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yle >女 인 듯… 男 인 듯… 그 궁극의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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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패션위크서 빛난 ‘거장’ 진태옥·장광효 컬렉션

지난 27일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2017 서울패션위크. 반년 앞서 올해 하반기의 패션 경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로 국내 최대 패션 축제다. K-팝 컬처를 기반으로 한 젊은 디자이너들의 약진과, 세계 시장에서 낯설지 않을 만큼 제자리를 차지한 중견 디자이너들을 주축으로 하는 행사지만, 그 속에서 가장 빛났던 무대를 꼽으라면 역시 진태옥과 장광효라는 한국이 낳은 두 거장의 컬렉션이다. 올해로 데뷔 52년이나 됐지만 새롭게 연극 의상에 도전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옷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진태옥 디자이너와 1980년대 무채색 일색이던 한국 남자의 옷에 밝은 컬러와 새로운 디테일을 장착시켜 돌풍을 일으켰던 장광효 디자이너의 카루소 30주년 특별 컬렉션을 들여다본다. 각각 여성복과 남성복이라는 다른 이름이지만, 양 런웨이의 모델들이 옷을 바꿔 입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남성인 듯 여성인 듯 모호한 분위기, 남성과 여성 사이 그 어디쯤에서 두 디자이너는 ‘궁극의 미’를 찾고 있는 듯 보인다. 두 사람이 무대 위에서 풀어내는 ‘젠더(사회적 성)’에 대한 생각을 엿보자.

◇ 구태의연한 사람들을 향한 장광효의 메시지 … 남성복은 전복(顚覆)이다 = 장광효의 브랜드 카루소는 올해로 30주년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다. 젊고 재기발랄했던 남성 디자이너는 이제 거장이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또한 그 열정의 꾸준함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1987년 탄생해 차근차근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의 역사를 쌓아온 장광효는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뒤섞인 여자와 남자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할 의상을 선보였다. 그동안 그는 일반적으로 남성복이라 여겨지는 스타일을 해체하는 걸 즐겨 왔다. 올해는 30주년 기념 컬렉션으로서 진일보한 무대를 선보였다. 전통과 관습에 대한 진중한 성찰, 그리고 최근 트렌드인 유스컬처와 사회의 흐름, 시대의 지식을 옷 안에 감칠맛 나게 버무리고자 한 것.

카루소는 섬세하게 재단된 슈트에 밀리터리를 녹였다. 모직, 벨벳 소재 또는 누빔을 활용해 포근한 느낌을 연출했으며 한국적인 요소가 담긴 군복 형태, 과장되게 긴 소매, 수놓인 등판 등이 은은함을 풍겼다. 지난 시즌 ‘효’를 주제로 한 의상에서 선보였던 자개도 다시 런웨이에 올랐다. 고양이, 새, 꽃, 나무 등의 동식물 모양 그래픽이 시선을 끌었다. 남성성이라 여겨지지 않았던 ‘무엇’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예컨대 허벅지 라인이 드러날 정도의 타이트한 슈트 팬츠나 리본 장식의 소매가 돋보이는 화이트 블라우스, 팬츠 위에 입은 앞뒤 절개의 청스커트 등이다. 장광효 디자이너에 따르면 이는 구태의연한 사고에 한바탕 골탕을 먹이는 작업이다. 또한 이러한 전복적인 이미지야말로 그가 가장 사랑하고 즐기는 것이기도 하다.

◇ 강인한 남성성을 이끌어 내는 부드러운 여성성의 가치 … 진태옥의 ‘젠더 매치(Gender Match)’= 올해로 52년 차. 거장이라는 말도 모자란다. 최근 연극 ‘메디아’ 무대 의상을 통해 여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에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이 디자이너는 자신의 경쟁 상대가 결국 자신뿐임을 이번에도 입증했다. 변함없이 진태옥이었으나 더 나아진, 또 다른 진태옥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진태옥 컬렉션은 제목부터 그 콘셉트가 분명하다. ‘젠더 매치’. 사회적 성의 대결, 시합이기도 하고, 짝·어울리는 사람, 꼭 닮은 것이라는 의미도 된다. 남자냐 여자냐, 남자의 것, 여자의 것이라는 도식화된 정의가 무의미하다는 메시지 아닐까. 대결자이자 짝이자, 닮아 있는 존재를 런웨이 위에 혼재시키는 방식으로 진태옥은 50여 년 연륜의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번 서울패션위크의 진태옥 컬렉션은 강인한 남성복에서 볼 수 있는 실루엣에 부드러움이라는 여성성을 녹여 냈다. 새로운 디자인이다. 1930년대 유행한 클래식한 재킷이나 1970년대를 풍미한 넓고 긴 와이드 팬츠, 1980년대의 파워풀한 여성을 상징하는 빅 실루엣 파워슈트 등 매니시룩(남성풍 여성복)과 어우러진 관능적 의상들이 무대를 장식했다. 1930년대를 주름잡은 할리우드 배우로 관능미의 아이콘이었던 마들레네 디트리히가 떠오르는 스타일을 진태옥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주요 컬러는 레드와 코발트블루, 버건디 톤으로, 벨벳을 펠트(양탄자 등에 사용되는 소재)에 압착시킨 ‘벨벳펠트’와 울, 실크, 코듀로이, 시폰 등을 사용해 우아하면서도 강한 느낌의 실루엣을 잘 표현해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사진=서울패션위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