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sumer >요금폭탄·끼워팔기… 노인 우롱하는 ‘실버특화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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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실버 소비자’ 시대다. 경제력을 갖춘 고령층이 증가하고 은퇴 설계 시장이 팽창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베이비붐 세대가 불황기 최대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실버 스타일’을 선점하기 위한 업체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소비자원)이 지난해 3월 발간한 ‘소비자 정책동향 제68호’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소비자의 소비지출은 이미 전체 소비자 평균의 63.8% 수준에 달할 정도로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국내 다양한 업종에서 소비의 ‘큰손’인 시니어 고객을 모시기 위해 60세 이상 가입자를 대상으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며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실버 특화 상품’을 명목으로 노인 소비자를 우롱하는 피해 사례 또한 속출하고 있다.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실버 상품들이 되레 노인 소비자를 울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름값 못하는 스마트폰 실버요금제 =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사는 장모(여·62) 씨는 지난해 9월 자신의 휴대전화 요금명세서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고지된 요금이 10만 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두 달 전 생일을 맞아 새 스마트폰으로 교체할 때, 이동통신사 대리점 직원의 추천으로 기존에 쓰던 5만 원대 LTE 요금제를 2만 원대 ‘실버요금제’로 바꿨던 것이 화근이었다.

장 씨는 “단말기 할부 값을 포함하더라도 기존 6만~7만 원가량 요금이 나왔던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돈이 청구됐다”며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해서 자주 게임을 하거나 지인들과 ‘밴드’‘카카오톡’으로 손자 사진을 공유하는 등 교체 이전과 이용 유형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이동통신사의 휴대전화 실버요금제가 평균 사용 패턴과 동떨어지게 설계돼 일반 요금제보다 훨씬 비싼 요금을 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소비자원이 60대 이상 스마트폰 이용자 435명을 대상으로 이동통신사의 실버요금제 운영 실태를 설문 조사한 결과, 음성 통화나 데이터 기본 제공량이 해당 연령대의 평균 사용량보다 부족했고 기본 제공량보다 데이터를 더 사용할 경우 되레 요금이 비싸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응답자의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2.79GB, 음성 통화 사용량은 163분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동통신 3사 실버요금제 전체 15종 가운데 이들 소비자의 데이터 평균사용량인 2.79GB보다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는 1종에 불과했다. 12종은 200MB~1.2GB 사이의 데이터만 제공하고 있고, 음성통화 기본 제공량도 150분 이하에 집중돼 있었다.

◇실버 세대 특화 상조, 알고 보니 ‘끼워팔기’= 노인들이 자식들에게 자신의 사후 장례 부담을 지게 하지 않으려는 의식이 높아지면서 상조회사도 실버 세대 잡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실제로 시중에는 가입 시 안마의자, 노후 관광을 위한 호텔리조트 멤버십 등 다양한 생활혜택을 제공하는 실버 세대 특화 상조상품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피해 사례 또한 급증하는 추세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사는 양모(60) 씨도 상조상품에 가입하면 안마의자를 공짜로 준다는 설명을 듣고 899만 원짜리 서비스에 가입했다. 하지만 업체에서 보낸 계약서를 보니 상조상품 금액은 576만 원이었고 나머지 323만 원은 3년간 할부로 내야 할 안마의자 가격이었다. 양 씨는 안마의자 구매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급을 요구했으나 상조회사는 안마의자 제조업체에 문의하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1372소비자상담센터’에는 매년 1만 건 이상의 상조 관련 피해상담이 접수되고 있다. 지난해 10월까지 7500여 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이처럼 상조회사의 이른바 ‘끼워팔기’에 불만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난해 11월 상조 결합 및 유사상품에 ‘소비자 피해주의보’를 발령해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한 피해를 줄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결합상품 형태의 판매방식이 불법은 아니라고 해도, 본 상품과 결합상품의 계약서가 별도로 작성되기 때문에 소비자는 계약 주요사항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상조회사 모집인은 상조회사 소속 직원이 아니라 개인사업자인 경우가 많고 근속 기간이 짧은 편이기 때문에 모집인 설명만 믿지 말고 약관, 계약 내용 등을 본인이 직접 챙기는 게 좋다”며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2015년 12월 기준 한국 60세 이상 고령 소비자가 자주 경험하는 소비문제는 △정보통신서비스(30.05%) △식료품·기호품(17.92%) △의료서비스(14.01%) △의류(10.36%) △보험(9.13%) △토지·건물(9.06%) 순으로 집계됐다. 또 상품 선택 시 품질보다 과도하게 비싼 가격으로 구매하게 된다거나 분쟁이 일어났을 때 피해구제 상의 문제를 다른 연령층의 소비자에 비해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방문판매로 인한 소비자피해 경험률이 다른 연령집단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김민정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아무래도 노인 소비자들은 어떤 상품이나 제품의 정보에 대해 직접 정확하게 파악하기보다는, 설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말을 신뢰해 그대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 개인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후 대안으로, 노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등 사전 대안을 늘려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훈·김현아 기자 powerkimsh@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