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한국 기업들, 檢·국회·시민단체 눈치 보느라 능력발휘 못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소재 AIA타워 보고펀드 사무실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우리나라 국가 시스템 개혁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 (前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제왕적 대통령 끝내려면 권력기관 개편하고 인허가권 줄여야”

2008년 11월 10일 ‘외환은행 매각사건’ 1심의 결심 공판.

변양호(현 보고펀드 고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당시 보고펀드 대표는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직자의 가장 큰 의무는 위기를 예방하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소의 비용으로 위기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남대문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지붕의 기와를 뜯어내고 살수를 해야 진화가 가능하다는 전문지식과 이를 관철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진 관료가 필요했습니다. 저에 대한 검찰의 기소 행위는 남대문 화재 시 기와를 뜯고 살수해 진화에 성공했더니 기와를 뜯어낸 행위가 잘못이라고 꾸짖는 행위와 같습니다. 명나라 말기에 환관의 세력이 커져서 소신 있는 신하들이 고통을 받자 한 신하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훌륭한 신하가 치욕을 당하는 것은 나라가 치욕을 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최근 소위 ‘변양호 신드롬’으로 능력 있는 후배 공무원들이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부디 현명한 결정으로 후배 공무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해 11월 24일 변 고문은 2007년 1월 15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무려 87회의 공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9년 4월 13일 시작된 2심에서도 12회 공판을 받고 무죄 판결을 다시 받았다. 2010년 10월 14일 대법원 판결에서도 역시 무죄였다. 2006년 6월 12일 변 고문에 대한 긴급체포로 시작된 이 사건이 4년 4개월 만에 종결된 것이다. 이로써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은 변 고문의 책 ‘변양호. 신드롬.―긴급체포로 만난 하나님’(홍성사, 2013년)에 언급된 대로 ‘헐값’과 ‘의혹’이 사라진 사건이 됐다.

변 고문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통일로2길 AIA 타워 보고펀드 사무실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변 고문은 ‘샤이(shy)’해 보이면서도 성격은 급한 편이었다. 전날 A4 용지 3페이지에 걸친 긴 질문지를 보냈는데, 인터뷰 당일 날 이메일로 상세한 답변지를 보내왔다. 사실 그동안 나온 변 고문 관련 기사를 정신없이 읽고 인터뷰에 임했다. ‘변양호 하면 론스타’였기에 먼저 2003년 8월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금융 문제 전반으로 논의를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변 고문은 이미 다 끝난 외환은행 매각 사건이나 론스타 평가를 한가하게 하자고 인터뷰에 응한 게 아니라며 ‘발끈’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의 주장이 틀리지는 않는다. 이미 법적 공방이 끝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구해 밤새 읽어보니 그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는 책에서 “당시 외환은행은 자본 확충이 필요했다. 외환은행 자체적으로 그렇게 판단하고 추진했다. 재경부 금융정책국은 금융산업의 발전과 금융시장의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상 외환은행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외환은행의 자본 확충 노력을 지원해준 것이다”라고 썼다. 이후 재판은 변 고문의 이런 주장을 입증하는 과정이었다.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게 드러난 과정이기도 했다. 그는 책의 ‘나가는 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시중은행을 외국 자본에 매각할 때 정치적인 흑막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은 없었다. 검찰의 조사 결과도 그렇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검찰은 실무자인 나에게 책임을 물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론스타 펀드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금융정책국뿐만 아니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청와대, 외환은행에 이르기까지 외환은행 매각에 대해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이견 해소를 위한 관계기관 장관회의도 필요하지 않았다.”

변 고문은 외환은행 매각이 화재 진압을 위해 불가피하게 ‘기와’를 뜯어낸 행위임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은행을 외국 펀드에 팔고자 하는 공무원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전제했다. “그때 외환은행은 자본이 확충되어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 2003년 10월 하순에 론스타의 자금이 외환은행에 유입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LG카드 사태가 터졌다. 론스타 자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LG카드보다 재무상태가 훨씬 나빴던 외환카드는 도산했을 것이다. 외환은행도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자회사인 외환카드의 어려움을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외환카드가 도산했다면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안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당연히 LG카드도 회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뱅크런(bank run)까지도 갈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한 것이다.”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PEF)를 포함한 금융회사의 투자는 수익금 회수를 위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금융회사가 많은 수익을 내면 오히려 칭찬해줘야 한다는 변 고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변 고문은 외환은행 조사 건과 맞물려 현대차 계열사의 채무탕감 로비 의혹 사건(변 고문은 이를 ‘현대차 사건’으로 부른다. 1심 무죄, 2심 유죄로 법정구속, 대법원 무죄로 이 또한 검찰의 무리한 기소였음이 최종적으로 입증됨)에서 뇌물 수수 혐의로 2차례 292일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의 입장에서 론스타 얘기가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먹튀 논란’을 부른 론스타의 이후 행태와 지금도 진행 중인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론스타의 투자자·국가소송(ISD), 대법원 판결에서 유죄로 인정된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등을 고려하면 후대에 좀 더 객관적인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어쨌든 변 고문 사건의 여파는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안타까운 현상을 낳고 있다. 그는 “공직은 물론 민간에서도 일을 해결할 생각보다는 책임을 지지 않는 풍토가 강해졌다”고 걱정했다.

