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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7년 04월 13일(木)
권영우 화백 白色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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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세계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러시아의 절대주의 추상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1878∼1935)는 사각형을 기본으로 단순한 형태의 도형만 그렸고, 바탕은 주로 흰색을 고집했다. 흰색이야말로 ‘무한 공간의 진정한 색’이라고 믿었다. 사각형도 백색이 많았고, 아니면 흑색·원색이었다. 고(故) 권영우(1926∼2013) 화백이 하얀 한지(韓紙)를 변주한 작품들로 1966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어느 평론가는 그를 말레비치에 빗대며 이런 요지로 소개했다. “그림에서 흰 공간의 ‘표현정지(停止)’ 사상엔 서양 미학에서보다 동양 미학에서 더 중시한 정신성이 깊다. 그는 전통 동양화의 3요소 중에 지(紙)만 취할 뿐 필·묵(筆墨)은 배제한다. 맨손이나 송곳·칼 등으로 한지를 찢거나 뚫거나 뜯어내어 바탕의 한지에 붙여나가기도 한다. 하얀 바탕 위의 작은 물체를 희디흰 한지로 바른 작품들도 있다. 이런 그의 백색화(白色畵)는 말레비치의 ‘백상백(白上白)’에 견주어 ‘백상백출(白上白出)’이라고 할 만하다.”

1946년에 서울대 미대 1기로 입학해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1958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파격적인 초현실주의 작품 ‘바닷가의 환상’으로 문교부장관상을 받아 ‘한국화단의 이단아’로 불린 이래 그를 일컬어온 수식어는 다채롭다. ‘동·서양화 경계를 허문 종이의 화가’ ‘한국 단색화의 선구자’ ‘흰색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백색화의 거장(巨匠)’ 등. 찢거나 뚫은 한지를 겹쳐 조형화하거나 그 틈으로 먹이나 물감이 자연스레 스며들게 하는 방식 등을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창출한 그의 백색화를 두고, 미술평론가 정준모는 “묵향처럼 은은한 젖빛의 해맑음”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을 중심으로 권 화백의 대표작 30여 점을 선보이는 ‘Various Whites(다양한 하양)’전이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지난달 16일 개막해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그의 백색화를 보면서 시조시인 김상옥의 ‘백자부(白磁賦)’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더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하고 시작해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 날은 이리 순박(淳朴)하도다’ 하고 끝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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