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학서 ‘재미있는 물리여행’… 美저자 “한국판은 해적판” 분노?

  • 문화일보
  • 입력 2017-04-1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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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8년 국내 출간된 ‘재미있는 물리여행’(왼쪽)과 원서 ‘THINKING Physics’.


베른 국제저작권협정 발효前
1988년 계약 없이 국내 출간

김영사 “당시 정식계약 위해
연락 취했지만 답신 못 받아”

국내 재출간 나선 꿈결출판사
저자와 계약 맺어… 6월 출간


1988년 김영사에서 출간돼 한국 대중 과학서 붐을 일으킨 ‘재미있는 물리여행’(1·2권 원제 THINKING Physics)을 다시 출간하려던 꿈결 출판사 관계자는 지난해 원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도 영미권에서 물리학 교과서, 대중적 물리학 교양서로 대접받고 있는 책에 저자 루이스 엡스타인 전 샌프란시스코 시티 칼리지 물리학 교수의 분노에 찬 탄원서 두 장이 수록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탄원서는 저자가 1990년대 후반 미키 캔터 당시 상무부 장관과 2005년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에게 보낸 것으로 내용은 자신의 책이 한국에서 해적판으로 출간돼 시정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출판사 측이 수소문 끝에 저자와 접촉하자 엡스타인은 한국 출판사라는 사실에 화를 내며 한국 출판사와는 앞으로 절대 계약하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물리여행’은 1988년 국내에 출간돼 과학책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자 이후 다양한 ‘재미있는 ∼’ 시리즈로 이어지며 김영사의 기초를 닦은 대표 타이틀이기도 하다. 물리 이론을 일상의 현상을 예로 들어 알기 쉽고 재미있게 해설한 교양 물리 입문서로 절판된 뒤에도 재출간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엡스타인은 탄원서에서 “우리는 한국의 오랜 친구를 지키기 위해 북한과의 핵 결전에 직면해 있는데 한국 친구들은 우리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물리 여행은)해적판으로 진행 중인 범죄(crime in progress)이다”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고세규 김영사 이사는 “해외 저작권자 입장에서는 부당한 처사이겠지만 불법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우 국제 저작권 협정인 베른 조약이 발효된 1996년 이전에는 저작권 계약 없이 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조약이 발효된 뒤에도 국내 출판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1995년 1월 전에 나온 책은 계속 출간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다만 저작권법상으로 2000년 이후에는 저작권자가 청구할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게 돼 있다. 고 이사는 “법적으로 저작권 계약 없이 출간할 수 있었지만 정식 계약을 위해 출판사인 인사이트 프레스(Insight Press)에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취했으나 답신을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그렇다 해도 주요 교양 도서에 한국 출판을 비난하는 탄원서가 수록된 채 팔리는 것은 문제”라며 상황을 파악해 확인하는대로 원칙에 맞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꿈결은 미국 대사관의 보증서를 갖고 오라는 등의 요구를 한 저자와 우여곡절 협의 끝에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오는 6월 이 책을 다시 출간하기로 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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