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한국학 연구소장 존 던컨 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캠퍼스에서 한국과의 오랜 인연에 대해 회고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외국인 학자로서, 특히 한국과 복잡한 관계가 얽혀 있는 미국 학자로서의 위치성에 대해 고민해왔다”며 “구미권 학자와 한국 학자 사이의 견해 차를 좁히려고 노력해왔다”고 털어놨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요즘 한국은 탄핵, 조기 대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논란 등으로 혼란스러운 국면입니다. 한국사를 전공한 미국인 학자로서 요즘의 한국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혼란스럽다는 점에선 19세기 말 조선의 상황과 지금이 비슷한 것 같아요. 지금 한국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결국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불행해졌어요. 지금 한국도 입장이 곤란하거든요. 한쪽은 중국, 또 다른 쪽은 미국과 일본에 끼어 있으니까요. 한국이 자주적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와 다른 점은 지금의 남한은 그때보다 많이 발전했다는 겁니다. 당시보다 경제적으로도 훨씬 낫고 세계정세도 잘 파악하고 있어요. 하지만 문제는 지금 한국이 분단돼 있다는 거예요. 분단 문제가 제일 큰 걸림돌입니다.”
―한국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선 통일이 돼야 한다는 것인가요.
“한국이 분단상태로 있는 한 장기적 미래는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적 안목에서 길게 내다보고 통일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 한국 정부가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제한돼 있어요. 제일 어려운 과제, 시간이 걸리는 과제, 우선적인 과제가 통일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한국 민족주의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래도 통일은 필요합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반미친중 기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000년대 초엔 한국에 반미친중이 강했어요. 그런데 몇 년도 안 돼 친미반중이 됐어요. 고구려에 대한 중국의 동북공정 주장이 영향이 컸을 겁니다. 지금 사드 때문에 반미 감정이 좀 있긴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대한 반감도 분명 더 일어날 겁니다. 또 국민들의 역사적 기억도 있다고 생각해요.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습니다. 중국 그늘에서 벗어난 지 100년도 안 됐는데 다시 들어가는 건 꺼릴 겁니다.”
―한국에 반중 의식이 강하단 의미인가요.
“강하다기보다 더 생겨날 것이고 또 생겨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반중 의식이 형성될 조건이 이미 충분하다는 거예요. 물론 한국이 그렇다고 해서 친미로 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유교주의 영향 속에 살아와 친중적 사고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런 문화적 요소 때문에 중국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중국군이 미군처럼 한국에 있었다면 문제가 일어났을 거예요. 군대가 주둔한 곳에서는 어디든 문제가 일어납니다. 또 중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와 60∼70년 주둔하면서 한국 정부를 지지했다면, 그리고 옛날 불평등조약을 방불케 하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같은 게 중국과 한국 사이에 있었다면 반중 시위가 일어났을 겁니다. 그래도 중국은 아직 한국 입장에서 장사가 잘되는 나라예요. 같은 동양인이고 미군처럼 직접적으로 볼 수 있게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진보성향의 386세대 출신 정치인들이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읽고 성장해 중국에 대한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386세대는 그런 경향이 좀 있는 게 사실이에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국에서 했던 말을 떠올려봐도 그래요. 그는 제일 존경하는 중국 사람을 마오쩌둥(毛澤東)이라고 했었어요. 그런 것을 보면 그때는 그런 호감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는데 아직도 그럴지는 모르겠네요.”
―요즘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도 위태롭습니다.
“답답해요. 2005년 일본에서 객원교수로 한 학기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 해가 마침 한·일 친선의 해였습니다. 잘 됐다 싶었는데 그해 독도 문제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일본 시마네(島根)현 주민들이 독도가 자기 영토라고 주장했는데, 일본 정부에서도 지지 목소리가 나와 난리가 났어요. 한국에서도 난리였지만 일본 TV에서도 매일 전쟁이 날 것처럼 보도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양쪽 다 너무 예민해요.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쳤다고 얘기해요. 몇 번이나 사과했는데, 한국인들은 만나기만 하면 사과하라고 자꾸 얘기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 사람 만나기 싫다고요. 그런 인식이 점점 확산되면서 지금의 혐한(嫌韓) 세력이 형성된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걱정이 됩니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 문제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고 해요. 그런 풍토가 사라질 때까지 해결은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심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봐요.”
―동북아의 핵심 국가인 한·중·일 관계가 늘 이렇게 갈등상태인데 세 국가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요.
