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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7년 03월 17일(金)
‘창작産痛’ 감당했던 음습한 골방, 허연 거미처럼 진빠져 돌아오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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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방배동 카페골목에 있던 정미경 작가의 집필실로 가는 계단 풍경. 지하 왼쪽 아래 계단의 짙은 초록색 문이 집필실 출입문이다. 김병종 화백 제공
▲  1981년 정미경 작가가 이화여대 문학상 수상식을 마치고 김병종 화백과 함께 이화여대 교정을 내려오던 모습.
(71) 김병종 화백이 본 정미경 작가의 방배동 반지하 작업실 (上)

작가 정미경이 떠났다. 발병 한 달, 입원 3일 만의 일이었다. 예기치 못한 이 일은 흡사 천둥벼락 치듯 일어났다. 그녀는 절망적 병을 선고받고도 침착했다. 한사코 입원하는 대신 남편인 나와 함께 있기를 원했고 우리는 마치 여행이라도 온 듯 스무이레 동안을 집에서 함께 지내며 책도 읽고 산책도 했다. 무엇보다도 삼 년 열흘치쯤의 대화를 나누었다. 거의 완벽하게 신혼으로 회귀한 셈이었다. 발병 사실을 통보받기 이틀 전에는 생애의 마지막이 된 문학상도 하나 받았다. 작은 상이었지만 10년 만의 일이어서 기뻐했고 상금을 받으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는 에치고유자와로였는데 나중에 보니 함께 떠나기로 한 날이 하필이면 발인 일이었다. ‘폭설’이라는 작품으로 신춘문예를 통해 세상에 나왔던 그녀는 ‘서설’이 분분히 날리던 날 눈의 고장 니가타(新潟)가 아닌 천국으로 가는 검은 리무진을 탄 것이다.

“그러면 안녕. 한동안 우리의 것이었던 여름의 햇볕이여.” 카뮈의 소설 한 구절처럼 여름날의 무성한 추억을 뒤로한 채 그녀는 떠났고 나는 남겨졌다. 아내가 떠나자 집이 사라져 버렸다. 오래전 어머니가 떠나자 고향이 사라져버린 것과 비슷했다. 아침저녁 드나들건만 내 몸은 건물 위로 둥둥 떠다녔다. 애도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경우는 한 번씩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가 의식을 치르듯 벽에 기대앉아 운다. 하염없이 울다 보면 정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내 평생의 문학 동지이자 연인이었고 누이였으며 어머니였고 아내였던 여자를 떠나보냄에는 눈물만 한 의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긴 해도 도대체 이 맑디맑은 물이 탁한 내 몸 어느 저수조에 고였다가 이토록이나 흘러내릴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이 든 남자 오래 울기 대회 같은 것이 있다면 결단코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보면 소리 하나가 들려오곤 했다.

“아빠, 울지 마. 이렇게 떠나와서 미안해. 하지만 나는 밝고 아름다운 곳에 와있어. 그러니 울지 마.”

그리고 그 소리가 들려올 때쯤 나는 조용히 일어서곤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햇빛 쏟아지는 일상 속으로 걸어나가는 것이다.

정미경은 2000년 무렵부터 거의 모든 작품을 방배동 카페 골목에 있는 R라는 이름의 한 반지하 원룸을 빌려 썼다. 햇볕이 들지 않는 음습한 곳이었다. 길 쪽으로 난 작은 창으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뒤꿈치들만이 분주했고 벽체는 얇아 옆방에서 두런거리는 소리며 싸우는 소리 같은 것들이 간단없이 들려왔다. 그런데 그녀는 그 춥고 스산하며 음습한 공간으로 내려가야만 글이 써진다고 했다. 채탄을 하는 광부의 심정으로 그곳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점심을 먹으면 오후에 나른해진다며 아침에 나갈 땐 계란 하나와 삶은 감자 한 알 정도만을 가지고 갔는데 그나마 차게 식은 걸 다시 가져오기 일쑤였다. 심지어 의자에 앉으면 긴장이 풀린다며 서서 쓰는 책상 하나를 구해 그 앞에서 대부분의 글을 썼다. 나갈 땐 전사처럼 비장했고 돌아올 땐 허연 거미처럼 진이 빠져 버린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얼핏 문학이 장차 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고 그럴 땐 글쓰기에 대한 방향 없는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방배동의 그 습하고 햇빛 한 줌 없는 반지하 원룸에서 그녀는 ‘밤이여 나뉘어라’ ‘무화과 나무 아래’ ‘무언가(無言歌)’ ‘검은 숲에서’ ‘남쪽절’ ‘울게 놔두세요’ ‘프랑스식 세탁소’ 같은 뛰어난 작품들을 썼다. 그리고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썼다. 그 작품은 오늘을 예견한 듯 완벽하게 그녀와 나의 이야기를 거꾸로 배치하여 쓴 것이었다. 작가인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남편의 장례를 치른 지 두 달여 만에 남겨진 아내는 컴퓨터 파일 속의 남편 유작 출간 문제를 놓고 고민한다. 그 안에는 그녀와 나눈 사적 편지며 일기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출판사 쪽에서는 소설뿐 아니라 이것도 출간하자고 권유하고, 센세이셔널리즘을 혐오했던 남편이 그런 일을 슬퍼하고 화를 낼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내는 괴로워한다. 그리고 극심한 두드러기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는다. 소설은 소름 끼치도록 오늘의 그녀와 나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었다. 소설 안의 굵은 대화체 문장 또한 완벽하게 우리가 평소에 나누었던 날것 상태 그대로의 것을 옮겨 놓고 있었다.



