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에 性差가 새겨졌다고?… “더 이상 못 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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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 사이언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 무엇이며, 기존의 진화심리학자들이 내세우는 몇 가지 주장을 알아야 한다.

진화심리학은 동물의 심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학문이다. 기본적으론 진화생물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주로 인간 심리의 본성을 탐구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 본성은 태생적이며 인간의 행동은 본성과 환경이 함께 낳은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게 남녀의 성차(性差)다. 남녀 차이는 누가 뭐래도 자연적이고, 내재적이며 불변한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종교, 문학 등 다른 분야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결과를 과학이 입증했다는 말로 자신들의 추론을 정당화하고 있다.

적어도 존 그레이의 1992년 저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나온 이후 진화심리학에 근거한 자기계발서 전문가들은 남녀에 관한 이분법을 신줏단지처럼 받들며 진화심리학의 과학성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학자와 저서로는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 앨런 밀러와 가나자와 사토시의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등이 있다.

책은 이에 대한 전복이자 신랄한 비판이다. 그동안 진화심리학이 퍼뜨린 성차별을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가장 매섭게 꼬집은 부분은 성에 대한 차별적 고정관념이다. 저자는 이를 ‘젠더 프로파일링(Gender Profiling)’이라고 부른다.

저자에 따르면 21세기의 진화심리학자들은 아직도 19세기에 살았던 찰스 다윈의 여성관을 진리처럼 믿고 있다. 다윈은 “여성은 성욕이 거의 없는 천사 같은 창조물”이라고 했다. 현대 진화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여성들이 태생적·성적으로 소극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고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고 보고 있다.

진화심리학이 젠더와 성을 설명하는 방식을 보면, 그 편협함이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인다. 그 안에 내재된 가부장적 본성은 사실을 왜곡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저자는 “일반 진화론적 사고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윈이 서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믿는다. 단지 유전자에 새겨진 성차라는 것에 대해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않을 뿐”이라며 “우리가 좀 더 모험적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젠더 패러다임을 허무는 데 관심이 있다”고 책의 의의를 설명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