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식 기자의 버디 & 보기>메이저 챔피언이 되기 위한 조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인스피레이션이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막 도시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 골프장에 취재차 왔습니다. 메이저대회인 만큼 선수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새벽부터 연습장에 나타나는 선수도 있고, 석양을 등지고 늦게까지 훈련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메이저대회는 코스 세팅이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곳 대회장 역시 깊은 러프와 쉽게 세울 수 없는 빠른 그린으로 중무장했습니다. 선수들을 괴롭힐 만반의 채비를 마쳤습니다. 이곳은 연간 강수량이 50∼100㎜에 불과하지만 지난 1∼2월 사이 10년 치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비를 흠뻑 머금은 러프가 예전보다 2∼3배 웃자라면서 밀도가 높아졌고, 이로 인해 페어웨이를 놓쳐 ‘러프 공포’를 느끼는 선수도 여럿 있습니다. 퍼팅 그린의 잔디 역시 밀도가 높아져 부지런히 롤러로 다지고,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깎고 있습니다. 웨지로 치더라도 공이 그린 밖으로 달아날 정도로 그린이 빠른 데다가 딱딱해 선수들은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두 자릿수 언더파가 불가능할 것이란 얘기도 나옵니다. 직전 열린 뱅크오브호프 파운더스컵은 25언더파, KIA클래식은 20언더파가 우승자의 스코어였습니다.

메이저대회는 오로지 ‘능력자’만이 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높은 변별력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은퇴 전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여자골퍼였던 애니카 소렌스탐도 메이저대회에서만큼은 유독 소심한 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었습니다. 위험한 버디보다 안전한 파세이브가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메이저 교훈’을 깨우쳤기 때문이죠. 소렌스탐의 메이저 공략 원칙으로 몇 가지가 있습니다. 소렌스탐은 안전성 확보를 추구했습니다. 공이 해저드나 러프 등 트러블에 빠질 염려가 있다면 미련 없이 드라이버를 백 속에 놓고, 짧은 클럽을 잡아 ‘우회’했습니다. 성공확률 60% 이상일 때만 트러블을 돌파했고, 그 이하면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소렌스탐은 또 그린이 까다로운 만큼, 공이 떨어지는 거리를 정확히 계산한 뒤 클럽을 선택했습니다. ‘굴러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은 후회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난도가 높은 핀 포지션이라면, 공이 그린에 떨어져 최대 두 번 안에 마무리할 곳으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원칙은 장애물은 두려워하되 스윙은 자신 있게 한다는 것이죠.

본격적인 봄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주말 라운드에 앞서 메이저대회를 한 번쯤 유심히 관찰하시길…. 뭔가 보여주려는 샷보단, 소렌스탐과 같은 스마트 골프를 실천한다면 타수뿐 아니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골프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