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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반도 정찰記 게재 일자 : 2017년 04월 19일(水)
막연한 평화論으론 평화 못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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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지난 15일 많은 사람이 가슴을 졸였다. 북한 김정은이 김일성 생일을 맞아 6차 핵실험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단행하고, 그러면 미국이 군사 대응에 나섬으로써 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결국 김정은은 군사 열병식을 통해 ‘ICBM 3종 세트’를 과시하고, 16일 오전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하는 저강도 도발에 그쳤다. 그나마 발사 직후 폭발해 버렸다. 이를 두고 미국의 사이버 교란 작전인 ‘레프트 오브 론치(left of launch)’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돌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전쟁과 평화의 방정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미·중·러·일 등 세계 최강의 군사 강국에 둘러싸인 동북아 교차로이자, 200만 대군이 대치하고 있는 화약고다. 그래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는 곧바로 전쟁과 평화의 문제다. 어느 쪽으로 전개될 것이냐의 방향은 각국의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에 입각한 동맹의 관리, 그리고 동맹의 역학 관계와 직결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북핵·미사일을 핵심 문제로 간주하고, 정책 방향을 ‘최고의 압박과 개입’으로 잡았다. 중국을 통한 압박이 기본 수단이다. ‘모든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나,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은 후순위로 돌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른 방법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거나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군사옵션은 열려 있다. 그리고 국제정치는 국내정치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6일 시리아 폭격과 함께 급상승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미군 부사관 1명이 전사하자, 13일 실전에서 처음으로 ‘폭탄의 어머니’ GBU-43을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국가(IS) 동굴기지에 투하했다.

중국은 북한을 핑계로 미국의 막강한 핵심 전력자산이 코앞에 몰려드는 것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관련 각국이 서로 자극하고 불에 기름을 붓는 행동을 피해야 한다”고 주문했으며, 환추스바오(環球時報)는 17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중국은 원유 공급 중단을 포함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6∼7일 트럼프-시진핑(習近平) 정상회담에서 ‘신형 대국관계론’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관심은 11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러시아도 방정식 풀이에 골몰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어느 정도의 한반도 긴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권 공고화와 일본의 보통국가화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관심이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가 아닌 동북아시아로 집중되는 것을 내심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 2곳에서 동시에 전선이 형성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일단 한 발짝 떨어져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2018년 러시아 대선도 대외 정책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의 운명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안전보장각서(Budapest Memorandum)를 통해, 핵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미국·러시아·영국 등 강대국으로부터 안전 보장을 약속받았으나,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합병당한 채 러시아 지원을 받는 동(東)우크라이나 분리주의자들과 내전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카다피는 나토(NATO)군의 지원을 받은 반군에 의해 정권을 잃고 도주 중 2011년 10월 목숨을 잃었다.

이런 복잡한 변수들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전쟁도, 평화도 가능하다.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지만, 한·미 동맹을 축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유지할 때 평화는 지속될 것이다. 반대로 동맹이 약화하고, 그 틈을 타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게 되면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각오해야 한다.

군사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전쟁은 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의 연장’이다. 볼셰비키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다. 이런 당위가 아니더라도 늘 전쟁을 직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숙명이다. 그런데 주요 후보들은 대화로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겠다고만 한다.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설득할지, 설득하지 못했을 땐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평화는 공약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평화를 지킬 힘도, 지혜도 없으면서 막연히 평화를 외친다면 실제론 평화를 위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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