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 10시간도 못자… 말단 스태프는 욕받이 신세”

  • 문화일보
  • 입력 2017-04-19 11:02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혼술남녀’ PD 죽음으로 드러난 드라마 제작 환경

촬영 시작하면 24시간 대기
비인간적 대우로 더 모멸감
외주업체는 항의조차 못해
CJ E&M “수사땐 적극 협조”


“5일간 10시간도 못 잡니다.”

한 외주 드라마 제작사에 속한 A PD의 토로다. 지난해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혼술남녀’(사진)의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씨의 죽음이 뒤늦게 회자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18일 문화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얼마나 두려웠을지,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해가 간다”고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다수의 유명 드라마에 참여했던 A는 촬영이 시작되면 초주검이 된다. 작가, 배우, PD, 제작사, 소속사 등과 일일이 소통하며 일정을 조율하고 촬영현장을 지키는 것이 그의 몫이다. 촬영이 없을 때면 수북이 쌓인 영수증을 정리하며 내부 살림을 챙긴다.

A는 “쪽대본과 밤샘촬영 때문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배우들은 오가는 차 안에서 쪽잠을 자고, 자신의 촬영 분량이 없을 때는 휴식을 취할 수 있지만 스태프는 24시간 항시 대기해야 할 때가 많다. 최근 참여했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는 총연출자가 촬영 중 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어 ‘컷’ 사인을 내지 못하기도 했다”며 “5일간 10시간도 못 잔 적이 많다”고 말했다.

살인적인 업무 강도보다 현장 스태프를 힘들게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대우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 모인 이들과의 관계에서 철저히 ‘을’(乙)인 터라 말단 직원들은 모멸감을 느끼고 ‘열정페이’를 받으면서도 “이 일이 좋아서” 참아 넘기곤 한다.

사망한 이 씨의 유족이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혼술남녀’의 제작 환경은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시청률 경쟁에만 혈안이 돼 구성원을 도구화하는 제작환경과 군대식 조직문화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 다른 드라마의 조연출이었던 B는 “피곤하고 촬영 시간은 촉박하니 모두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현장의 어린 스태프는 ‘욕받이’가 되기 일쑤”라며 “특히 방송국 소속이 아닌 비정규직 스태프의 경우 한순간에 잘릴 수 있기 때문에 참고 또 참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A, B는 “고인을 애도하지만 그의 극단적 선택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같은 의견을 냈다. A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현장 스태프가 겪는 어려움이 표면 위로 드러났지만, 살아 있는 그의 목소리였다면 더 반가웠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 씨가 몸담았던 CJ E&M 측은 18일 “유가족의 아픔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며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안진용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