“특히 행정부는 심하다. 국회가 강해지면서 행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은 더 떨어지고 있다. 검찰과 감사원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신드롬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간다.”

그는 불합리한 사법 시스템의 개혁, 특히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법 앞의 평등은 공정한 경쟁의 첫걸음이고 번영의 기초이다. 검찰과 집권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기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그래야 창의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선진국의 기업가를 보면 열심히 자기 일만 하면 된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검찰·경찰·국세청·국회·언론·시민단체 등 신경 쓸 데가 너무 많다.”

그의 개인적인 ‘고초’는 검찰 개혁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졌다. 그는 ‘시스템 개혁’이라는 화두를 필사적으로 붙들어 능력 중심의 공정한 경쟁, 경제 자유화, 사회 안전망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이를 위한 방법론은 사회적 대통합과 협치였다.

금융개혁으로 다시 말문을 텄다. 박근혜정부 4대 개혁 중 하나였던 금융개혁의 방향이나 화두가 제대로 잡혔다고 보는지 물었다.

“금융뿐만 아니라 모든 우리나라 시스템이 개혁돼야 한다. 은행장을 3년마다 바꾸는데, 3년마다 수장이 바뀌는 회사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능력 있거나 실적 좋은 회장(행장)은 언제든 연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은행 부행장들은 다 1년 단위 재계약이다. 그래서 무슨 실력이 늘고, 뭐가 잘될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전체 사회를 힘 있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 중심으로 바꿔야 나라가 제대로 된다. 금융만 떼서 개혁한다는 건 안 된다. 저는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축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어떻게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땀을 흘리는 것에 대해서는 대가를 인정해 주지만 머리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공짜라고 생각한다. 금융회사들은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풍토가 있다. 금융은 우리 국민의 재산을 증식해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 국민 전체가 가진 금융자산이 5000조 원이라면 수익률을 1%포인트만 높여도 50조 원의 이득이 생긴다. 금융은 만만하게 볼 산업이 아니다. 따라서 경영진이 성과를 내고 있으면 몇 번이라도 연임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금융감독기관은 준법성과 건전성 이유로만 금융회사에 관여하는 절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

―민간 쪽은 진일보하고 있는데, 공공기관은 여전히 ‘낙하산’ 얘기가 나오고 있다.

“낙하산으로 능력 없는 사람을 CEO로 보내면서 공공개혁을 하자고 하면 안 된다. 그런 걸 바꿔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이 공기업과 산하기관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대통령이 뽑을 수 있는 자리를 둘로 나눠보자. 단순히 관리만 해도 되는 공공기관이 있다. 산업은행처럼 정말 중요한 전문가가 가야만 되는 자리도 있다. 관리만 해도 되는 곳은 지금처럼 대통령과 정치세력이 선거 논공행상도 필요하니 거기는 주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능력 있는 인사를 필요로 하는 기관은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투명하게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뽑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게 중요하다. 여기는 정치권이 인사권이라는 기득권을 놔야 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소재 AIA타워 보고펀드 사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파워 인터뷰에서 최근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추가 지원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시스템 개혁의 주체는 누구인가.

“대통령과 국회가 중심이 돼야 한다. 이번에 최순실 사건을 겪고 나서 우리 국민 모두가 이런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다음 대통령이 정말로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기대를 다 갖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이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저는 기회만 있으면 ‘우리도 길이 있고, 그 길이 어려운 게 아니다. 힘 있는 사람이 결단만 하면 우리도 정말 잘사는 길이 있다’는 걸 계속 얘기하고 싶다.”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얘기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왜 힘이 있냐, 두 가지다. 대통령은 권력기관을 갖고 있다. 검찰, 국세청, 경찰 (동원해) 말 안 들으면 혼내 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또 인허가권을 갖고 있다. 종합편성채널도 면세점도 모든 게 인허가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세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권력기관을 개편하고 인허가권을 줄여야 한다. 그러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또 대통령 스스로가 ‘인사권 행사 범위를 줄이겠다, 능력 있는 사람을 뽑겠다’고 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해 시스템 개혁으로 가야 한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 공직 제의를 받는다면.

