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우리, 행복한 어린이>매달 생활비서 기부금 먼저 떼… 무연고 아동 돕는 ‘엄마 천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온(오른쪽)이와 엄마 김민주 씨가 12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남가좌교회 사택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밝게 웃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김민주 前 보육원 교사

“태성(2)이가 웃는 게 계속 생각나요. 내가 도와줘서 그렇다니까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도 어려운 친구를 계속 도와줄 거예요. 그리고 청소도 해줄 수 있어요. 엄마는 저번에 동생들 있는 데 가서 청소해 줬는데, 저는 못 갔어요. 다음에는 엄마랑 꼭 같이 갈게요.”

시온(여·7)이는 ‘꼬마 기부천사’다.

물론, 시온이가 돈을 벌어 기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온이 엄마는 지금 당장은 자신이 시온이 이름으로 기부금을 내지만, 시온이가 용돈 개념을 알게 될 때가 되면 시온이 용돈에서 직접 기부금을 내도록 할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기부를 몸에 익힌 아이는 나중에 크면 기부를 당연히 해야 하는 행위로 인식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남가좌교회에서 목사인 아버지 이진섭(39) 씨를 따라 교회 내 사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시온이는 지난해 어린이날, 엄마 손을 잡고 박물관에 놀러 갔다가 ‘베이비박스’(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부스) 아이를 후원해 달라는 캠페인을 보고 후원을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시온이의 이름을 빌려 엄마 김민주(37) 씨가 기부한 것이다.

“아이 둘을 낳고 양육하면서 솔직히 ‘폭탄’을 맞은 기분이었어요. 아이를 키운다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거든요. 지난해 어린이날도 힘들었어요. 여섯 살, 세 살 된 남매를 데리고 외출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과 놀러 간 그곳에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무연고 아동에 대한 캠페인을 본 뒤, 부모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던 저인데 나와 내 아이만 보느라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크게 반성했어요. 내 아이만 보던 눈으로 다른 아이도 보기 시작했더니,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눠야지 싶었어요. 그래서 딸 시온이 이름으로 무연고 아동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김 씨는 12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부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김 씨는 남편을 따라 서울에 오기 전 경북 포항에서 보육원 교사를 했다.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회복지사가 그의 직업이었다.

“대학 졸업 후 학습지 방문교사를 하다가 보육원에서 아이들에게 교과 과정을 가르칠 학습교사를 뽑는 것을 보고 보육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초등학생에게는 전 과목을 다 가르쳤고, 중학생에게는 국어와 사회, 국사 과목을 가르쳤죠.”

불우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던 그였지만, 아이를 낳고 난 뒤 ‘내 아이’ 키우는 것에만 몰두하다 보니 ‘그들’을 잊고 살게 된 것이다.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일을 그만뒀는데, 친정이나 시댁도 없는 무연고지 서울로 올라오면서 어려움이 최고조에 달했어요. 그러던 중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베이비박스 아이들 소식을 접한 거예요.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는 ‘선생님’의 입장이었는데, 결혼 후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도 ‘모성애’가 생기는 것 같아요.”

김 씨가 이렇듯 유독 미안한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김 씨는 이미 자신이 일했던 포항의 보육원에 적은 금액이지만 기부를 계속해 왔고, 여성환경연대나 기아대책 기금 등에도 매달 기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인 남편 역시 ‘당연히’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김 씨는 매달 생활비에서 아예 기부금을 먼저 떼어 놓고 가계부를 작성한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와 시온이가 결연을 맺고 후원하고 있는 베이비박스 아이 태성이는 장애를 안고 있어 현재 수술을 받은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에 시온이에게 태성이 사진을 보여줬더니 태성이가 왜 이렇게 활짝 웃고 있냐고 묻더라고요. ‘기분이 좋은가 봐’라고 얘기해 줬더니 태성이 웃는 얼굴을 보니까 이상하게 자기도 자꾸만 기쁜 얼굴이 된다고 하더군요. 제가 다녀왔던 봉사활동에 대해 설명을 해줬더니 다음에는 자기도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시온이의 손을 잡고 김 씨는 말을 이었다. “관심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랑’을 실천하는 게 꼭 누구 눈에 띄어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큰돈이 드는 것도, 큰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게 중요하죠.”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