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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3월 13일(月)
탄핵이 야당에 울리는 警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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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탄핵 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8명의 헌법재판관 중 대검 공안부장 출신으로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안창호 재판관이 낸 보충의견의 한 대목이다. 만약 기각 결정을 내린다면 안 재판관이 포함될 것이라는 일부 전망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번 탄핵 사건의 성격을 더 명확하게 규정한 것은 의외다. 그만큼 헌재 재판관들 사이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씨에게 한 행위는 헌법 수호 차원에서 용납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22분간 읽은 결정문 요약본을 보면 더 이상 대한민국에 ‘제왕적 대통령’은 없다는 준엄한 선언과도 같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은 절대적 권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의 총재를 맡으며 공천권을 좌지우지했고, 행정부에 대해서도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대통령의 행위가 일부 불법적인 것이 있어도 ‘통치(統治)행위’라는 이름으로 보호돼 왔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러 당정 분리, 국회 권한 강화 등을 계기로 약화됐다가 박 전 대통령 때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사실 현행 헌법만 보면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도 없어지는 등 제도적인 권력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당과 사정(司正),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이를 무기로 제왕적 권력을 유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헌재는 이제 더 이상 대통령이 구름 위에 있는 ‘통령(統領·consul)’과 같은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땅에 내려와 회의나 의식을 주재(preside)하는 대통령(president)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헌재는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은 공정한 직무수행이 아니다’며 헌법과 관련법 위반을 적시했다. 즉, 대통령은 제1의 공복(公僕)으로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온전히 국민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오던 기업들에 대한 압박이나 기부 강요도 ‘기업의 재산권 침해,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로 못 박았다. 앞으로 대통령은 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이런저런 협조를 구하는 행위를 함부로 할 수 없게 됐다. 대통령이 기업 총수를 독대했다간 야당이 가만있지 않을 수도 있다.

헌재는 또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의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는 부분을 적시하면서 대통령과 국회·언론에 대한 불통을 지적했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도 받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면서 법치주의를 무시했다는 점도 중요하게 봤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국회 국정감사나 언론과의 기자회견, 특검의 조사 등을 성실하게 받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런 행위에서 대통령이 업무복귀를 하더라도 개전의 정이 없다는 점을 헌재는 파면의 중요 이유로 봤다. 앞으로 대통령이 국회, 언론, 검찰 등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다면 탄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경보(警報)와도 같다.

지금 야당은 헌재 결정문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최고의 명문(名文)이라고 칭찬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 결정문이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이번 결정문은 ‘대통령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한번 대통령을 탄핵한 경험은 반대편 세력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정치적 거부권을 가진 세력이 이제는 다양하고 참여가 쉬워지면서 대통령의 위기가 일상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얻는 것은 쉽지만 이를 행사하고 운용하는 것은 이번 헌재 결정으로 훨씬 까다롭고 어려워졌다.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헌재 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적폐 청산과 대청소를 얘기하고 있다. 나는 선(善), 상대방은 악(惡)이라는 선악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의지만 강조하다 보면 결국 독선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노무현 정권이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 왜 친노가 폐족이 되었는지 반추해야 한다. 청와대에만 가면 제왕적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 제도 개선 없이는 5년 뒤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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