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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3월 08일(水)
인간이 못가본 미래, 외계인엔 과거·현재와 동일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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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과학 이야기 - (23) 영화 ‘컨택트’ 속 외계인의 思考체계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컨택트’(사진)를 재밌게 봤다. 공상과학(SF)작가 테드 창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거다. 테드 창은 내 주변의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영화가 나오기 전에도 이미 유명스타다. 물리학자를 대상으로 인기투표를 하면 분명히 최상위에 오를 작가다. 테드 창은 소설의 양념 정도로 적당히 끼워 넣는 정도가 아니라, 본격적인 과학 내용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다. 여기서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한다. 물리학에서 수식으로만 접했던 건조한 내용을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살을 입혀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시키는 그의 소설은 경이롭다. 나는 이번에 영화화된 단편을 그의 소설 중에도 최고로 꼽는다. 내가 대학원에서 ‘고전역학’을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한 적도 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Arrival(도착)’인데,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 제목이 ‘컨택트’로 바뀌어서 헷갈려 한 사람이 많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해 1997년 개봉한 영화와 제목이 같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컨택트’는 테드 창의 단편소설집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직역하면, ‘당신과 다른 이들의 인생 이야기들’) 안에 있는 단편 ‘Story of your life’(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원작이다. 단편 제목의 ‘story’는 단수형인데, 소설집 전체의 제목은 ‘stories’로 복수형인 것이 흥미롭다. 이전에도, ‘백 투 더 퓨처’처럼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영화 속 이야기는 복수의 여러 ‘이야기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 과거에 있었던 일에 살짝 영향을 주면, 인과율을 따라 현재의 상황이 그에 맞춰 변한다는 줄거리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영화화한 테드 창의 단편은 다르다. 소설 제목의 ‘이야기’는 단수형이 맞다. 외계인의 언어를 익힌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듯이 미래도 같은 방식으로 ‘기억’한다. 과거에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 없듯이, 미래에 펼쳐질 상황도 이미 알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소설의 중심 주제 중 하나다. 줄거리는 미래를 향해 진행하지만, 모든 것은 그렇게 되도록 이미 정해져 있다. 미래를 ‘기억’하는 존재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 마치 과거를 바꿀 수 없듯이 말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수형이다.

우주는 영어로는 유니버스(universe)다. 그리고 앞에 붙은 ‘uni-’는 ‘하나’를 뜻한다. 우주는 그 정의에 따라 하나일 수밖에 없다. 외계인이 우리와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면, 우리 우주로 와서 지구를 방문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우리에게 어떤 신호도 보낼 수 없다. 즉.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 이상, 외계인도 우리와 똑같은 우주에서 똑같은 물리법칙을 따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영화 ‘컨택트’의 외계인은 자연법칙을 우리 인간과는 다르게 파악한다. 이 부분은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얘기를 좀 더 해보자.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운동’이다. 특히, 물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때, 미래에는 어디에 있을지를 예측하는 것이 뉴턴의 고전역학의 중심 주제다. 예를 들어 보자. 한 시간에 60㎞의 거리를 가는 자동차가 오늘 오후 1시에 서울에서 부산을 향해 출발하면 1분 뒤인 1시 1분에는 출발한 곳에서 남쪽으로 1㎞ 떨어진 위치에 있게 된다. 1시간은 60분이고 60분에 60㎞를 가니 1분이면 1㎞에 해당해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자동차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긴 전체 시간을 잘게 자르고 잘라 아주 짧은 시간 간격으로 나누고, 현재의 위치와 속도로부터 잠깐 뒤의 위치를 계산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자동차의 임의의 미래의 위치를 구해 나갈 수 있다. 내가 레이저포인터의 스위치를 누를 때 튀어나오는 빛알(혹은 광자, 영어로는 photon) 하나의 운동을 뉴턴역학으로 설명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레이저포인터의 한쪽 끝에서 출발한 빛알은 현재에서 미래로 순간순간 나아간다. ‘지금’에서 시작해 바로 다음을 구하고, 이를 새로운 ‘지금’으로 해 그다음을 또 구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 시간을 잘라 조금씩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뉴턴의 고전역학이다. 고전역학에서 뉴턴이 택한 사고의 틀은 시간을 잘게 나누는 ‘미분’을 이용한다.