그녀가 떠난 후 짐 정리를 위해 그 반지하 방을 열고 들어가니 벽에 붙어 있는 쪽지들이 보였다.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나를 파괴한다.” “나의 최후를 맞으리라는 그곳에, 칼이 항복한 자를 얼마나 깊이 찌르는지 오직 나에게만 시험하도록” “책을 끝내는 것은 아이를 뒤뜰로 데려와 총으로 쏘아버리는 것과 같다”는 섬뜩한 문장도 보였다. 그렇게 벽에 붙어 있는 무수한 쪽지가 내게는 흡사 사방에 튀긴 핏자국처럼 느껴졌다. 전장도 그런 전장이 없었다. 글 쓰는 일을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것일까. 조금만 즐겁게 해낼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한스러웠다. 언젠가 그녀의 신문 글을 읽다가 이렇게 하는 것이 글을 쓰는 일이라면 나는 포기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취미로라도 글을 쓴다고 나설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 식탁에서 그녀에게 물었다. “일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하루치의 시효를 지녔다는 뜻이야. 오늘 당신의 신문 글이 일몰과 함께 잊히고 사라진다는 뜻이지. 요샌 일몰은커녕 점심도 전에 사라져. 도대체 누가 알아준다고 이렇게 혼신을 다하는 건데?”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아빠가 알아주잖아. 난 한 사람의 독자면 돼. 그것도 보통 독자여야 말이지.”



아내의 길지 않은 소설가적 생애는 대체로 불운했다. 스물여섯 살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지만 이후 10년의 세월을 온갖 가정사에 부대껴야만 했고 원고 청탁 하나 받지 못했던 그 긴 세월 동안 암중모색처럼 홀로 썼던 장편 하나, 중편 둘, 단편 여덟 편을 어느 날의 컴퓨터 사고로 홀연히 날려버리는 일이 생겨났다. 그때 이틀 동안을 방에 누워 천장만을 바라보며 지내는 그녀를 보며, 문득 옛날에 이어령 선생이 어린 학생이었던 그녀를 문학사상사로 불러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뛰어난 작가가 될 것이다.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글쓰기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 만 스물두 살도 되기 전에 2년 연속 이화여대문학상과 중편소설 공모며 다른 대학의 범대학문학상 같은 상까지 몰아쳐서 받은 그녀를 보면서 이 날카로운 젊은 석학은 착잡한 우수를 느꼈던 것은 아닐까. 문학에만 올인한다면 정말 뛰어난 작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범용한 삶, 일테면 결혼 생활이며 자녀 양육 같은 것에 작은 에너지를 나누다 보면 결코 문학적 승리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라는. 아내가 삶에 부대끼며 10년간 쓴 작품들을 잃어버린 날 나는 그 ‘다른 것’을 훔친 것에 대한 죄의식으로 떨었다.



