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골프에세이>복수초·풍년화·벚나무… 골프장은 ‘봄꽃박물관’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내 마음 봄비는 내리고 봄비는 조용히, 촉촉이 대지를 적시지만 내 마음의 파동은 어마어마하게 크게 울린다. 골프장 잔디 속 새싹은 내 마음을 아는지 조만간 뾰족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2017년 작. 김영화 화백

어느새 2017년 달력도 두 장이 넘어갔습니다. 모레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입니다. 그 요란했던 눈비 바람을 견디어 내고 차디찬 맨땅을 뚫고 봄의 첫 전령 복수초가 올라옵니다. 뒤질세라 홍매화, 백매화가 팝콘 터지듯이 봄소식을 전합니다. 이를 시샘하듯이 산수유와 버들강아지, 벚꽃이 꽃망울을 잔뜩 부풀린 채 때를 기다립니다.

자연은 기다리지 않아도 질서 있게 순서대로 꽃을 피우고 향기를 전달합니다. 꽃과 날아오르는 새들을 보고 볍씨를 뿌리고 맑은 햇살 아래서 된장과 고추장을 담급니다. 우리 사람도 겨우내 익숙해진 묵은 맛을 내려놓고 봄의 새로운 맛을 기다립니다. 청보리 비빔밥, 도다리쑥국과 두릅나물, 냉이된장국과 비빔밥 등 이 새로운 계절의 맛을 떠올리기만 해도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의 뇌는 언제나 새롭고 낯설고 신기한 것을 좋아한다. 낯선 것과의 만남을 통해 이성이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익숙한 겨울을 털어내고 새로운 봄을 이토록 기다리는 이유입니다.

요즘 골퍼들은 봄맞이를 골프장에서 한답니다. 골프장 안에는 복수초, 풍년화 등 야생화를 비롯해 산수유, 벚나무 등 봄꽃나무들이 홀마다 빼곡합니다. 쑥과 냉이 등이 골프장 자연에서 자라고, 클럽하우스에서는 햇된장과 고추장 담그기가 한창입니다. 스타트 하우스 앞에선 고로쇠 물이 겨우내 건조해진 목을 촉촉하게 축여줍니다. 그래서 골프장을 봄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하나 봅니다.

어느 골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골프를 하면서부터 벚꽃여행, 수목원 여행 등을 가지 않는다고. 골프장에서 바로 눈앞에 서 있는 꽃과 나무를 볼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골프장은 자연의 보고이자, 자연박물관입니다.

골프장 주변에 사는 지인이 라운드한 뒤 집에 들르라고 초청합니다. 갓 볶은 코나커피 향이 좋으니 봄 햇살 아래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자고 합니다. 봄 봄 봄 노래를 흥얼거리며 골프장의 봄을 기다립니다. 꽃과 나무와 새가 있는 풍경, 봄바람에 실려 오는 커피 볶는 향기가 있는 골프장은 그래서 더욱 기다려집니다.

겨우내 토실토실해진 / 하얀 살을 뽑아 헹군다 / 아직 잠들어 있는 흙과 흙무더기 / 제법 빨라진 물살에 씻겨 나가는 / 흙의 잔뿌리 사이로 / 쏜살같이 살아나는 숨. 숨. 숨들 / 겨울은 비명도 없이 도랑을 타고 떠내려간다 / 봄바람보다도 빠르게 / 누군가 / 허연 허벅지를 드러낸 채 발을 씻는다 / 남의 설렘과 아찔한 현기증은 생각지도 않은 채. <봄> 이종현 시 전문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