고전역학을 기술하는 두 번째 방법이 있다. 바로 ‘적분’을 이용하는 거다. 적분의 꼴로 주어지는 어떤 양을 생각하고 이 양이 가장 작은 값을 갖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전체 경로를 한 번에 생각하는 거다. 레이저포인터의 한쪽 끝에서 출발한 빛알이 스크린의 한 점을 목적지로 해서 도달하는 데 걸리는 전체 소요 시간이 이 경우에는 적분 꼴로 기술되는 어떤 양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고전역학의 두 번째 틀의 설명방법은 이렇다. 먼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빛알이 나아갈 수 있는 무한히 많은 빛의 경로를 모두 떠올려보라. 이 무한한 수의 경로 중에는 시간이 가장 짧게 걸리는 경로가 분명히 존재한다. 빛알은 바로 그 최소시간의 경로를 따라 나아간다고 기술한다. 흥미로운 것이 있다. 위에서 설명한 고전역학의 두 다른 틀 중 어떤 것을 택해도, 즉, 미분 꼴로 운동경로를 구하나, 적분 꼴로 표현한 어떤 양이 극값을 가진다는 조건으로 운동경로를 구하나, 두 답이 항상 똑같다는 거다. 레이저포인터에서 나온 빛알의 경로는 이리 구하나 저리 구하나, 곧은 직선 모양이 된다. 사실 현대 물리학에서 적분 꼴로 물리학을 기술하는 방법은 미분 꼴로 기술하는 방법과 짝을 이뤄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한다. 양자역학에서도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의 방법이 미분 꼴이라면, 파인만이 제안한 경로적분의 방법은 적분 꼴이다. 이리 구하나 저리 구하나, 답은 같고,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두 방법을 모두 배운다. 둘 중 어떤 방법을 택할지는, 주어진 문제에 따라, 계산과 해석의 편리함을 고려해 그때그때 결정하면 된다.

영화 ‘컨택트’는 자연법칙을 기술하는 미분 꼴과 적분 꼴의 두 방법에 얽힌 세계관의 차이를 묻는다. 바로, 인과율과 목적론의 차이다. 우리는 현재 순간에서 바로 다음 순간으로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미분의 형태를 택해 사고하는 것에 익숙하다. 저 멀리 놓여있는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지금 여기서 시작해 인과율의 단계의 사슬을 이어가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익숙한 미분 꼴의 사고방식이다. ‘컨택트’의 외계인은 우리 지구인의 미분 꼴의 접근 방식을 오히려 훨씬 더 어려워한다. 외계인의 눈앞에서 미래는 과거와 동일하게, 수많은 가능성의 집합에서 적분 꼴로 주어진 어떤 양이 극값을 갖는 경로 전체의 형태로 이미 펼쳐져 있다. 우리가 경로 위의 현재 위치에서 바로 다음이 어딜지를 고민할 때, 외계인은 경로 전체를 한 번에 본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아직 가보지 못한 가능성이라면, 외계인에게 미래는 한 번에 전체가 보이는 경로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처럼 적분의 꼴로 물리현상을 기술하는 방식은 하나같이 일종의 목적론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뉴턴의 고전역학의 테두리 안에서도 목적론적으로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기도 한다. 손에서 놓은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매 순간 돌에 작용하는 중력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돌멩이가 아래로 힘을 받아 움직인다고 설명하는 것이 인과율의 형태를 취한 미분의 방법이라면, 돌멩이가 가진 중력에 의한 퍼텐셜 에너지(혹은 위치에너지라고도 함)가 작은 값을 갖기 위해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진다고 설명하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적분 꼴의 목적론을 닮았다. 힘으로 설명하나 에너지로 설명하나 돌멩이가 아래로 움직인다는 사실, 그리고 운동의 경로는 정확히 동일하다. 물리학 교과서는 보통 여기서 멈춘다. 대개의 물리학자가 멈춘 곳에서도 테드 창의 소설이 묻는 질문은 이어진다. 과거에서 미래를 한 번에 관통하는 딱 하나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어떤 목적 함수를 갖냐고, 미래를 과거처럼 기억해 미래에 닥칠 끔찍한 고통을 이미 알고 있어도 당신은 그 피할 수 없는 외길을 따라 걷겠냐고. 소설의 주인공이 어떤 답을 하는지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당신이 외계인이라면 이미 답을 알겠지만. (문화일보 2월 1일자 24면 22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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