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관치경제 청산 더 늦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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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진 서울대 교수·경제학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늘 법원에 나와 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 범죄 혐의의 가장 중대한 부분이 대기업으로부터의 ‘뇌물수수’ 여부다. 박 전 대통령도, 이미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뇌물’ 부분에 대해선 강력히 부인하고 있어 재판을 통해 유·무죄가 가려질 것이다.

이런 사법적 절차와는 별개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권력과 기업의 관계가 재설정될 가능성이 크다. 역대 정권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대기업에 대한 ‘협조 요청’이 대통령 파면까지 가능한 불법으로 정리됐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憲裁·헌재)는 탄핵사건 결정문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요청 및 개별 대기업에 대한 각종 요구를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 침해로 적시했다. 따라서 준조세 문제 역시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밖에 없다. 이미 대기업들은 엄격한 내부 감시 장치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유력 해외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가 국내의 우려와 달리, 이번 사건이 한국 경제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배경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법 집행이 한국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될 뿐 아니라, 총수의 전횡을 통제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또,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매입을 확대한 것을 보더라도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가 외국의 일반적인 시각임을 알 수 있다.

뇌물죄인지, 권력의 강요죄인지, 이도저도 아닌지는 법원이 판단할 일이지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된다면 이 사건은 우리 경제의 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개발연대에 정부의 특혜 속에서 재벌이 성장했고 경제 기적을 이룬 주역이 된 것이 사실이다. 또 그 이익의 일부를 비자금으로 조성해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관료 상대의 로비 활동을 벌이는 정경유착이 광범위하게 행해져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어느 기업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정부 주도의 개발 방식이 유효했지만, 이제는 시효가 끝난 방식이다. 정경유착 아래서는 혁신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이익을 얻기보다는 정치권력에 기대어 이미 창출된 가치를 편취하는 이른바 지대추구 행위에 몰두하게 됨으로써 성장동력은 사라지고 소득 불평등이 심해진다. 경제 운영 방식의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지대추구 행위가 차단된 제도에서 기업들은 혁신 경쟁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다. MIT대 경제학자 대런 애스모글루는 발전하는 국가와 정체된 국가의 차이를 포용적 경제 제도에서 찾고 있다. 포용적 경제 제도란 착취적 경제 제도에 반대되는 것으로, 정부의 공정한 경쟁 정책을 통한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고 사유재산 제도가 확립된 경제를 말한다. 남이 생산한 것을 약탈해서 이익을 취하는 착취적 경제 제도에서는 성장이 있을 수 없다. 정경유착은 착취적 경제 제도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의 불법행위를 엄정하게 처벌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불필요한 규제는 설득력을 잃는다. 규제의 상당 부분은 불법행위의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사전에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규제는 정당한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함으로써 성장을 저해한다. 예컨대 작은 지분(持分)을 가지고 과도한 경영권을 행사하는 총수의 전횡에 대한 비판이 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창업자의 지분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럼에도 단기차익에만 관심 있는 일반 주주에 비해 창업자가 경영권을 가질 때 혁신 경영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소수 주주의 경영권 행사가 아니라, 다른 주주의 이익을 부당하게 사유화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주주와 경영자의 이익이 상충하는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의 문제다. 정상적인 해결책은 배임·횡령을 엄격하게 처벌하고, 투명한 경영을 위한 다양한 감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순환출자 금지나 출자총액 제한과 같은 방법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자유로운 투자와 기업 활동을 막는 과도한 규제가 된다. 이제부터 대기업이 정치권력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규칙을 준수하면서 기업 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돼야 한다. 그러면 비효율적인 규제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고, 기업은 혁신 경쟁에 몰두할 수 있으며, 우리 경제는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