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공한증과 슈틸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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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체육부장

공한증(恐韓症)의 기원은 지난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1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은 차범근의 결승골로 ‘적성국’ 중국을 1-0으로 꺾었다. 2009년까지 중국은 한국과 27차례(11무 16패) 맞붙어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공한증은 하나의 저주였다. 한국을 두려워한다는 뜻의 공한증은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제조된 용어다. 중국 언론과 팬들은 한국을 만나면 유독 쩔쩔매는 중국축구를 향해 공한증에 시달린다며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2010년 2월 10일 중국은 마침내 한국전 무승 징크스에서 벗어났다. 당시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은 한국을 3-0으로 꺾었다. 중국은 2013년 7월 24일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한국과 0-0으로 비겨 더욱 기세가 올랐다. 한국 땅에서 한국과 대등하게 맞섰으니, 중국으로선 이긴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중국은 일본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고, 개최국 한국은 3위로 밀렸다.

하지만 공한증은 2년 뒤 다시 살아났다. 2015년 8월 3일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은 중국을 2-0으로 눌렀다. 2014년 9월 한국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공한증을 되살리면서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지난해 8월까지 슈틸리케 감독은 22승 3무 4패를 유지했다. 29경기에서 22차례 이겼으니 승률은 무려 75.9%에 이른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시작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은 사뭇 다르다. 슈틸리케 감독은 A조에서 3승 1무 2패에 그쳤고, 승률은 딱 50%다. 지난해 9월 1일 중국과의 1차전부터 불안했다. 한국은 3-0으로 앞서 낙승(樂勝)이 예고됐으나, 후반 29분부터 2골을 내줘 1골 차의 신승(辛勝)을 거뒀다. 그리고 지난 23일 중국 창사에서 열린 6차전에서 중국에 0-1로 패했다. 대표팀은 시종 무기력했고, 끝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기에 실망감은 더욱 컸다. 공한증을 되살린 슈틸리케 감독이 공한증을 잠재운 셈이다. 한 수 아래라고 여겼던 중국에 패했기에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부호가 따라붙는 건 아니다. 최종예선에서 3승을 거뒀지만 모두 살얼음판 위를 걸었다. 카타르와의 3차전에선 3-1로 이겼지만 전반에 1-2로, 우즈베키스탄과의 5차전에선 2-1로 승리했지만 역시 전반에 1-0으로 끌려갔다. 게다가 두 경기 모두 홈의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최종예선 원정에서 이긴 적도, 득점을 올린 적도 없다.

불명예를 씻을 기회는 있다. 시리아, 이란, 카타르,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이 남아 있다. 마침 중국은 좋은 교훈을 남겼다. 1970년대를 연상케 하는 ‘뻥 축구’,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술로는 승수를 보태기 힘들다는 점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28일 시리아와의 최종예선 7차전이 서울에서 열린다. 승리하지 못한다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어려워진다. 축구 팬들의 가슴을 뻥 뚫어줄 만한 경기력을 펼치지 못한다면 슈틸리케 감독은 신뢰를 되찾기 힘들다. 배수지진(背水之陣). 슈틸리케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전법이 아닐까.

j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