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治와 協治로 국가위기 넘자>‘광장의 분열’ 끝내고 ‘승복’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열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눈물바다’ 10일 오전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자, 서울 운현궁 앞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하던 여성 시위자들이 태극기를 든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① ‘불복의 악순환’ 이제 그만

헌재 결정 불복심리 심화땐
새 대통령 불인정으로 이어져
국가가 나락으로 떨어질 우려

朴·정치권 모두 승복선언하고
시민사회·종교계 등도 나서야

태극기·촛불 서로 포용하고
광장정치 아닌 제도정치 필요

역사의 고비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 온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약 150일에 걸쳐 장장 19차에 이른 주말 촛불시위가 사고 한 번 없이 평화롭게 진행됐다. 사회 원로와 전문가들은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발생한 통합의 위기도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업그레이드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그 첫걸음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승복’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여권이 승복 선언을 통해 민심 수습에 협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복의 악순환’ 막아야” = 원로와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승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른바 ‘불복의 악순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 심리가 팽배할 경우 5월로 예정된 제19대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까지 이어져 차기 정부에서도 극심한 국론 분열과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선에 대한 불복 심리는 새 대통령을 향한 ‘반대를 위한 반대’나 보복성 탄핵 추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10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 심리가 심화되면 앞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될 새 대통령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 세력들이 사사건건 시위와 불복종 운동을 벌이면 국가는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이 차기 대선에 대한 불복으로 이어지면 새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새 정부에서 누구를 자르면 ‘블랙리스트’라고 시비 걸고, 누구를 임명하면 ‘비선 실세’라고 욕하는 식이 되면서 사실상 아무 일도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통령·정치권부터 승복 앞장서야” = 불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박 전 대통령부터 승복 선언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초래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 자신”이라며 결자해지를 촉구했다. 김 전 의장은 “박 전 대통령부터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를 도왔던 사람들도 안으로 삭일 것은 삭이고 갈등을 해소하는 데 함께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혼란을 조속히 수습하려면 박 전 대통령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며 “스스로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고 선언하고 여당과 지지자들에게도 ‘국민통합에 힘을 보태 달라’는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무조건 승복해야 아름다운 승복이라고 할 수 있다”며 “박 전 대통령으로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조금이나마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04년 4월 20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노 대통령을 향해 헌재 승복 여부에 대한 답을 요구한 바 있다. 야권에선 이를 거론하며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고 선언하는 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민 통합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시민사회, 종교계 등과 함께 범국민적 승복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신경식 대한민국헌정회장은 “헌재 결정을 거부하는 것은 곧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라며 “정치권이 이런 점을 국민들에게 잘 설명하고 헌재 결정을 존중할 것을 호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탄핵이라는 제도는 헌법체제 안에서 문제를 풀기 위한 수단”이라며 “이를 부정하면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만큼 승복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악의 경우 이른바 ‘태극기 세력’이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면 자유한국당의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가 그들을 찾아가 뜯어 말리고 승복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헌재 결정 후의 혼란을 생각해서라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대선주자들이 (탄핵 찬성) 촛불시위에 참석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야권 역시 탄핵 반대 세력을 자극할 수 있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광장 정치’, 역할 다해” =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초기 의혹 제기부터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광장의 촛불’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대원칙을 다시 한 번 굳건히 세웠지만, 이제 혼란 수습과 안정적인 새 정부 출범을 위해 주말 시위는 자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장 정치’가 역할을 다한 만큼 ‘제도 정치’로 수렴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탄핵 반대 세력의 반발이 폭력시위 등 극심한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집회 주최 측뿐 아니라 정치권, 시민사회, 종교계 등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양 교수는 “극단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지배력을 가지면 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며 “좌든 우든 이제 자중하면서 차분하게 차기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실장도 “시민들도 반대 측을 비난하기보다는 서로 포용함으로써 광장에서 갈등이 재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남석·김다영·송유근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