“일관되게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왜냐면 저보다 잘할 사람이 많다. 또 제가 직접 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밖에서 얘기하는 게 더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 한자리하려고 저렇게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 제 말의 정당성이 확 떨어지지 않겠나. 공무원 신분이 아닌 것으로 국가 시스템 개혁에 조언하는 역할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인사청문회 시스템 때문에 그런가.

“지금처럼 신상 털기식으로 과거 행적을 파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주변에서 신망을 받는지, 아래 사람한테 존경을 받는지, 동료 평가는 어떤지 이런 게 중요하다. 인사권자에게만 잘 보여서 한자리하려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도움이 안 된다. 꾸준하게 자기 능력을 쌓고, 주변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된다. 그런 사람을 뽑는데, (현재의) 청문회 제도는 맞지 않다고 본다. 이런 식으로 가면 능력 있는 사람도 청문회 때문에 하지 않는 ‘역선택’의 문제가 언젠가 나올 것이다. 도덕성 검증을 하더라도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관행으로 인정해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려내야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을 뽑는 게 시스템 개혁의 요체인가.

“그렇다. 회사를 예를 들면, 오너가 계열사 사장을 뽑을 때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능력 있는 부사장을 뽑을 가능성이 높다. 그 사람들이 회사를 잘 경영하면 그 회사의 실력이 쌓인다. 그게 회사의 자산이다. 그런데 인사할 때 공정한 경쟁이 안 되면 누굴 뽑나. 정치권과 누가 더 가까운지를 놓고 CEO를 뽑게 된다. 그러면 그 밑에 부사장도 훌륭한 사람이 오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나라 전체가 실력보다는 끈(인맥)이나, 힘 있는 사람 중심으로 간다. 나는 나쁜 짓 해도 힘 있으니 괜찮고, 누구는 당하고 이런 게 없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그래야 공정한 경쟁이 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더 역할을 할 수 있다. 축구에서 이기려면 박지성 같은 선수를 써야 한다.”

―시스템 개혁의 방향이 보수와 진보 어젠다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 것 같다.

“맞다. 그렇게 가야 한다. 대연정이 논란이 됐는데, 대연정, 즉 협치를 하려면 보수와 진보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철학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이게 단순히 정치공학적 어프로치(접근)로는 안 된다. 대연정을 하려면 ‘야 그걸 하려면, 보수 쪽에서 얻는 가치가 뭐냐’‘그럼 진보 쪽에서 얻는 가치는 뭐냐’ 이런 철학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규제 완화, 경제 활동의 자유화 이런 건 보수 진영이 항상 주장한 가치다. 사회 안전망은 진보에서 주장하는 가치다. 공정한 경쟁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다. 공정한 경쟁을 하자고 하는데, 보수·진보에서 ‘노(NO)’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경제 자유화를 하자면 진보는 반대, 보수는 찬성한다. 반대로 사회 안전망을 하자면 진보는 찬성, 보수는 반대다. 그걸 왜 이분법적으로 나눠 하나. 다 같이 잘살려면, 생각을 바꿔서 다 자유롭게 (경제)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거기서 어려운 사람은 사회안전망으로 언제, 어디서나 기본 생활을 할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해준다. 그럼 보수도 오케이, 진보도 오케이다. 제3의 길로 가야 한다. 사회적 대통합, 사회적 합의 이런 게 필요한 시점이다. ”

―현실 세력 관계를 보면 실현 가능성이 좀 떨어지는 제안 아닌가.

“아니다. 이제는 단편적인 대책은 아무 의미가 없다. 법인세 하나 올려서 무슨 문제를 해결하는가. 10조 원 더 걷어서 우리나라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래서 청년들에게 돈을 나눠주면 그걸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가. 새로운 경제 활동이 있어야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새로운 경제 활동을 하겠다는데도 다 막아두고, 그러고 무슨 일자리를 만들겠나. 기존 일자리를 둘로 나누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한진이 풍문여고 옆 미 대사관 부지에 호텔을 지으려고 했는데 못 짓게 한다. 제가 이번에 미국 시카고에 손녀 보러 갔더니 초등학교 바로 옆에 호텔이 있더라. 호텔이 학교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런 거 다 허용해줘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몇 백 명 일자리 늘어나고 그 가족은 나름 좀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에 간다. 영종도 아니면 서울 근교에 ‘메디컬 허브’를 만들어 전 세계 돈 있는 환자가 한국 와서 치료받고, 서비스를 받게 해야 한다. 의사, 간병인도 필요하고, 병원을 운영하려면 회계사와 변호사도 필요해 일자리가 창출된다. 그런 거 막는다고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게 아니다. 어려운 사람은 정부가 돈을 걷거나 다른 예산을 줄여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보호해줘야 한다. 보육과 교육, 실업, 질병, 노후 등 기본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을 확실히 도와줘야겠다는 ‘비전’을 내놓고 경제 자유화 하자고 해야 한다. 골목상권 대책만으로 골목상권을 지키기 어렵다. 그리고 정부가 기업이나 조직 등에 직접 지원해주는 것은 점차 폐지하고 어려운 개인을 직접 돌봐 주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중소기업을 보증 등을 통해 지원하지 말고 그 기업이 자력으로 살아가도록 하고 만약 도산을 한다면 그 회사의 종업원들을 정부가 직접 케어하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 저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다음 정부가 이런 노력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보다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어떤 계기로 이런 고민을 해왔는가.