“십몇 년 전만 해도 동북아에서 특정 협력 체제가 이뤄질 것처럼 보였어요. 저도 유럽연합(EU)을 모델로 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요. 그런데 그 후 EU도 정치적 문제나 기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서, 이제 이전에 꿈꿨던 협력체제가 이뤄질 것 같진 않아요. 그게 좀 아쉬워요. 특히 유럽 같은 경우는 프랑스, 독일이 주도적이었는데 두 나라는 경제 규모 등에서도 큰 차이가 없잖아요. 그런데 동양의 경우 인구, 경제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거기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요. 만일 나중에 역사 문제, 사드 문제 등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공동 협력 체제에 대한 얘기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본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는 힘들 겁니다.”
―박근혜정부가 추진한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해 반대론을 폈는데 이유를 설명한다면.
“한국, 미국 어디든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것엔 반대합니다. 역사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이상한 학문이에요. 어느 국가든 역사 교육을 통해 국가에 대한 충성, 민족에 대한 정체성을 키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나라에서 그런 걸 하는 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학자들이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나아요. 지금은 국정교과서가 선택으로 바뀌었으니까 좋죠. 어떤 학교나 학생이 선택하고 싶으면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나라에서 국정교과서를 택하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국사 관련 교과서 개정에도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의 전통문화엔 자랑할 게 많습니다. 고려청자, 금속활자, 훈민정음 창제, 불교사상에서 원효나 지눌 대사 등의 공헌, 유교에서 율곡·퇴계 선생의 업적, 이런 것들이 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언급할 만한 것들이에요. 그래서 가끔 주 정부에 가서 잔소리를 하죠. 주 정부에서는 교과서를 직접 만들지 않지만, 교육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몇 학년에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식으로 비교적 상세하게요. 그래서 ‘어느 시기엔 이 얘기를 해줘야 한다’는 그런 걸 제안하고 있는 거죠. 주 정부는 소수민족 문제에 예민해서 이런 걸 잘 들어주는 편입니다. 캘리포니아는 인종적으로 다양하고 한인이 많으니까요. 근데 텍사스나 플로리다에서는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한국 사람보다 더 사명감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그런 노력을 해오셨는데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도 있는지요.
“일반 미국인들한테 물어보면 ‘한국은 아주 시끄러운 나라’ ‘문제가 많은 나라’란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10년, 20년 전만 해도 한국은 가난한 나라, 후진국 중의 하나란 인식이 강했어요. 그래서 지금 자라는 신세대는 한국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특히 미국 중·고등학교의 세계사 교과서를 보면 한국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습니다. 중국과 일본에 대한 언급은 비교적 많은 편인데, 한국은 거의 없어요. 어떤 교과서에는 한국 얘기가 나오더라도 중국의 문화를 모방한 나라, 일본의 통치를 받은 나라, 이런 식으로 묘사합니다. 그런 것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존 던컨 교수는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연대세 캠퍼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해외 학생들의 한국 전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다만 현대사 등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크게 늘고 있다며 “연구 주제와 접근 방법의 다양화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외국 학자로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건 한국에서 하는 한국사 연구와 좀 다를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의 한국학 연구와 국내 한국학 연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다릅니다. 한국엔 전문가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수들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연구해요. 또 교수들은 그 분야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권위화가 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저희 UCLA만 한국 사학 교수가 2명이고 대부분 다른 학교는 한국 사학 교수가 1명씩 있어요. 우리가 연구할 땐 미국의 학생들, 미국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처럼 깊이 들어가는 것보다도 폭넓게 주제를 잡고 가르치는 게 적합합니다. 쉽게 말하면 시장의 요구가 그렇다는 거죠. 또 미국 학자들은 언어의 폭 같은 것도 제약이 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겁니다. 미국에선 대체로 폭넓은 연구를 요구해요. 주로 미국에서 연구하는 걸 보면 200∼300년 기간을 검토하거나 특정 지역하고 다른 지역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근대사를 연구해 오셨는데 현대사에서도 연구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사상을 다뤄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어요. 이게 미국적인 시각일 수도 있겠지만, 박 전 대통령이 보수적인 정치인이라는 게 미국 사람의 눈에는 좀 맞지 않게 보였어요.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복지국가 이런 걸 강조했으니까요. 그래서 일본인들이 당시 독일 학자들에게 사회정책을 배웠고, 박 전 대통령이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렇게 보면 박 전 대통령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요. 19세기 후반 독일의 사회정책 사상이 어떻게 일본에 유입됐고, 그것이 다시 일제강점기에 박 전 대통령과 한국의 학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다루고 있는 주제는 어떤 것인지요.
