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7.5.28 일요일
전광판
Hot Click
문화일반
[문화] 소설 徐遊記 게재 일자 : 2017년 04월 19일(水)
(1108) 54장 황제의 꿈 - 1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입국장 문이 열리면서 정연옥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릎까지 닿는 코트에 털모자를 썼고 가죽 장화를 신었다. 대형 트렁크 3개를 얹은 카트를 밀면서 나오는 정연옥의 표정은 긴장으로 굳어져 있다. 두려운 것 같다. 이응호는 마중 나온 사람들 사이에 끼어 정연옥을 보았다. 2초 정도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만감(萬感)이 교차했다. 상처한 지 5년, 36년간 해로했던 안미숙은 유방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쪽은 목숨이 질겨서 살고, 또 살다가 이제 두 번째 반려자를 맞이하고 있다. 이곳은 한랜드, 한반도 남쪽의 전라도와는 전혀 다른 땅, 다른 세상이다. 만날 싸우고 헐뜯다가 분노하고 절망했던 세상이 그야말로 악몽을 꾼 것처럼 지나가고 한반도에 기운(氣運)이 덮였다. 이 활기는 70이 넘은 이응호한테도 번져서 어느덧 주위를 둘러보니 한랜드, 눈에 덮인 극한의 땅에까지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라. 새 인생을 함께 시작하려는 여자가 그사이에 한 발짝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아직 정연옥은 이응호를 발견하지 못했다. 저 여자 또한 58세, 남편을 잃고 다시 이곳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려고 온 것이다. 이응호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러고는 번쩍 손을 들고 소리쳤다. 저 여자가 지금 나를 찾는다.

“여기야! 여기 있어!”

시내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정연옥은 연신 감탄했다.

“저 눈 좀 봐. 저 하늘은 왜 저렇게 푸르지요?”

“저런, 순록떼가 지나가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정연옥이 소리쳤다.

“이곳이 옛 고구려 땅이었다면서요?”

정연옥이 그렇게 물었을 때 마침내 이응호가 풀썩 웃었다. 광개토대왕, 장수왕이 이곳까지 치고 올라왔을 리는 없다. 순록떼나 지나고 농토, 주민 하나 없는 땅, 영하 30도가 넘는 대륙이다. 이것이 지금 한국인의 기상이다. 그렇게들 믿고 싶어졌다.

“그랬을 수도 있지. 척후병들을 보냈을 거야. 그랬다가 너무 추워서 돌아갔겠지.”

이응호는 한국 근대자동차에서 제작한 한랜드용 왜건을 운전하고 있다. 눈과 얼음 위를 달리도록 만들어진 차다. 아들 이재석이 나온다고 하는 것을 말렸다. 겨우 흥분을 가라앉힌 정연옥이 의자에 등을 붙이더니 이응호를 보았다.

“가게는 언제 개업을 하죠?”

“일주일쯤 후에.”

“내가 내일부터 가게에 나가서 일 거들겠어요.”

“며칠 쉬고 나가도 돼.”

“나가서 일하는 것이 나한테는 쉬는 것이나 같아요. 운동도 되고.”

이응호는 아들 이재석의 도움을 받아 한시티에 전자대리점 지점 하나를 경영할 예정이다. 직원은 점장 이응호까지 포함해서 넷, 아직 정연옥은 머릿수에 넣지 않았는데 일한다면 경리가 적당했다. 정연옥이 손을 뻗어 이응호의 허벅지 위에 얹었다.

“여보, 우리 잘 살아요.”

“어, 그래.”

이응호가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아들딸 둘만 낳고 잘 살자고.”

“아이고, 다 키워서 또 떠나보낼 때까지 어떻게 살아?”

정연옥이 이응호의 허벅지를 쓸었다.

“다시 둘만 남게 되는걸, 뭐.”

“인사하고 왔어?”

이응호가 묻자 잠깐 주춤하던 정연옥이 다시 허벅지를 쓸었다.

“그래요. 잘 살라고 하데요.”

죽은 남편한테 인사를 한 것이다.

※ 문화일보는 소설 ‘서유기’의 글과 삽화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포털 상에서 블로그 등에 무단 사용하는 경우 인용 매체를 밝히더라도 저작권법의 엄격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많이 본 기사 ]
▶ 잘못건 전화로 결혼까지… 염산테러 피해자의 기적같은 ..
▶ ‘돈봉투 만찬’ 감찰팀, 문제의 식당서 ‘오찬 조사’ 논란
▶ 아파트 광장서 자녀 생일파티 열어준 대학총장
▶ 여유 보였던 박근혜, ‘40년 지기’ 최순실과 법정 재회
▶ ‘슈돌’ 윌리엄, ‘BBC방송사고’ 켈리교수 남매 만났다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topnew_title
topnews_photo 법무부 “영업장소 강제조사 어렵고 근거 없어…자연스러운 조사 차원” 해명법조계 “조사 형식 부적절…엄정 감찰 의지 있나” 비판 제기 이른바 ‘돈 봉투 만찬 사건’을 감찰 중인 법무부·검찰 합동감찰반이 의혹 현장인..
ㄴ ‘돈봉투 만찬’ 이영렬·안태근 등 20여명 조사 완료
‘공직배제 5대원칙’ 결국 손질…野에선 “원칙후..
“박 전 대통령, 특수비 35억 혼자 쓰진 않았을..
아파트 광장서 자녀 생일파티 열어준 대학총장..
line
special news ‘슈돌’ 윌리엄, ‘BBC방송사고’ 켈리교수 남매..
로버트 켈리 교수(45·부산대 정치외교학) 패밀리가 KBS 2TV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line
여유 보였던 박근혜, ‘40년 지기’ 최순실과 법정..
잘못건 전화로 결혼까지… 염산테러 피해자의..
피랍의심 선박 구출작전 7개국이 움직였다
photo_news
‘미란이’ 억만장자 스냅챗 CEO 스피걸과 결혼
photo_news
‘구의역 참사’ 1주기, 우리와 같았던 그를 추모하며…
line
[연재소설 徐遊記]
mark(1133) 55장 사는 것 - 6
illust
[인터넷 유머]
mark어떤 새해 소망
mark고주망태가 된 맹구
topnew_title
number 커제 “알파고에 지고 속상해서 밤새도록 술..
분당 50대女 술자리서 염산뿌려 “주민 5명 화..
시신 뱃속 마약 훔쳐 팔다 적발된 영안실 직..
고창석 교사 찾은 세월호 침몰해역 수중수색..
행인 물어 6주 상해 입힌 개 주인 무죄…“피..
hot_photo
文대통령 반려견 ‘마루’ 청와대 입..
hot_photo
21시간 사투 소방관들 ‘맨바닥 휴..
hot_photo
‘모델 본능’ 멜라니아, 5천7백만원..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최중홍)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