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票만 노린 ‘안보 右클릭’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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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의 통수권자가 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핵 문제도 과거와는 다른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얼마 전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의회와의 상의도 건너뛴 채 토마호크 미사일의 발사를 명령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단호하고 거침이 없다. 미국이 ‘전략적 인내’가 아니라 ‘전략적 응징’으로 선회하면서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는 건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변국들의 외교·안보 전략도 전통적인 경로를 이탈하고 있다. 그동안 알아사드 정권을 두둔해 온 중국이 미국의 이번 시리아 공습을 용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과의 전면적인 경제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한편, 일본은 최근 수륙기동교육대를 창설해 유사시 공격 능력에 준하는 상륙작전 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꿈꾸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이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명분으로 삼아 자위대의 정규군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은 높아져만 가는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사드(THAAD) 체계에 대한 소모적인 공방만을 지속해 왔다. 우리의 안보가 정쟁의 대상으로 소모되고 있는 사이, 주변국들은 이러한 현실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지지층의 외연 확대를 위해 외교·안보 전략을 수시로 변경하는 대통령 후보들을 보면 그 안보관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사드 배치 문제를 차기 정부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최근에 와서는 북한이 핵 도발을 하면 사드 배치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말을 바꾸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는 당론의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어서 정쟁을 예고하고 있다. 안보를 중요한 쟁점으로 생각하는 유권자의 표(票)만 노리는 대권 후보들의 영혼 없는 안보 우(右)클릭을 바라보노라면 이들이 4당 체제라는 국회 내의 교착 상태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외교 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한편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문 후보는 교수와 군 장성들을 대거 모집해 세를 과시하고 있다. 싱크탱크인 국민 성장에 1000여 명의 교수 자문단이 있고, 군 장성을 영입해 별만 100개 이상이라고 자랑한다. 4월 초에도 기무사 출신 장성과 대령 20여 명을 모아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자리를 가졌다. 가뜩이나 국가안보를 정쟁의 대상으로 소모해 온 정치권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군의 정치화에 앞장서고 있는 현실이 이보다 확연히 드러날 수는 없을 것이다. 군 인사들을 들러리로 내세우는 그 구태의연한 발상도 그렇지만,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리던 군의 정권 줄서기가 사실로 드러나 더욱 걱정스럽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부는 한층 더 가시화한 안보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핵 개발을 전혀 포기할 뜻이 없음을 밝히려는 듯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된 4월 초에도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공개해 핵 능력을 과시했다. 북한이 실제로 ICBM의 개발에 성공한다면 미국과 일본 정부 안에서 확산되고 있는 선제타격론은 더욱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이미 미국은 핵 추진 항공모함을 한반도 인근으로 배치한 데 이어 주한미군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새로운 대북 정책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뚜렷한 북핵 문제의 해결책을 스스로 제시하지 못한 채 주변국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을 뿐이다.

한반도 4월 위기설과 대북 선제타격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차기 대통령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군사적·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안보를 이념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 풍토를 불식시키고 군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와 같은 리더십은 지도자가 자신의 지지계층이나 표심을 의식한 안보 정책이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반도 평화라는 외교·안보의 가치와 목표를 일관성 있게 정립하고 국민 다수를 이끌어 나아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