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徐遊記>(1089) 53장 활기가 국력이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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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귀에 붙이기 전에 안기용은 호흡부터 가다듬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한 것은 오랜만이다. 몇 년 된 것 같다. 무슨 일인가? 안기용이 응답했다.

“여보세요, 아버님이세요?”

“응, 나다. 잘 지냈냐?”

여전히 감정 없는 목소리, 그러나 반갑다.

“예, 아버지. 건강하시지요?”

“그래, 거기 어떠냐?”

“잘 지냅니다, 아버지.”

“사업은 잘되고?”

“예, 그저 그렇죠.”

“네 어머니한테서 이야기 들었다.”

“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거긴 요즘 더 춥지?”

“견딜 만합니다.”

“나도 거기서 4년 가깝게 지냈다. 알고 있지?”

“예, 압니다.”

안기용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아버지는 용건만 말하는 성격이다. 이렇게 뜸을 들인 적이 없다. 그때 안종관이 말을 이었다.

“너 혹시, 그러니까 말인데….”

“예, 아버지.”

“혹시 유라시아그룹 같은 데서 연락이 오면 말이다…….”

“무슨 연락인데요?”

“그, 무슨, 너한테 일을 준다든지, 네 회사 일 말이다.”

“무슨 일인데요?”

“그러니까 일감 말이다. 여행사 일을 주겠다는 연락 말이다.”

“…….”

“그런 연락이 오면 정중하게 사양을 해라. 무슨 말인지 알겠냐?”

“그쪽에서 왜 그런 연락이 오죠?”

“아, 그거야…….”

“아버지가 연방 대통령 특보니까요?”

“뭐, 그런 이유도 있겠지.”

“알겠습니다, 아버지.”

“기용아.”

“예, 아버지. 사양하겠습니다.”

“미안하다. 도와주지는 못하고 방해만 하는 것 같구나.”

“아녜요, 아버지.”

“이해해라.”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통화가 끊겼을 때 안기용은 길게 숨을 뱉었다. 그때 사무실 앞쪽에 앉아 있던 김택규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안기용의 후배 겸 하나뿐인 한국인 사원이다. 나머지 종업원은 러시아인 둘, 중국인 둘, 고려인 하나다. 김택규는 안기용의 통화 내용을 반쪽만 들었어도 짐작을 했을 것이다. 안기용의 여행사는 지금 폐업 일보 직전이다. 어머니한테는 그럭저럭 견딘다고 했지만 일감이 없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방금 나갔던 김택규가 뛰어 들어왔다. 눈을 치켜뜨고 있어서 안기용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밖에 없는 미니버스가 사고를 내었는가? 그때 김택규가 더듬대며 말했다.

“저, 저기, 대, 대통령께서…….”

머리를 든 안기용은 열린 문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았다. 건장한 사내들이 몰려들더니 곧 대통령 서동수가 들어섰다. 뒤를 유라시아그룹 회장 김광도도 따른다. 좁은 방이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어, 자네가 안 특보 아들인가?”

서동수가 먼저 말을 걸었어도 얼어버린 안기용은 대답도 못했다. 다가온 서동수가 안기용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생하는구나. 내가 오더를 주려고 여기 김 회장 데리고 왔다. 한국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는 말이 있어. 장맛이 나려면 구더기가 있어야지.”

안기용은 얼어서 아직 해석이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