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희망 희망이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날갯짓이다. 2017년 작. 김영화 화백
지난겨울 참 많이 아팠습니다. 몸도 아팠지만 마음은 두세 배 더 아팠습니다. 의사는 말합니다. “가장 미련한 것이 사람이야. 자기 몸 망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꿈만 좇지. 죽으면 뭔 소용이야.” 그러고는 다시 한마디 툭 던집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남 눈치 보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권유합니다. 내 건강과 정신적 위안을 위해서 좋은 것을 해야지 참는 것은 병이 된다면서요. 돈과 명예보다도 자기인식,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얻어 골프장을 나갔습니다. 몇 홀 라운드를 하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일과 걱정거리가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적을 깨고 귀에 스치는 산들바람과 새소리에 온갖 걱정거리를 잊었습니다. 그때야 알았습니다. 우리가 찾고 있는 행복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자연은 그냥 풍경입니다. 하지만 그 자연 안에 들어가 바라보면 참으로 위대합니다. 숲에는 동물들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고, 코스에는 온갖 꽃과 식물이 언 땅을 헤집고 올라오고 있으니까요. 인간은 자연 앞에서 한없이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골프장 라운드를 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자연 속에서 우리가 채우고 싶은 욕망 때문에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반성합니다.
서원밸리 골프장에 가면 와이너리 이재술 씨가 화제입니다. 식사 때 와인과 음악을 선사하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환갑을 넘긴 여성 골퍼 분께 음악을 들려주자 펑펑 우시더랍니다.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닌 기쁨, 힐링의 증거였던 것입니다. 야외전축에 김인순의 ‘여고시절’ LP판을 틀었더니 감격에 겨워 우시더랍니다. 그러고는 오늘만큼 행복했던 라운드는 없었다며 마음까지 행복해져 돌아간다고 말했답니다.
그렇습니다. 골프장에 뭘 가지려고, 뭘 보여주려고 오시나요. 돈을 따고, 좋은 성적을 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머릿속의 복잡하고 힘든 것들 자연 속에 와서 다 비우고, 와인 한 잔과 음악 한 곡에 치유되는 게 행복이고 건강입니다.
요즘 신조어 중에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족이 있습니다. 머무르면서 아주 천천히 자연을 즐기고 나의 자존감을 찾자는 것입니다. 골프장만큼 스테이케이션할 만한 곳이 있을까요. 1박을 하면서 천천히 라운드하고, 밤에는 골프텔 창문을 열고 코끝을 파고드는 소나무 향기를 맡으면서 좋아하는 노래와 와인, 차 한 잔을 음미하는 게 행복이 아닐까요.
전라도에 있는 어느 절 앞에서 본 글귀가 생각납니다. “뭘 채우러 오셨나. 다 비우고 가시게.”
진정한 삶의 질을 위해 이제는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에 더 익숙해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골프장에서는 더더욱 나를 비우고 가려고 합니다. 가져가는 것은 나의 자존감과 상대에 대한 배려면 족합니다. 골프는 그냥 즐기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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