토르티야(Tortilla·밀가루 파이)가 있고 산초가 좋아했던 내장탕, 염장 대구와 오렌지 샐러드, 문어와 감자, 조개술찜 등이 있다. 물론 스페인 전통 음식인 하몽(Jamon·돼지 뒷다리살)도 만든다.”

천 작가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음식에 관심을 가졌다. 레스토랑을 차린다고 할 때도 주변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육식주의자다. 고기를 좋아한다. 식당을 하게 될 줄은 몰랐으나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건 맞다. 지금껏 단편소설을 약 50편 정도 썼는데 음식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건 2∼3편밖에 안 된다. 그걸 보고 내가 확실히 세상을 어떤 요리로 파악하고 있다는 자각을 했다. 잔치 음식을 내는 것, 손으로 만들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음식 외에도 천 작가는 그동안 여러 분야에 폭넓은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해에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자신이 기획한 남극 세종기지 탐사 프로젝트를 다녀온 뒤였다. 윤태호 웹툰작가, 정지우 영화감독 등과 함께 남극에서 체험한 것을 필름에 담았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직접 했다.

“뭔가 기록을 남기는 일에 매력을 느낀다. 이번 스페인 음식기행 때도 영상을 찍었다. 몸에 액션 카메라인 ‘고프로’를 달고 취재했다. 글과 동시에 영상으로 남겨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샘플이 돈키호테의 식탁 페이스북에 있다. 1분짜리 동영상이다. 기회가 되면 레스토랑에 모니터를 설치하고 영상을 틀 생각이다.”

그는 관심 영역이 다양하지만, 그것을 찾는 뿌리는 언어라는 점에서 같다고 했다.

“소설은 텍스트, 다큐멘터리는 영상 언어, 식당은 요리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다. 돈키호테를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이어진 것이다. 다양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번 하면 끝까지 파 보고 싶다.”

그러면 당분간 천 작가의 문학 작품을 보긴 어려울까.

천 작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3권의 산문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첫 번째는 음식 산문집이다. 레스토랑에서 만든 음식에 관한 이야기다. 음식을 만들고, 맛보고, 음식을 매개로 교류하는 이야기가 될 듯하다.

두 번째는 문학 기행집. 돈키호테 소설 속 돈키호테의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 보는 것이다. 바야돌리드에서 시작해 마드리드의 라만차까지 돌았다. 영상으로 기록한 분량만 3테라바이트(TB) 메모리나 된다.

세 번째는 죽은 반려견에 관한 기록이다. 죽기 몇 년 전부터 가장 가깝게 관찰한 대상을 기록에 남겼다. 스케치도 직접 그렸다. 민이 죽고 나서 묵혀뒀던 것인데 곧 마음산책에서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아직 소설은 못 쓴다. 소설은 오로지 소설만 생각하고 집중해야 나오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 대신 앞으로 2년간 3권의 산문집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은 이 레스토랑의 운명과 같을 것이다. 레스토랑이 잘되면 쓰고, 혹은 망해도 쓸 수 있다. 하하.”

마지막으로 천 작가에게 결혼 계획을 물었다. 천 작가는 “우리 아버지보다 더 나이 든 이야기를 한다”고 핀잔을 줬다.

“부모님이 이제는 오히려 겁이 난다고 한다. 괜히 ‘애먼 사람’ 데려올까 봐…. 그러나 내가 밥을 해주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밥을 먹는 게 그립더라. 누군가 내게 요리를 해주는 남자라면 어떨까. 하지만 지금은 손님맞이에도 여유가 없다. 소식 듣고 찾아왔다는 손님, 내 소설을 좋아하던 팬들이 와서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나도 행복을 느낀다. 당분간은 열심히 밥을 차려 드리겠다.”

인터뷰 = 김인구 차장 (문화부) clark@munhwa.com
e-mail 김인구 기자 / 문화부 / 차장 김인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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