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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황진선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3월 10일(金)
이제 분노를 가라앉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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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선 논설위원

바벨탑은 쌓아 올리던 사람들의 언어가 나뉘면서 무너졌다. 구약성서 얘기이지만 한 사회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쪼개지면 붕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당연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놓고 부모 자식까지 찬반으로 갈려 화를 내는 지경에 이른 현실을 보면서 바벨탑을 떠올리게 된다.

‘분노하는 대한민국’. 5년 전 일간신문 기획기사의 제목이지만 지금 상황은 더 나빠진 것 같다. 우발적 범죄와 폭력, 자살이 증가하는 것은 한계에 다다른 우리 사회의 분노 때문이며, 저변에는 인간답게 살기가 어렵다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당시 기사의 요지였다. 불안은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 지나친 경쟁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에서 오는 것으로 진단했다.

요즘 새롭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한 세력이 ‘애국 보수’로 불리는 태극기 시위대다. 태극기 시위로 드러난 ‘극우(far-right)’는, 우리 사회의 3분의 1인 보수 세력 내부에서 다시 3분의 1 정도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샤이 박근혜’, ‘샤이 보수’를 감안하면 그 비율이 높아질 수도 있다. 그들은 촛불 시위대의 핵심을 종북 좌파로 보는 것 같다. 김평우 변호사는 저서 ‘탄핵을 탄핵한다’에서 “이번 탄핵은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탄핵이 아니라, 자유·민주·법치를 국시로 한 대한민국 헌법을 민주·민족·민중의 삼민주의, 즉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바꾸려는 대한민국 뒤집기 반역 운동”으로 규정했다.

그러니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시위대에 적대감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박 대통령 탄핵은 좌파의 권력 찬탈이고, 국가의 존망과 자신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는 헌재가 10일을 탄핵심판 선고일로 발표하자 3박 4일간 ‘애국시민 총동원령’을 내려 마지막까지 재판관들을 압박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달 25일 “헌재 결정에 복종하라면 복종해야 하나. 우리가 노예냐”며 탄핵이 인용되면 불복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반대편의 촛불 시위대 역시 그 입장이 요철(凹凸)일 뿐 마찬가지다. 최근 발표된 두 여론조사에 따르면 ‘헌재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반대 의사를 밝혀야 한다’거나 ‘수용 못 하겠다’는 응답이 인용 때보다 기각 결정 때가 2배 가까이로 높았다.

우리 사회에 극우 세력이 등장한 것은 남북이 분단된 상황 탓만은 아니라고 본다. 전 지구촌에 보수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예외적으로 우파가 밀리는 게 아닐까 싶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대표 사례다. 그 이면에는 커지는 빈부 격차와 불평등, 일자리와 복지를 더 이상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는 저소득·저학력 계층의 반(反)이민 정서가 공통으로 깔려 있다.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헝가리·노르웨이·그리스 등 유럽 전역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 역시 사회·경제적인 여건이 다르지 않아 같은 흐름 속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반 이민과 자국 우선주의 정서에 편승해 멕시코인과 무슬림의 입국을 제한했지만, 태극기 시위대에게 북한의 김정은 집단은 훨씬 더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분노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인식과 진단은 지금도 유효하다. 좌파든 우파든, 생존권의 불안에 빠져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웃을 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 204항에서 ‘현대 세계의 상황이 야기하는 불안과 위기의식은 집단 이기심(利己心)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의식 안에 머물 때 탐욕이 커지기 마련입니다’라고 했다. 현대 세계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불안으로 몰아가는데 이를 교정할 수단은 더 요원해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먼저 분노를 가라앉혀야 한다. 헌재 선고에 불복해 시위를 벌이면 한국 사회는 위기에 빠진다. 승리감에 취한 세력이 점령군 행세를 하면 더 큰 분열과 갈등이 생긴다. 김 변호사가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고 한 것이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안희정 충남지사의 ‘선한 의지’ 발언에 대해 “분노가 빠져 있다”고 한 것은 모두 문제다. 정치적 허언으로 믿고 싶다. 한국 사회가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게 하는 데 앞장서지 않으면 지도층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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