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골프에세이>라운드때 의견 충돌 생기면… “네가 옳아” 먼저 말하세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내 마음의 풍경 햇살이 은은하게 비추는 나무 그늘 사이 고요한 음악이 흐르고, 산새 소리에 맞추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겨보리라. 2017년 작. 김영화 화백

봄 햇살을 그냥 앉아서만 기다리기엔 너무 눈부신 며칠 전 점심때, 고등학교 문예반 선배 두 분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났습니다.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가끔 만나면 다시 삶에 단비를 내려주는 비타민 같은 형들입니다. 만나서 맘껏 응석부려도 되는 형들이기에 이날도 점심을 먹고 찻집에서 힘든 삶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형은 살짝 미소를 띤 채 “그래 힘들지”라며 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라는 그 형이 직접 쓴 시와 이야기가 있는 치유를 위한 책이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책장을 열었고, 형이 써준 글귀에 그만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습니다. “사랑하는 아우 종현아, 네가 옳아!”라고 써 있었습니다.

함께 나온 또 다른 형이 말합니다. “환갑의 나이에 은퇴하니 주변에서 ‘더 일해야지, 직장을 알아봐야지’라는 말을 자주 해 불안하다”고. 그러자 다른 형이 말합니다. “아니야 규진아! 30년 넘게 가족을 위해 뛰었잖아. 수고했어, 이제는 천천히 가.”

각박하고 경쟁을 요구하는 시대에 참 위안이 됩니다. 그러고 보니 2년 전 골프를 하면서 서로의 주장만 펼치다가 관계를 끊은 친구가 생각납니다. 형이 책머리에 써준 “네가 옳아”라는 말 한마디였으면 되는 것인데. ‘설사 그의 주장이 틀리더라도 먼저 인정해 줄 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잘 지내지? 지금 생각해 보니 네가 옳았어”라고 형이 써준 문구를 이마주해 보냈습니다. 친구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야, 그동안 많이 반성했어. 친구가 옳았는데…”라며 꽃피는 봄에 함께 골프장에 가자는 답이 왔습니다. 그 복잡하고 미묘했던 모든 것들이 ‘옳다’는 말 한마디에 술술 풀리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골프장에 가서 보면 참 많은 사람이 큰소리내며 자신의 정당함과 억울함을 쏟아냅니다. 천국같이 고요하던 골프장은 시장통이 되어버립니다. “네가 옳아”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

골프 스윙은 반드시 빨리, 강하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골퍼에 따라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부드럽게 쳐야 합니다. 그동안 내 잣대로, 내 방식대로를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강요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골프장에 나가면 제일 먼저 “그래 그래, 네가 옳아!”라는 말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