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90세… 육체적 생명연장보다 문학적으로 오래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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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문학상’ 받는 ‘문단 최고령’ 김남조 시인

“사자와 호랑이는 30년을 산다고 하더라. 나는 그보다 세 배를 살았다. 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충분했다. 다만 삶이 어긋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가 부족한 탓이었으리라. 지금껏 많은 상을 주고, 또 받았다. 이제 이 나이엔 안 받는 게 좋은데 이렇게 됐다. 부끄럽고 감사하다.”

문단 현역 최고령의 김남조(90·사진) 시인이 제29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수상작은 신작 시 ‘시계’. 구순(九旬)에 이른 시인의 성찰적 사유가 솔직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김 시인은 1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지용문학상과는 인연이 깊다. 지용제가 올해로 30회, 문학상이 29회인데 거의 매년 심사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실패 없이 수상자를 잘 선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내가 수상자가 됐다. 얼마 전 지용회에서 수상 연락이 와 하루를 곰곰이 생각한 끝에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수상작 ‘시계’는 문학사상 4월호에 발표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김 시인은 “총 3편을 공개했다. 사실 ‘시계’는 3편 중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시였는데 수상작이 됐다. 고은 시인이 ‘참 멋난다. 이 시계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시계 아닌가’라고 좋게 봐줬다”면서 “시구 중에 ‘속물 중의 속물’이란 표현이 있는데 내가 그렇다. 스스로에 대한 인정, 고백 같은 야릇한 기분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황금찬, 김종길 시인이 별세하면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문단 최고 선배가 된 김 시인은 ‘나이가 든다는 것’에 관해서 긍정적, 희망적 덕담을 잊지 않았다. 그는 “구십을 살아보니 (시간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체력적으로 허약해지는 게 안타깝지만 만족하고 감사하다”며 “하지만 문학적으로는 더 오래 살고 싶다. 마치 어두운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보는 관람객처럼 살고 싶다. 육체적·통속적 생명 연장이 아니다. 역사의 변모를 지켜보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의 진행에 대해 무궁한 관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노년엔 노년만의 축복이 있다. 덜 슬프고, 덜 그립고, 덜 가슴 아프다”면서 “물론 나에게도 삶의 환란은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 중학교에 다닐 때 전교에서 한국 학생은 나뿐이었던 외로움, 한국어독본 폐지를 통해 느꼈던 조국의 상실감 등이 기억나지만 광복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하며 모든 사람의 삶은 하느님이 쓴 ‘명작소설’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시인은 차기작에 대한 계획도 밝혔다. 그는 “원래 지난해 한국 나이로 90이어서 가족들이 잔치를 하자고 했으나 올해 신작 출간기념회로 대신하자고 했다. 지금까지 쓴 시가 약 40편 된다. 근래 시가 참 잘 써진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가을쯤에 한 권으로 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지용문학상 시상식은 다음 달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