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텅 빈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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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유우익 서울대 명예교수는 처음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의 황당함을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청와대에 처음 들어갔는데 화장실 위치도 못 찾을 정도로 정말 백지상태에서 출발했다. 일부 매뉴얼을 제외하고 서류함과 컴퓨터는 텅텅 비어 있고 참고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명박정부 초기 인사 난맥상이나 광우병 사태 때 우왕좌왕했던 것도 축적된 노하우가 없었던 원인이 크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지만 우리나라처럼 계승하는 문화가 없는 곳도 찾기 어렵다. 인수위원회가 정권 인수 작업을 벌이지만 전 정권에서 한 민감한 일들은 모두 15∼30년 뒤에나 볼 수 있는 기록물로 봉인돼 대통령기록관으로 넘겨졌다. 청와대를 나가는 사람들은 혹여나 책 잡힐 것이 나올까 봐 건성으로 인계하기 마련이고 새로 들어서는 정권도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 골몰하니 감정 다툼만 치열해질 뿐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정권 초기 실수가 많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리셋’ 상태가 연속된다.

정상적인 정권 이양도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5·9 대선을 통해 들어서는 새 정권은 더 난감하다. 당선자 시절이 없이 바로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수할 대상조차 없는 처지다. 원래 보궐선거의 경우 인수위 없이 바로 정권이 출범해야 하지만 국회 안전행정위원회가 28일 조기 대선으로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에게 인수위원회에 준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대통령직 인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국정인수위원회’를 임기 개시 후 45일간 설치·운영할 수 있다. 또 보궐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무위원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해 전 정권 총리가 새 정권 장관을 추천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문제는 이렇게 인수위가 구성돼도 박근혜정부가 생산한 ‘대통령기록물’은 다음 달 20일쯤부터 본격적인 이관 작업이 시작돼 새 정권이 들어서 청와대에 들어가면 텅 빈 책상만 있을 것 같다. 긴급한 외교·안보 현안 기록도 없어 새 정권은 사드 및 북핵·미사일 문제 대응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짙다. 5월 10일 청와대로 출근할 새 대통령은 서류 조각,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