그러나 그 ‘다른 것’을 정미경은 마치 성직처럼 해내었다. 삶 자체를 사랑했고 소홀함이 없었다. 그녀가 떠나던 날 관 위에 손을 얹고, 두 아들이 말했다. “엄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엄마가 삶으로 보여주신 그대로 따라 하겠습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서는 반복하여 이런 문장이 나온다. ‘아아,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우니까.’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삶을 껴안고 보듬으며 아름답고 단아하게 그리고 우아하고 품위 있게 끌어나가는 힘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세상을 떠나기 한 주일쯤 전이었던 것 같다. 방문을 나서려는데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로 “아빠” 하고 불렀다. 신혼 때 호칭 문제로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아빠’라는 호칭을 썼고 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불렀다. 그녀가 나를 불렀을 때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병의 완악하고 급속한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간 그녀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단 한 차례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심지어 세계적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여사도 죽음에 임박해 절규하듯 던졌다는 “why me?”라는 물음을 신 앞에 하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평온했고 모든 것이 예뻤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햇빛 쏟아지는 이화여대의 교정을 걸어 나오던 날로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 아내는 내게 예쁜 언어, 예쁜 눈짓, 그리고 예쁜 모습만을 보였다. 죽음에 임박해서도 단 한마디의 원망과 짜증의 말이 없었다. 곁에서 볼 때 거의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나를 불러 세운 것이다.

“나…사실.” 내가 말했다. “말해봐. 무슨 말이라도 괜찮아.”

“아빠, 믿을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뜸을 들이더니 “나 사실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라고 했다. 나는 일부러 평소 어투로 말했다. “정 작가. 시간이 없어. 그런 애매한 문어체 말고 구어체로 해봐.”

“나 사실…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오히려 약간 좋기까지 해.” 그러면서 말했다. “아빠와 함께 있었던 지난 한 달이 30년 정도로 느껴져. 어젯밤 그렇게 계산을 해봤더니 여든여덟 살이 되데?”

그녀는 내게 어딜 그렇게 분주하게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내 곁에 돌아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면 좋아. 앞으로는 어쩔 건데? 고통이 점점 심해질 텐데 이렇게 나하고만 있으면 어떻게 할 건데?”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도 담담하고 평온해 무슨 동요의 후렴구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아빠가 기도해주면 되잖아.”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울었다. ‘이 바보야 말도 타본 사람이 달려갈 수 있는 법이야. 나는 그분과 죄의 담으로 가로막혀 있어. 나 같은 자의 기도를 그분이 들어준다고 생각해? 이 바보천치야. 내가 얼마나 엉터리인 줄 그렇게 오래 살고도 이렇게 모르는 거니?’

그 이후 일주일 동안 극심한 통증이 몰려올 때마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손을 내밀어 그녀는 말했다. “아빠, 기도해줘.” 그리고 정신없이 중언부언해대는 내 소리가 끝나면 어김없이 말했다. “이젠 됐어. 훨씬 좋아졌어.”



문득 되돌아보니 이별만이 천둥벼락 치듯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만남, 사랑, 결혼이 모두 그러했다. 한 잡지사의 청탁으로 내가 서울대 캠퍼스를 배경으로 쓴 ‘바람일기’라는 소설과 그녀가 이화여대캠퍼스를 배경으로 쓴 ‘모래바람’이라는 소설이 연결고리가 되어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친절한 잡지사 기자가 그녀의 글이 실린 책을 보내주지 않았던들 만남 자체가 없었을 것이고 말이다. 이화여대 앞의 한 찻집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김승옥 소설의 한 구절처럼 나는 그녀가 내 생애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후 결혼까지 2년 남짓한 기간에 우리는 4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만남의 기록으로는 일주일에 열세 번인가가 최고였다. 휴대전화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던 시절 무턱대고 ‘모래내-서울대’의 142번 버스를 타고서 아현동 마루턱에 내려 아무 다방이나 한 곳을 들어가면 거기 그녀가 있기 일쑤였다. 얼핏 영적인 그 무엇이 끌어당긴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내를 보낸 후 서가에서 무슨 책인가를 뒤적이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세상을 일찍 떠날 운명을 타고난 남자는 혼자 살 운명의 여인에게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다는 것. 나는 그 반대의 경우였을까. 나의 아내 정미경은 떠났다. 사력을 다해 살리고 싶었지만 생명은 신의 몫이었다. 그러나 작가 정미경은 내 안에 살아있다. 이제 내 할 일은 그녀의 못다 한 문학적 삶을 연장시키는 일이다. 어쩌면 그 일을 위해 신이 내 삶을 남겨놓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녀의 소설 제목 그대로 영원한 ‘나의 피투성이 연인’인 셈이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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