“제가 경제 쪽을 쭉 해왔다. 어떻게 하면 나라 경제가 좋아질까 그런 생각을 계속했다. 제가 생각해보고 정리해보니까 이게 너무 심플한 해법이다. 세 가지다. 공정한 경쟁, 경제 자유화, 사회안전망 이 세 가지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만 가자는 것이다. 그 정도만 가면 우리나라 국민이 능력 있고 악착같아서 뭐든 해낼 것이라고 본다. 안현수처럼 뛰어난 선수를 러시아에 빼앗기면서, 무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더 딸 기대를 하느냐. ”

―최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정부의 추가 지원을 두고 논란이 컸다.

“2003년 제가 LG카드 (구조조정) 했을 때, 너무 살리기 힘들었다.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왜냐면 기업이 물적 자산, 예를 들어 컴퓨터나 토지, 건물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기업은 일을 처리하는 노하우와 영업망과 거래처와 관계, 지적재산권, 이런 보이지 않는 자산이 많다. 그런 걸 청산하면 그 보이지 않는 자산은 어디서도 건질 수 없다. 지금 대우조선을 정리하면 십수조 원에 달하는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주처에 물어줘야 하고, 건조 중인 배는 고철로 남게 된다.”

―그렇다면 대우조선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가.

“통상 부실기업을 정리할 때 ‘굿 컴퍼니(good company)’와 ‘배드 컴퍼니(bad company)’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대우는 해양플랜트, 상선, 방산 등 세 가지 사업을 하는데 현재 방산이 가장 좋다. 그런데 방산만 떼어서 매각할 수 없다고 한다. 세 사업 모두 같은 작업장을 쓰고 있어 방산 부분만 떼서 매각하려면 방산만을 위한 작업장을 새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상당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지금 건조 중인 선박을 삼성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이 인수해 가는 방법도 어렵다. 선박 발주처는 대우를 믿고 대우에게 일을 맡긴 것이다. 만약 삼성에 배 건조를 하라고 넘겨주려면 발주처의 동의가 필요한데 하자 보수 등 여러 이유로 발주처가 동의를 해주지 않고 계약을 해지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럼 RG 보증금을 발주처에 물어줘야 하고, 지금까지 건조 중인 선박은 미완성인 채로 작업장에 고철로 남아야 한다. 결국 조선 2사 체제로 가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안 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을 경쟁사가 인수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놓아야 2사 체제로 갈 수 있다. 만약 지금 상태에서도 대우조선을 인수하겠다는 곳이 있으면 당장 팔아야 하지만 그런 상태가 아니다.”

―대우조선과 한진해운을 비교하며 정부의 구조조정이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어느 경우에도 기업은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게 맞다. 하지만 채권단 입장에서 이 회사를 살리고 싶지만, 한없이 돈이 들어갈 거 같으면 살리기 어려운 거 아니겠는가. 대우조선의 경우는 (한진해운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고육지책이다. 다른 좋은 방법이 있으면 할 텐데, 그게 없다는 게 문제다. 미국도 2008년 금융위기 때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는 도산했고, AIG나 메릴린치는 도산을 면했다. 정부의 결정이었다. 미국에서도 형평성 논란이 심했지만 전문가들의 결정을 존중해 주는 풍토가 우리와 다르다.”

―금융당국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어려운 문제다. 다른 방법을 현실적으로 찾기 어렵다. 민간 사모펀드(PEF)가 나서면 좋겠지만 우리나라는 쉽지 않다. 민간 PEF는 돈을 벌려고 투자하는 것이다. 론스타의 투자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서 누가 돈을 대고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겠는가.”

―기업 구조조정 실무자에게 면책권을 부여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과 감사원 개혁이 먼저이다. 공무원들은 면책권을 믿지 않는다. 내 경우도 론스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검찰은 뇌물 사건을 만들어냈다. 타깃이 되는 공무원을 별건으로 어려움을 줄 수 있는 게 우리나라다. 이것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인터뷰 = 김충남 경제산업부 차장 utopian21@munhwa.com

정리 =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