“‘조선 왕조의 기원’이란 책을 내고 난 다음 조선의 유교 문제를 다뤘고, 민족 형성 문제도 다뤘어요. 최근의 관심은 고려시대 몽골 간섭기 때와 일제강점기 때 지식인을 비교해보는 겁니다. 고려시대 연구를 하다 보니 느낀 건데 이제현, 이곡 등 당시 문인들이 원나라와 고려 사이에 끼어 갈등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고려는 자기 나라인데 원나라에 속박되니까 거기서부터 오는 갈등 같은 것들이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게 일제강점기에 이광수라든지, 최남선 이런 사람들이 느꼈던 것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말씀드리자면 이광수는 자기 친일 행위를 설명하면서, 자기가 그렇게 해야 조선민족이 일본이라는 제국 안에서 더 나은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얘기했어요. 근데 이제현의 상소문을 보면 이광수와 거의 같은 논리를 제기해요. 문제도 비슷하고요. 몽골은 당시 종족 차별 정책을 추구했어요. 몽골 인종이 가장 우월하고, 그다음이 유색인종인 중앙아시아 사람들, 세 번째는 고려랑 (중국의) 화북 사람들, 맨 아래는 화남 사람들이었어요. 재밌는 주제예요.”
―전근대사 문제를 일제강점기 문제와 연결해 연구하는 데 의도한 바가 있는지요.
“이렇게 하게 된 건 교육 실천 상의 문제이기도 해요. 요즘 학생들은 근현대사에만 관심이 있고 전근대사에 관심이 없습니다. 전근대사는 한문부터 배워야 하니까 애들이 도망가요. 최근에 미국에서 유행하는 이론도 근현대 쪽입니다. 그래서 식민지 통치 지식인들의 고민을 보여주면서 고려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고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어요. 학문적 성과는 아직 멀었고 일단 시론은 일본 후쿠오카(福岡)대학에서 내는 한국학연구센터 연보에 영문으로 나왔었어요.”
―한국의 어떤 점이 좋아서 그렇게 평생 한국학을 위한 길을 걸어오신 건지 궁금한데요.
“한국어를 쓴 지 40년이 넘었네요. 21세 때 고향인 애리조나 북부에서 대학을 1년 반 다니다가 돈이 떨어지니까 학비를 벌려고 휴학을 했는데, 휴학계를 내자마자 병무청에서 통지서가 온 거예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군대에 들어갔죠. 그땐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주한미군으로 서부전선을 맡은 제2사단이 있던 봉일천에 있었고 통신계통에서 일했어요. 제대 후엔 미국에 돌아갔는데 몇 개월 뒤 다시 한국에 왔어요. 그때 한국에 와보니 미국에 비해 사람들의 인심이 좋더라고요. 미국은 지나친 개인주의 사회문화인데 한국엔 아직도 가정, 동료, 그런 가족 중심의 가치관이 있었어요. 거기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죠. 그래서 한국에 다시 왔을 땐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1970년 봄 고려대 사학과에 들어갔어요.”
―한국인 아내의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닌지요.
“부모님도 제대하고 다시 한국에 간다고 하니 ‘분명 여자가 있어서 간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아내를 만난 건 나중이에요. 고려대에서 영문과에 다니던 아내(유계실)를 만났고 1973년 봄에 결혼해 행복하게 같이 살고 있습니다.”
―연세대 어학당에서 공부하고 고려대를 굳이 선택하신 게 특이한 것 같습니다.
“당시 한국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뒤 같은 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이구동성으로 한국에 대해 알려면 고려대에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이 고려대 출신이 아니었는데도요. 왜 그런가 하니, 그 당시 고려대 학생들을 보면 지방 출신이 70% 이상이었습니다. 한국 사회 전체를 아는 데 좋다는 것이었어요. 요즘엔 고려대에도 다 (서울의) 강남 출신이 많다고 하지만요.”
―한국인들도 하기 힘든 한국사 공부를 대학에서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할 때 고생했죠. 고려대에 들어와서 강진철 교수님의 한국 중세사 수업을 듣는데, 진주 분이라 억양을 알아듣기 힘들었어요. 담배를 많이 피우셔서 목소리도 걸걸해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다행인 건 옆자리에 서울 친구가 앉아 있었는데 그 친구도 잘 못 알아듣더라고요. ‘내 탓이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기도 했죠. 졸업논문 지도 선생님은 강 교수님이셨고, 그 외에는 강만길 선생님, 김준엽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한국학 가운데서도 왜 하필 역사를 선택하셨는지요.
