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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박민 부국장 겸 정치부장 게재 일자 : 2017년 03월 24일(金)
‘적폐 청산’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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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정치부장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등록(4월 15~16일)이 불과 3주 앞이다. 그런데도 진보 진영으로 기운 대선 구도는 요지부동이다. 이제 마지막 변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세론에 맞선 ‘보수·중도 빅텐트’ 구성 정도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문화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엠브레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남지역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적합한 정치인을 묻는 질문에 58.4%가 ‘없다’고 답했고, 바른정당 역시 49%가 ‘없다’고 답했다. 이처럼 방황하는 보수의 표심이 단지 ‘문재인 대통령’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의 단일 후보에게 일사불란하게 몰려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고, 보수·중도 진영 후보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야 할 문제는 현재의 대선 구도에서 선출된 대통령이 직면할 정치적 현실이다. 차기 대통령은 여소야대이자 다당제 체제인 국회와 함께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야당의 이념 스펙트럼은 중도에서 극우에 이르고, 야당 리더들은 대선 다음 날부터 다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당장 새 정부의 구성부터 험난할 것이다. 대통령이 협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이 거부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보수 세력은 탄핵 여파로 사소한 자극에도 폭발할 기세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법 처리 수위와 사면 문제는 또 한번 국론의 극단적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문 전 대표가 당선되더라도 이런 정치적 지형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문 전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선에서 과반수 득표를 함으로써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쥔 뒤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도·보수 진영의 비호감도나 불안감을 해소시켜야 하고, 그 첫 단계로 자신의 선거 모토인 ‘적폐 청산’의 개념과 방법론을 명확히 해야 한다. 문 전 대표는 당선 이후 최우선 과제로 ‘권력기관 적폐 청산’과 ‘재벌 개혁’등을 꼽았다. 자신의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는 적폐 세력을 ‘친일에서 반공 또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온 ‘위선적인 허위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런 추상적인 단어로 개념화한 ‘적폐 세력’을 구체적으로 선별하는 것도, 단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종종 사용하는 ‘부역자’는 더 애매하다. 굴곡 많은 현대사에서 하나의 세력, 조직, 심지어 개인에게도 공과(功過)과 뒤섞여 있을 수 있다. 문 전 대표 본인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권 말기를 돌아보면 사상 최대 표차로 정권을 내주고 한때 ‘폐족’을 자임했던 세력 아닌가. 친일세력의 후손 중에 민주화에 헌신한 사람도 있고, 산업화의 주역 중에 독재정권에 부역한 사람도 있다. 결국 ‘적폐’의 규정이 자칫 자신들만 ‘선’이고 상대는 ‘악’으로 몰아붙이는 독선과 패권주의, 진영 논리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적폐 청산’의 방법론도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문 전 대표는 “법을 통해 노력하겠지만 만약 (국회에서) 법 통과가 안 된다면 대통령이 가진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첫해부터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적폐라고 지칭할 정도면 특정 정치집단이 단독으로 청산할 수준은 아닐 것이고, 따라서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더구나 ‘법’이 뒷받침하지 않는 ‘대통령이 가진 모든 수단’이 국가정보원,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동원을 의미한다면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적폐를 쌓는 꼴이 되고 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나회 해체, 권력형 비리 사정, 금융실명제 실시 등의 적폐 청산과 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압도적 지지와 국민 절대다수가 공감하는 청산 대상의 선정이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회창 후보를 불과 57만 표 차이로 앞선 48.8%의 득표율로 당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진영 논리가 강한 국가보안법 등 ‘4대 악법’ 철폐를 추진하다 국정 운영에 발목이 잡혔다. 문 전 대표도 적폐 청산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이기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국민 지지’와 관련, 광장의 목소리를 강조하지만 임기 내내 국정 운영을 광장에만 의존할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지지는 득표율과 국정지지율이고, 협치나 연정을 통해 국회에서 확보할 수 있는 의원 수다. 원칙을 타협해서는 안 되지만 타협을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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