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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7년 03월 20일(月)
공동의 기억과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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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 부장

연극인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항의하며 서울 광화문에 설치한 ‘광장극장 블랙 텐트’가 지난주 설치 71일 만에 해체됐다. 블랙 텐트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선고로 두 달여의 항해를 마친다며 이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다고 밝혔다. 책임자 처벌 문제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등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이제는 광장의 비상사태를 마무리하고 일상적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고 대책을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난주 문화체육관광부도 블랙리스트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문학, 연극, 영화, 출판 등에서 풍자나 비판적 표현 때문에 부당하게 폐지되거나 변칙적으로 개편된 사업을 복원하고 예술가의 권익을 보장하는 법률도 제정하기로 했다. 다음 달 중에는 문체부 공무원 행동강령도 개정해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 거부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규정을 추가할 예정이다. 문체부는 요즈음 개편·폐지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재부와 기금 변경 협의를 벌이는 한편, 정부 입법 등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대책들은 의지를 갖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문화 현장에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관련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대책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롭게 복원하는 사업에 대한 타당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또 예술가 권익 보장 법률이나 문체부 공무원 행동 강령 마련이,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실질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 해도 블랙 텐트 해체가 말하듯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와 함께 이 모든 ‘과거의 죄’가 사법적 처리와 처벌이라는 공적 체제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우리 모두 새로운 출발선에 선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출발선에서 독일 주 헌법재판관 출신의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20여 년 동안 탐구해 내놓은 책 ‘과거의 죄’에서 과거의 죄가 현재나 미래를 괴롭히지 않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 중 하나로 ‘공동의 기억’을 꼽은 것에 주목하고 싶다. 나치, 역사와 정의 문제를 천착해온 그는 개인이 아니라 세대 전체가 지은 죄, 과거인 동시에 현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죄를 ‘과거의 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집단적 ‘망각’을 경계했다. 기억은 피해자의 문화, 망각은 승자의 문화라는 그는 과거는 단순히 지난 일들이 아니라 한 사회가 망각과 기억을 조합해 구성한 조립품이기에 이 조립품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과거의 죄 처리 여부가 결정된다고 했다. 제대로 된 조립품을 만들어 이에 근거한 단죄는 물론 사회의 윤리적 의식, 도덕의식, 법의식과 시민 용기를 강화할 때 과거의 죄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몇 달 동안 한국 사회를 분노와 슬픔, 당혹과 자기 비하로 몰아넣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백서라는 포괄적이고 정확한 기록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특히 폭풍처럼 쏟아진 뉴스, 주의·주장 속에서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상황에서 이를 정확하게 기록한 종합 보고서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올바른 공동 기억 조립품 마련을 위한 기초작업이 될 것이다.

chm@munhwa.com
e-mail 최현미 기자 / 문화부 / 부장 최현미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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