“고등학교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2 때 미국사 수업을 들었는데 선생님이 남북전쟁 이후 인권운동 등에 관심이 많으셔서 그때부터 역사를 좋아하게 됐어요. 애리조나대에서도 사학을 전공했었고. 그래서 한국에 와서도 자연스레 역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역사 중에서도 조선 유교는 어려운 주제인데 굳이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유교에 대해 엇갈리는 해석이 많아요. 특히 북미 쪽에서는 조선 시대의 유학을 굉장히 편협된 전통으로 보고, 그런 것 때문에 조선이란 나라가 망했다는 얘기를 합니다. 근데 제가 보기엔 이건 너무 단순화된 얘기예요. 조선 유학은 단순한 그런 학문이 아니고, 상당히 실천적 경향이 강했던 학문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유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 미국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원래는 19세기의 농민 봉기에 대해 쓰려고 했었습니다. 지배 엘리트에만 중점을 두고 연구하기보다 19세기의 대규모 농민 봉기들을 다루면서 한국사의 진보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시 개인적 사정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힘들었는데, 이런 연구를 하려면 한국에서 자료를 봐야 했어요. 그래서 미국 내에서 할 수 있는 연구를 선택한 거죠.”
―미국에서 한국학을 배우는 학생들도 늘어가는 추세인가요.
“많이 늘고 있어요. 제가 1989년 UCLA에 들어왔을 때 한국문화사개설이란 교양 과목을 맡았어요. 당시 수강생이 25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소위 한국계 학생이 75% 정도였습니다. 몇 년간 40∼50명으로 정원은 늘어났지만 한국계가 여전히 70%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15년 전부터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7, 8년 전엔 과목 정원을 개방했더니, 신청 수강생이 270명이나 됐어요. 그것도 70%는 비한국계였고요. 그래서 정원을 160명으로 제한했는데 그 뒤로도 계속 그렇게 수강생이 몰리고 있습니다. 비한국계가 60% 정도 되고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 다양합니다.”
―왜 그렇게 갑자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인지요.
“이른바 한류(韓流)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어요. 많은 학생들이 K-팝, 드라마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사실입니다. 물론 한국 민족학 등에 관심을 가진 학생도 일부 있지만요. 근데 학생들이 한류의 영향 때문에 수업에 들어온다고 해서 나쁜 건 아니에요. 왜냐면, 지금 미국 대학에서 자리 잡은 일본학 교수들을 보면 대부분 1980년대 일본 청년문화, 대중문화 때문에 일본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게 하나의 입문이 된 거죠. 벌써 한국도 그런 게 보여요. 진지하게 한국에 오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이 늘었어요.”
―최근 몇 년 동안은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에서도 한국학 연구 진흥을 위해 애썼다고 들었습니다.
“애리조나대에 다닐 당시 졸업하면 중남미에서 뭔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한국에 왔다가 인생이 완전히 바뀐 거죠. 그럼에도 중남미 쪽에 미련이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중남미 쪽에서 한국학 연구 진흥에 힘쓰게 됐습니다. 지금 중남미에는 한국학 전공학자가 2명뿐입니다. 두 분 다 열심히 하시는데 한국어를 잘 못해요. 제가 바라는 건 중남미 지역에서도 자기 나름대로 한국을 바라보고 한국학 성장에 이바지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학자들이 영어 자료에만 의존해선 안 됩니다. 영어 자료에 의존하면 북미 영어권의 시각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워요. 그래서 한국어를 일찍부터 배울 것을 권장하고 있고, 실제로 중남미에 그런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어 수강생이 늘어났고, 한국학 학자를 꿈꾸는 학생들도 늘고 있어요.”
―학생 수는 늘고 있다지만 전근대사를 공부하는 경우는 드물 것 같은데요.
“한국이든 미국이든 전근대사 전공자는 취직이 안 돼요. 그래서 저도 학생들에게 권장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앞으로 5∼6명이라도 미국 대학에 전근대 전공자가 있다면 다행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미국의 한국학 학자들끼리도 교류가 활발한가요.
“미국 전역에서 한국학을 전공한 학자들만의 교류 모임은 없지만 ‘아시아학회(Association for Asian studies)’라는 큰 학회 안에서 한국, 일본 등 학자들이 함께 어울립니다. ‘한국학 위원회(Committee on Korean studies)’도 형성돼 있어서, 별도로 한국학회를 만들 필요는 못 느끼고 있습니다. 해마다 거기서 만나 발표하고 토론하니까요. 규모는 정확하진 않지만 몇백 명 정도 될 거예요. 사회과학, 인문학 이런 학자들입니다.”
―한국학 연구와 관련해 하고 싶은 제언이 있으신지요.
“한국학자들과의 협력관계가 계속 강화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희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아왔는데 그런 지원이 좋기는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문제도 있어요. 한국 정부의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연구가 힘들어진다는 우려가 있으니까요. 한·미 학자들 간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도 민간 차원에서 연구가 활성화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손고운 기자(국제부) songon1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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