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전쟁이 禁忌語일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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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정치부 부장

주위의 현역 장병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전쟁을 가장 두려워하는 집단은 군인이다. 가장 먼저 전장으로 뛰어나가야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묻어 있다. 하지만 가족과 친척, 사회와 국가를 지키려면 스스로를 이겨내야 한다. 한반도 전쟁에 대해서 제일 우려하는 국가는 역시 한국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달리 개전 시 한반도 강역은 초토화가 된다. 쌓아 올린 부와 재화는 잿더미로 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비극에 처한다. 이승만정부에서 김영삼정부, 그리고 박근혜정부까지 전쟁 억제는 절대적 지상과제였다. 전쟁만을 준비해 온 북한은 한국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개전 의지는 물론 능력도 없다고 보고, 핵·미사일 개발로 한국을 위협해 왔다.

미·중 정상회담 폐막 이틀 전인 5일 미국의 경제전문 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에는 “만일 도널드 트럼프가 대북 군사행동을 원한다면, 4월 감행 가능성이 있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글의 토대는 크게 두 가지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귀환 불능 지점(Point of no return)’에 이르렀고, 한·미 동맹 불협화음이 예상되는 후보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기 전에 미국은 북핵 원인 제거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체의 내용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한반도를 바라보는 외부 시각의 단면을 제공한다. 후자는 몰라도 전자의 진단은 곱씹어 볼 대목이 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보유한 불량정권”이라고 규정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선제타격과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 중이다.

국제 정치에서는 ‘매드 맨 전략’이 종종 등장한다. 자신을 미치광이로 인식시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이다. 국제 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6차 핵실험 버튼을 만지고 있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대표적 미치광이 지도자로 통한다. 시리아 공습에 나선 트럼프는 반대자들로부터 전쟁광 비판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트럼프의 전략은 협상용일 뿐 결국 북·미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을 너무나 모르는 안이한 사고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워싱턴을 겨냥하면서 전쟁의 조건은 성숙되고 있다. 미국의 어느 지도자라도 본토를 위협하는 핵무장 불량국가를 방치하기는 어렵다. 제2의 한국전이 아닌 북·미전쟁의 서곡이 울려 퍼지는 조짐이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로서는 ‘전쟁은 이성적 행동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한다. 이는 ‘이성은 전쟁이라는 폭력적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전쟁의 역사를 보면 불행하게도 대답은 예스(yes)라기보다는 노(no)인 경우가 많다. 이성이 전쟁을 통제한다고 판단한다면 인류의 역사는 비이성적 산물의 집합체가 된다. 한국 언론에서 그동안 전쟁은 금기(禁忌)의 단어였다. 불필요한 언급으로 사회 동요와 혼란을 유발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원하는 것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건이 충족되고 있는데도, 외면하는 행위 역시 무책임하다. 5월 9일 청와대 책상의 주인이 누구일지라도, 북핵 문제 해법의 진행 방향에 한반도의 전쟁이 올라와 있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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