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진달래꽃과 시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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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시인, 고려대 명예교수

시단의 원로 김종길(1926년생) 선생이 작고하신 데 이어 시단의 최고령 원로 황금찬(1917년생) 선생이 지난 8일 작고하셨다. 구순을 넘기고 백수를 하셨지만, 두 시인을 떠나보낸 시단(詩壇)은 적적하기만 하다.

시단이 텅 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월의 잔인함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시인은 김소월이다. 1925년에 간행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이 지금 고서점가에서 거액으로 호가되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시인은 이런 호사를 누려보지 못하고 저세상에 있다.

최근 필자는 서지학자 김종욱 선생으로부터 전해 받은 자료 백석(白石)이 필록(筆錄)한 ‘소월의 생애’를 공개했다.(‘서정시학’, 2017년 봄호) 김안서의 구술을 토대로 백석의 필체로 이를 가감 변형한 인간 소월론이다. 소월이 사망한 직후에 김안서가 1935년에 발표한 ‘소월에 대한 추억’과는 다른 시각에서 소월의 인간적인 면모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이 자료에서 소월의 출생(1902)과 죽음(1934)에 대한 구체적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소월은 평북 정주의 능한산 정기를 받아 곽산 남산에서 태어나 15세에 결혼했으며, 그해 남산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정주의 오산중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 이 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을 가르치던 김안서를 만났다. 소월의 많은 시편의 초고가 오산학교 기숙사에서 작성되었다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소월은 서울로 올라와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이 상과 공부에 실망하고 낙향하여 곽산에 머물면서 그의 시집에 수록할 시편들을 거듭하여 퇴고했다고 한다. 곽산에서 낙백의 생활을 하던 소월은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남시로 옮겨가 사채놀이까지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미친놈 소리를 들으면서 허망한 최후를 맞게 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소월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뇌일혈이라고 명시한 점이다. 초년에는 가냘픈 몸매였던 소월이 구성에 와서 뚱뚱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부대해졌으며, 이것이 과음으로 인한 뇌일혈을 초래한 이유라고 김안서는 증언하고 있다.

사망 당시 소월은 아들딸 육 남매가 있었으며, 구생(龜生)이 구원(龜元)이는 이미 결혼하여 잘 살고 있었으며, 맏아들 준호(俊鎬)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삭주 광산에서 일하고, 운호(雲鎬)·정호(正鎬)·낙호(樂鎬) 셋이 미망인 홍상일(洪尙一) 씨와 정주 곽산 본 고장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런 증언들은 모두 미망인 홍상일 씨가 김안서에게 전한 이야기다.

소월의 육필 원고가 지면에 소개된 것으로 보아 유고시집 출간을 위해 상의하러 갔을 때 미망인이 김안서에게 소월의 육필 원고를 맡겼을 가능성도 있다. 소월의 묘가 구성 남시에 있다는 증언이 마지막에 등장하고 있다. 이 묘를 곽산 본 고향으로 이장하고 싶다는 것이 미망인의 소망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과연 소월의 묘가 최초에 어디에 있었는지 그의 사망 원인이 음독자살인지 등등 쟁론이 분분하던 문제는 이 증언으로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 것이다.

두 번째로 흥미로운 것은 소월의 문학적 계보이다. 그의 문학적 계보는 거슬러 올라가면 농노의 해방을 소재로 한 투르게네프의 ‘엽인일기(獵人日記)’를 읽으면서 조선의 해방을 갈망하던 이광수(李光洙)에서 출발하여 김안서가 징검다리가 되어 김소월의 시가 태어나고 이는 백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 오산학교의 계보가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김소월의 인간적인 풍모다. 소월은 키가 작고 몸집이 가냘프고 살결은 까무잡잡하고 얼굴은 동글납작하고 샛별같이 눈이 빛나는 총명한 사람이었으며, 접동새처럼 울지만 그것을 차디차게 끊어버리는 냉정하고 이지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늘 체모(體貌)를 찾고 얌전을 빼는 샌님이었으며, 비싼 담배 ‘카이다’를 피우며 호사를 부리기도 한 그는 할 말은 하고,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베어 버리는 단호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소월은 그의 시에서는 이지적 천재성을 발휘하여 조선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지만, 돈을 벌고 출세하는 인생살이에서는 실패를 거듭하여 스스로 한이 서린 허무적 감정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 점에서 그의 삶은 양극단을 보여준다.

그가 몰락의 길을 걷기 전에 쓴 명시 ‘진달래꽃’은 그의 나이 초년에 발표된 것이지만, 이미 절제된 시상과 완벽한 구성으로 불후의 시가 되었다. 이 시에는 생과 사,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모든 슬픔을 견디는 극기심 등이 절절한 음률에 실려 아직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봄이 오면 산과 들에 핀 진달래가 붉은 꽃잎으로 온 산의 찬 기운을 감싸듯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시련과 죽음을 통해 우러나온다.

시인들 또한 죽음을 통해서 새로이 탄생한다. 그 탄생은 시를 통한 탄생이고, 봄마다 소생하는 진달래를 통해 우리는 그 영원한 생명의 상징을 보게 된다.

김소월의 생애를 필록한 백석 자신의 생애 또한 김소월의 그것에 못지않은 풍파를 겪게 되는데 이는 두 시인에게 피할 수 없는 각기 다른 어떤 운명적인 고난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시인이란 부침이 심한 인간의 세상살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난히 진달래가 붉게 피는 봄날 홀연히 가신 두 분 원로 시인께 삼가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