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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7년 03월 20일(月)
살인마에서 재벌·샐러리맨까지…‘초인가족’ 엄효섭
‘연봉 300만원’ 시절 10여년 견딘 끝에 TV서 종횡무진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지난해에만 다섯 작품에 출연했고, 현재도 네 작품을 동시 촬영 중이다.

“제가 (출연료가) 싸서 많이 찾아주시는 것”이라며 겸손해하는데, 조연이라고 다 바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역할이 다 다르다. 대개 조연은 비슷한 캐릭터를 맡기 마련인데, 그는 작품마다 캐릭터가 이질적이다.

뻔뻔한 악역부터 한없이 착하고 푸근한 역할, 재벌 2세부터 지갑이 늘 가벼운 샐러리맨까지 종횡무진이다.

그런데 하마터면 이 배우를 우리는 TV에서 못 볼 뻔했다. ‘연봉 300만 원’ 연극배우의 삶이 너무 힘겨워 연기를 그만두려고 했던 게 11년 전이다.

배우 엄효섭(51)을 최근 광화문에서 만났다.

◇ “수십 가지 캐릭터 맡을 수 있는 배우, 하기 잘했죠”

엄효섭은 지난해 ‘리멤버 아들의 전쟁’에서는 악독 검사, ‘마스터 국수의 신’에서는 탐욕스러운 국회의원, ‘닥터스’에서는 ‘파파보이’ 병원원장, ‘쇼핑왕 루이’에서는 재벌가 코믹한 집사를 각각 연기했다.

여기에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공조’에서는 조폭 회장으로도 출연했다. ‘선택받아야 하는’ 조연이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하기란 힘들다.

“저 나름의 룰인데, 전작과 캐릭터가 겹치거나 비슷하면 피했어요. 전에 했던 거랑 비슷한 것 같다 싶으면 거절했습니다. 조연이라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래도 배우로서 그런 것은 지키고 싶었어요.”

현재는 SBS TV 월요 드라마 ‘초인가족’에서 주류 회사의 최부장을 연기 중이다. 인생사 통달한 듯, 만사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있다가 한마디씩 툭툭 내던지는 말이 촌철살인 코미디가 된다. ‘내공’이 탑재돼 있지 않으면 그 맛이 살아날 수 없다.

“오버하거나 과장된 연기를 싫어하는데 ‘초인가족’이 굉장히 사실적이라 저랑 맞는 것 같아요. 일단 대본이 너무 재미있어요. 최부장의 캐릭터도 대본 안에 다 설명이 돼 있는데, 제일 많이 등장하는 지문이 ‘아무 미동없이’랍니다.(웃음) 그렇게 통달한 듯 가만히 있다가 한마디씩 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그의 말이 이어진다.

“코미디는 어렵습니다. 진정성이 있어야 진짜 웃기거든요. 그런 면에서 ‘초인가족’은 진정성이 있습니다. 보시는 분들이 ‘맞아 맞아’ 해야 하거든요. 촬영장에서 저희끼리 웃겨서 NG 나는 경우가 많아요. ‘쇼핑왕 루이’도 좋았습니다. 그 작가님이 나중에 시트콤 하시면 꼭 불러달라고 부탁했어요”

이 배우가 2007년 MBC TV ‘히트’에서 섬뜩한 연쇄살인범을 연기했던 이와 동일 인물이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당시 그는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역할을 소화해냈다.

“수십 가지 캐릭터를 맡을 수 있는 게 배우의 특권이죠. 배우 하기 정말 잘한 것 같아요”

◇ “꽃·배추도 팔아보고 롯데월드 공연팀에서도 일해봤죠”

여섯살 때 어머니를 여의면서 행복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연극반을 노크했다.

“연극반에 가면 뭔가 위안이 될 것 같았는데 실제로 연극을 하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죠. 다 같이 모여 대사를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 제 연기를 본 관객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희열이 컸습니다”

이 시절 그는 ‘평생의 동지’를 만난다. 배우 조성하가 고등학교-대학교를 거쳐 대학로 시절을 함께 견딘 30년지기 친구다.

“성하랑 서울 시내 돌아다니며 연극 포스터 붙이고 극단 사무실 바닥에 매트릭스 깔아놓고 자면서 지냈어요.”

엄효섭과 조성하는 함께 ‘생활고’도 해결했다.

“작은 트럭을 구해서 아파트 단지를 돌며 꽃도 팔고 배추도 팔아봤어요. 근데 장사도 해본 사람이 해야지 잘 안됐어요.(웃음) 저는 신선도가 있으니 떨이로라도 그날 다 팔아야 한다고 했고, 성하는 제값 받아야 한다고 해서 만날 싸웠어요.(웃음)”

그러다가 롯데월드가 개장하면서 퍼레이드 공연팀에 8개월간 ‘취직’도 해봤다.

“생활고를 해결하려는 연극배우들이 엄청 모여들었죠. 거기서 스텝이란 것을 배웠어요. 그걸로 뮤지컬 ‘캣츠’ 오디션에 도전해 운 좋게 붙었어요. 공식 데뷔작입니다. 그게 1990년이고, 그때부터 10여년간 연봉 300만 원 인생을 살았어요. IMF가 왔을 때 그게 뭔지 몰랐어요. 원래 없이 살았으니까. 하하”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청운의 꿈’만으로 버티기가 어려웠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 연기 그만하고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영화 ‘로망스’ 캐스팅이 들어왔다. 싸이코 재벌2세 역이었다.

“영화사 사무실에 계약하러 갔는데 프로듀서가 많이 못 줘 미안하다면서 1천300만 원을 부르더라고요. 순간 기절하는 줄 알았죠. 연봉 300만 원 받다가 영화 한 편에 1천300만 원 준다고 하니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때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100만 원만 더 주면 안 되냐고 했어요.(웃음) 결국 1천400만 원으로 계약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역삼동 영화사 사무실에서 잠실 집까지 걸어왔습니다. 하늘이 어찌나 파랗던지 정말 꿈만 같았어요.(웃음) 그날 아는 사람들 다 불러서 돼지고기를 사 먹었어요.”

◇“매번 절벽에 서는 심정으로 연기합니다”

‘로망스’는 연기를 관두려던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로망스’를 본 PD가 TV 드라마 ‘히트’에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캐스팅했고, 이후 지금까지 그는 쭉 달리고 있다.

현재는 세 편의 사전제작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 ‘비밀의 숲’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비롯해 ‘초인가족’을 찍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늘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단다.

“배우는 정규직이 아니잖아요. 다음 작품 계획이 안 서 있으면 불안합니다. 언제든 다시 배고픈 시절로 돌아갈 수 있잖아요. 매번 절벽에 서는 심정으로 연기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역’이나 하지 않는다.

“인생은 선택과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준비돼 있으면 언제든 기회가 온다고 봅니다. 조연이지만 다 다르게 하려고 하죠. 앞으로는 폐부를 찌르는 진솔하고 짠한 역할 한번 해보고 싶어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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